<하>신북방 수출전략

[한국농어민신문 이기노 기자]


신북방 지역은 한마디로 ‘어려운 시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열악한 물류여건과 불안정한 경제, 낮은 인구밀도 등 농식품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걸림돌’이 많은 곳이다. 게다가 한국 농식품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시장진입 자체가 어려운 미개척 시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신북방 지역은 아직 FTA를 체결하지 않은 신흥경제권으로,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시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8년 신북방 지역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4.4%에 달하고,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아온 러시아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농식품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해 신북방을 주목하는 이유다.


카자흐·몽골 등 13개국
인구는 약 2억9000만명 
러시아의 경제회복으로 
농식품 수출액 큰 폭 증가

장거리 운송 따른 높은 물류비
부담 줄이는게 핵심과제
권역별 공동운송시스템 구축
공동물류추진단 운영 등 필요

전진기지 블라디보스토크 
냉장·냉동창고 확충 시급


◆신북방 시장 현황

신북방 지역은 통상적으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독립국가연합(CIS, 12개국)과 몽골 등 13개국을 지칭한다. 인구는 약 2억9000만명이며, GDP(국내총생산)는 2조2000억달러다. 이들 국가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2015년을 기점으로 반등, 2018년 4.4%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주요 수출국은 러시아와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으로 신북방 지역 농식품 수출의 97.7%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경제회복으로 2018년 기준 신북방 농식품 수출액은 전년대비 21.3% 증가한 2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주요 수출품은 커피조제품(18.6%), 음료(7.2%), 라면(4.8%) 등 일부 가공식품에 한정돼 있다.


◆신북방 수출전략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1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에 ‘신북방 지역 농식품 수출확대 전략’을 보고하고, 본격적인 신북방 시장개척을 준비하고 있다. 핵심과제는 장거리 운송에 따른 높은 물류비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수출업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러시아 서부지역으로 선박을 이용해 수출할 경우 통관까지 최대 60일이 걸린다. 사실상 신선농산물 수출이 불가능한 것이다. 운송시간 단축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야 하지만 물류비 부담이 큰 상황이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권역별 공동운송시스템을 구축·지원해 물류비를 낮춘다는 계획이다. 극동지역의 경우 전문 물류대행사를 통해 부산-블라디 항로에 신선농산물 주 1회 정기선박 운행을 추진하고, 중앙아시아와 몽골지역에는 수출업체 중심의 ‘공동물류추진단’을 운영해 수출물량 규모화를 통한 물류비 경감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농식품부 수출진흥과 조용형 사무관은 “열악한 물류여건 개선이 가장 시급한 상황으로 조만간 ‘공동물류추진단’을 구성해 물류비 경감을 위한 현지조사부터 진행할 계획”이라며 “신규예산이 반영된 건 아니지만, 기존의 지원사업을 최대한 활용해 신북방에서 홍보 및 마케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조 사무관은 “모스크바와 카자흐스탄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무소를 올해 안에 개설해 최대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장 목소리

수출업계는 신북방 수출확대를 위해 물류비 지원이 ‘투 트랙(Two Track)’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세한 수출업체들이 소규모·다품목을 수출하는 경우에는 공동 물류시스템을 적용하고, 대규모 수출업체에게는 별도의 수출물류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블라디보스토크가 수출확대를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냉장·냉동창고의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한국 딸기를 수입하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수입업체 대표는 “저장이 가능한 과일이나 채소 등의 신선농산물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선 당연히 저장창고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런 시설이 없다”며 “한국 농식품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물류·유통 인프라 구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농식품의 신북방 현지화를 위한 지원도 요구된다. 국내 수출업체 관계자는 “한국 농식품이 신북방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시장조사를 통해 현지화를 해야 하는데, 개별업체가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며 “정부기관이 함께 협업해 현지화를 지원하는 정책도 함께 추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신북방 키워드 러시아
올해 한·러 수교 30주년, 교류 확대 추진


러시아는 신북방 정책의 핵심 국가다. 신북방지역 전체 GDP의 74.5%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절반을 상회하는 1억5000만명의 인구가 집중돼 있는 거대시장이다. 특히 신북방 국가 중 상대적으로 우리 농식품에 대한 인식이 높아 수출량 대부분이 러시아로 향하고 있다. 실제 2018년 신북방지역의 전체 수출액 중 러시아가 차지한 비율은 67%에 달한다. 무엇보다 △극동지역의 지리적 근접성 △중국산 농식품 대비 뛰어난 품질과 안전성 △유럽·일본산 농식품 대비 가격 우위 △도시락라면·초코파이·밀키스 등 성공브랜드를 보유한 점은 러시아 공략의 강점으로 분류된다.

특히 올해는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는 해로 러시아와의 교류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국 농식품의 수출 기대감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농식품부는 ‘케이푸드(K-Food) 홍보원정대’를 구성, 시베리아 철도(TSR) 노선의 주요도시를 방문해 한국 농식품과 식문화를 소개하는 다양한 이벤트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전문가 진단

“공동운송 시스템·콜드체인 서둘러야”
농촌경제연구원 문한필 박사

최근 일본산 농식품 수입 증가
싸고 안전한 우리도 가능성 충분
가까운 지역부터 단계적 접근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동북아 정책에 발맞춰, 농업분야도 신규시장을 개척하자는 취지로 신북방 농식품 수출전략이 수립됐다. 하지만 현실 여건은 만만치 않다. 신북방 지역은 해운물류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신남방과 달리 우리 농식품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진다. 1인당 소득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가 제한적이고, 면적은 넓은데 반해 인구수도 적다. 또한 자원의존형 경제구조로 인해 국제 유가에 따라 루블화의 등락폭이 크다는 것도 농식품 수출에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신북방 국가는 주로 가까운 유럽과 중국 등에서 농식품을 수입해왔다. 그런데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분쟁에 따른 조치로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유럽산 농식품 수입이 줄고, 일본산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산보다 저렴하고, 중국산보다 안전성이 뛰어난 우리 농식품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공략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신북방 진출 기업이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초기 시장개척을 위한 정부지원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우선 물류비를 낮출 수 있도록 공동운송시스템을 서둘러 지원하고, 농산물의 신선도를 위한 ‘콜드체인’ 구축사업이 요구된다. 또한 비관세장벽이 높고 불법적인 관행도 있는 만큼, '비관세장벽 해소 협의체'를 운영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극동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등 가까운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카자흐스탄의 경우 교민이 많고, 국내 수출업체가 상당수 진출해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

신북방 국가들은 경제 발전 가능성이 크고,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이기 때문에 농식품과 관련한 미래 성장성이 높은 지역이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에는 농기계, 중앙아시아에는 채소종자 수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난해 신북방 농식품 수출전략이 수립됐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전진기지(aT 지사)가 마련된 만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신북방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기노·김영민·최영진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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