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대목에 들어서고 있지만 선물 수요 위축 등으로 사과·배 산지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 사진은 충주농협 유통센터 관계자들이 설 선물용 사과를 선별·포장하고 있는 모습.

민족 고유 명절이자 농산물 소비의 주요 축인 설 대목장이 열리고 있다. 사과와 배 등 주요 과일 산지에선 1월 둘째 주 들며 10~15kg 포장을 5~7.5kg 포장 중심으로 돌리는 등 일제히 설 시즌에 돌입하고 있다. 이에 맞춰 한국농어민신문은 10일 주요 사과 산지인 충북 충주의 충주농협 산지유통센터(APC) 방문을 시작으로 주요 과일과 채소류 시장 및 유통가 동향 등을 연속적으로 점검해 볼 계획이다.


사과 정품비율 떨어지고
저장력 약한 품질 많지만
당도 14.5브릭스로 높아
배는 대과물량 적어
특품 위주 선별 출하를

청탁금지법 영향으로 
선물 수요 줄고 
선물 물량도 단가 낮춰 잡아


명절 주요 제수 과일이자 선물용으로의 수요도 많은 사과·배의 경우 현장에서의 분위기가 썩 좋지 못하다. 사과와 배 모두 소비와 가격 면에서 어두운 전망이 앞서고 있는 상황인 것. 그나마 당도는 높게 유지되고 있어 이에 기대고 있지만 기업체의 선물 자제 동향 등 들려오는 소식은 녹록지 못하다.

▲사과·배 산지는=“올 설엔 마진 없이 원가에 출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물량이 빠질지 모르겠네요.”

설 시즌에 돌입한 뒤 이튿날인 10일 충주농협 APC에서 만난 문봉익 농산물품질관리사는 “올해 전에는 적어도 10%에서 15%의 마진은 붙였는데 이번 설엔 인건비와 자재비를 제외한 어떤 수수료도 붙이지 않고 원가 출하하기로 했다”며 “그런데도 유통업체에서 물량을 다 소화해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봄이 왔지만 봄이 오지 않고 있다는 말처럼 사과 산지는 설이 왔지만 설 대목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설 선물 시장이 크게 위축된 영향이 크다. 청탁금지법의 영향으로 선물 시장이 축소됐고, 그나마 선물로 나가는 물량도 단가를 낮춰 잡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생육기 가뭄 및 수확기 잦은 비 등의 영향으로 과가 물러지는 등 정품 비율이 떨어지고 있고, 저장력이 약한 물량도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농가들의 수취가에 대한 체감도는 실질적인 가격보다 더 좋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문봉익 관리사는 “농협에서 25년, 그중 유통센터에서 18년을 근무했는데 올해 같은 경우가 언제 또 있었는지 모를 만큼 올 설 상황이 좋지 못하다”며 “그나마 설 대목은 농가들이 기대를 하는 면이 있는데 올 설에는 그런 기대감이 무너질까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다만 의지할 것은 당도. 문 관리사는 “후지 기준 13브릭스 이상이면 특품으로 보는데 올해는 전체적으로 14.5브릭스 정도의 당도가 나와 당도는 어느 해보다 올라서 있다”며 “당도에 기대 그나마 소비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배 산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당도는 높지만 예전보다 대과 비중이 적은 가운데 생육기 폭염 및 가뭄 등의 영향으로 정품 물량이 많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우돈 경기동부과수농협 과실종합유통센터 과장은 “농가들이 가지고 있는 양은 있는데 썩 좋은 품위의 배가 적고, 과 크기도 잘은 물량이 많다”며 “청탁금지법 영향으로 선물 수요도 제대로 나가지 않고 있어 전반적으로 배 농가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다”고 산지 상황을 전했다.

▲시장 전망 및 제언=사과와 배에 대한 시장에서의 전망 역시 그리 밝지 않다. 일단 시세 면에서 사과와 배 모두 고전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실제 설 연휴를 정확히 보름 앞둔 12일 현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 기준 전국 공영 도매시장에서의 사과 도매가격(중도매인 판매가격)은 4만1000원, 11일 3만9600원으로 평년 이맘때의 4만6000원보다 못한 시세가 나오고 있다. 2013년 이후 올해보다 설이 빠른 적도 없고 대부분 2월에 설이 있어 평년 이맘때의 시세는 설 대목이 아니기도 하다. 그만큼 사과의 올 설 초반 장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배 역시 15kg 상품 기준 12일 3만9800원을 기록하는 등 최근 4만원을 밑도는 도매가격이 형성되며 4만5000원대였던 평년 시세보다 못한 가격대가 이어지고 있다.

더 우려되는 건 유통업체에서 청탁금지법 접촉을 받지 않는 5만원 이하대의 물량을 원하고 있어 단가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의 시세 상승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장성이 좋은 중소형 사과는 설 이후를, 배는 특품 위주의 선별 출하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가락시장의 김갑석 중앙청과 경매부장은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서 청탁금지법 영향으로 비싸게 살려고 하질 않는다. 대부분 5만원 이하를 원해 가격 지지가 너무 어렵다”며 “그래도 특품 비중이 적어 선별을 철저히 해 특품 위주의 출하를 진행하면 어느 정도는 가격을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김용흠 서울청과 경매부장은 “한마디로 소비가 안 된다. 시국도 어수선하고 청탁금지법 영향도 커 시세가 제대로 받쳐주질 못하고 있다”며 “다만 사과의 경우 저장성이 좋은 중소과 물량이 설 이후에는 많이 없을 수 있어 무조건 설에 출하하는 것보다 이런 물량은 설 이후로 출하를 미루는 걸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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