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소비·시세 모두 바닥…베테랑들 "오래 일했지만 처음 본 최악 대목"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얼어붙은 채소 시장은 풀릴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채소류 대부분의 품목에서 소비와 시세 모두 바닥을 보이고 있다. 도매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채소 유통 전문가들도 올 설 대목 같은 상황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일부에선 설 이후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며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배추 도매가 평년의 1/3 수준
무·시금치·양파·마늘 등도 폭락
"시세 오를 땐 매일 찾아오더니
정부 관계자 전화 한 통 없어"

유통 전문가들 전망도 ‘암울’
"외식업 침체 등 시장에 큰 충격
이럴수록 고품위 생산해줘야"
"설 이후 더 큰 위기 우려" 지적도


▲얼어붙은 채소 설 대목장=설 연휴를 8일 남겨둔 24일 현재 가락시장에서 채소계 표준지수는 86.64p를 기록했다. 100p를 상회하면 예년 이맘때(5년 평균)보다 높다, 하회하면 낮다고 판단할 수 있어 최근의 채소 시세가 매우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2018년 설이 2월 중순으로 지난해 이 맘 때엔 설 대목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최근이 설 대목 기간임을 감안하면 시장 체감 시세는 더욱 차갑게 느껴지고 있다.

주요 설 채소 품목으로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최근 가락시장에서 배추 10kg 상품 평균 도매가격은 2000원 중반대로 평년 1월 시세인 6100원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지는 것을 비롯해 무, 시금치 등의 제수품목은 물론 양파, 마늘, 대파 등 주요 채소 품목 모두가 큰 폭의 시세 하락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가락시장 채소 전문가들의 제언=현재의 채소 시장 상황과 더불어 앞으로의 전망, 대응 전략 등을 가락시장 채소 부류를 이끌고 있는 각 법인별 채소 유통 총괄들에게 물었다. 몇 십년간 채소 유통 현장을 누빈 5인의 베테랑들 모두 현재의 채소 시장을 ‘처음 본 최악의 설 대목’이라고 입을 모았다.

A 총괄은 “이렇게 설  대목장이 가라앉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최악의 채소 대목장”이라며 “크리스마스와 연말 등 지난해부터 설 대목에 들어간 현재까지 계속해서 소비와 시세 모두 밑바닥이다. 무엇보다 식당 등 외식업이 장사가 안 되는 게 채소 시장에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했다.

B 총괄은 “산지에선 겨울철 날씨가 따뜻해 단수가 크게 증가했고, 소비지에선 경기 침체와 부동산 우려 등 불안한 사회 분위기 조장 속에 소비가 극도로 침체돼 있다. 이 두 상황이 맞물려 최악의 설 대목장을 맞게 된 것 같다”며 “올해처럼 엽채류와 양념류가 동반 하락한 것은 처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 전망도 좋지 않아 산지에 별다른 출하 전략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C 총괄은 “시세가 너무 나오지 않아 출하자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 크다”며 “물량은 계속 밀리고 있고, 생산량은 증가한 반면 소비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전망도 좋지 못하다. 위로의 말 이외엔 마땅히 산지에 전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D 총괄은 “폐기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데, 만약 한 지역이 폐기하면 다른 지역에서 혜택을 보게 될 수 있는데 어떻게 폐기하라고 얘기를 할 수 있겠냐”라며 “더욱이 올겨울 들어가기 전에 한파가 자주 올 거라고 했고, 이에 시세 면에선 기대하는 농가들이 많았기에 실망감은 더 커져 있어 전화가 오면 시세가 안 나와 송구스럽다는 말밖에 다른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작물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유통인들의 당부이기도 하다.

E 총괄은 “너무 힘든 상황인건 알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산지에선 고품위 물량을 생산해줘야 더 큰 소비 하락을 막을 수 있다”며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더욱더 품질 향상에 매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의 대책 촉구와 함께 쓴 소리도 나왔다.

A 총괄은 “만약 설 대목장에 채소 시세가 급등했다면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을 것 같냐”고 반문한 뒤 “가격 하락 시엔 정부가 항상 늦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가격이 폭락한 양파도 진작 폐기 등 대책이 나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B 총괄은 “김장철 김치 한 포기 더 담기 홍보도 하지 않느냐. 왜 설 대목에 농산물 소비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농산물값이 상승했을 땐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오거나 찾아오더니 지금은 정부 관계자의 전화 한 통화 없다”고 비판했다.

설 이후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C 총괄은 “설 대목장에 물량이 몰리고, 날씨가 더 풀리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채소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며 “날씨가 나빠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인 수급대책이 강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제언주신 분들
김기영 대아청과 영업 상무이사, 김동진 한국청과 채소총괄 상무이사, 김용운 중앙청과 상무이사(채소1본부장), 김종철 동화청과 영업 상무이사, 한흥기 서울청과 채소부총괄 부서장(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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