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육성정책 없고 숫자 늘리기만 급급…‘이름 뿐인’ 식품명인

1994년 시행된 식품명인제도가 올해 20년을 맞았다. 식품명인은 식품산업진흥법에 근거를 두며, 우수한 우리식품의 계승 발전을 위해 식품제조·가공·조리 등 분야를 정해 정부가 지정, 육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0년 동안 전통주와 전통식품 분야에서 56명이 지정돼 이 중 사망 등으로 인한 지정해제를 제외하고 5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식품명인’이라는 명예 뒤편으론 20년 동안 정부의 지원으로부터 방치돼 온 식품명인들의 열악한 현주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에 식품명인제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무형문화재와 명장의 지원 현황과 비교, 명인들의 요구 사항 등을 총 3회에 걸쳐 다뤄보고자 한다.

 

#조사 배경은

33명중 28명 참여, 응답률 85%
60대 가장 많고 70대·50대 순

한국농어민신문은 올해로 시행 20년을 맞은 식품명인제도의 현주소를 짚어보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하에 있는 식품명인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다양한 연령층과 전문분야를 갖고 있는 식품명인들의 제도 전반에 대한 인식을 객관화·수치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했다.

이달 7일 대전에서 열린 ‘2014 대한민국 식품명인 워크숍’에 참석한 33명의 식품명인을 대상으로 설문 형식의 조사가 이뤄졌으며, 이 중 28명이 응답해 85%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응답자의 평균 나이는 65.46세로, 연령별로는 60대가 12명으로 가장 많은 42%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70대가 29%(8명), 50대 25%(7명), 80대 순으로 집계됐다. 식품명인과 그 전수자가 모두 설문에 응한 경우에 전수자의 응답은 제외했으며, 답변에 대한 세부적인 배경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전화 취재를 병행했다.

 

#20년 동안 부정적 인식 키웠다

명인 지정 전후 “별다른 차이 없다” 
“경제적 상황 많이 좋아졌다” 18% 
숫자 늘어도 사후관리 방치 씁쓸

이번 조사를 통해 본 식품명인제도에 대한 명인들의 인식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다. 명인 지정 이후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경제적 상황의 평가를 묻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명인 지정 이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사실상 제도 시행 이후 20년의 시간을 무색케 했다. 각 분야와 지정 연도에 따라 다른 온도차가 감지되는 부분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명인 지정 이전과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인식이 명인들 사이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명인 지정 이후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에 대해 응답자의 약 39%가 ‘별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 ‘괜찮은 편이다’라는 응답이 25%, ‘많이 나아졌다’가 18%로, 이 둘을 합치면 43%의 응답이 긍정적인 인식을 나타냈다. 반면 ‘오히려 악화됐다’는 응답도 18%에 달해 명인 지정 이후 ‘별 변화가 없거나 상황이 나빠졌다’고 느끼는 이들이 57%에 해당됐다.

명인 지정 이후 경제적 상황에 대한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43%의 응답자가 ‘별 차이가 없다’고 응답한 가운데 ‘많이 좋아졌다’는 응답은 18%, ‘조금 좋아졌다’는 응답은 29%를 차지했으며, 10%가 ‘오히려 나빠졌다’고 인식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식품명인이라는 집단적인 소속감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이들로부터 나왔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적지 않다. 식품명인에 대한 육성과 지원을 내세운 정부 시책인 식품명인제도 내에서 법적으로 활동을 보호받기 위해 식품명인을 신청한 이들이 지금에 와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게 나타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상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원인에 대한 지적 중의 하나는 식품명인제도 자체의 문제점보다는 제도를 추진하는 시행 주체인 정부의 의지가 부재하고, 그런 모습이 방향성 상실로 이어지는 등의 복합적인 요소들로 인해 식품명인제도가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한 식품명인은 “2000년대 초만 해도 정부가 공인해 주는 식품명인이라는 것이 희소성과 분야별 발전 가능성 측면에서 높게 평가되는 부분이 많았다. 식품명인들도 대부분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명인제도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인 숫자만 늘리는 쪽으로 정부 정책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명인 숫자는 양적으로 늘고 있는 반면 사후관리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돼 있기 때문에 ‘빚 좋은 개살구’라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식품명인을 육성하고 발전시키려는 정부의 정책과 관심 부족이 식품명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키웠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사에 참여한 또 다른 명인은 “명인들의 전반적인 인식은 식품명인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의지와 관심 등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면서 “담당 주무부처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자체의 인식 수준도 크게 낮아 식품명인 활동에도 영향을 받게 되고, 처우 개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서 정부의 정책 추진에 대한 명인들의 이 같은 인식이 반영됐다. ‘정부가 명인제도를 비롯해 식품명인 육성 정책을 잘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32%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방치하고 있다’는 응답도 14%를 차지했다.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은 29%이며, ‘보통이다’는 25%로 나타났다. ‘매우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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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 문제 ‘막막’, 정부 지원은 ‘깜깜’

전수자 모두 있지만 100% 친인척
교육비 신설·전수 지원 확대 주문
79%가 “정부·지자체 지원 못받아” 

이런 상황에서 명인들이 갖고 있는 현안 과제는 갈수록 쌓여가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파악 가능한 부분은 전수 문제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식품명인들의 평균 나이는 65.5세 가량으로, 응답자의 100%가 전수자의 유무에 대해 ‘있다’고 답했다. 이들과 전수자와의 관계는 100% 모두 친인척이다. 전수자가 복수임을 감안해 아들이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딸 6명, 남편 2명, 며느리 2명, 부인과 조카도 각각 1명씩 있었다.

전수자 중 가장 오래된 경우는 21년에 달하며, 가장 짧은 경우는 3년이었다. 전수자의 평균연수는 대부분 10년 내외 정도로, 친인척의 경우를 고려할 때 전수자라는 타이틀로 인식되는 기간보다는 더 오랜 기간 식품명인들과 가깝게 지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전수자를 찾기 쉽지 않은 여건과 식품명인이라는 특수성과 전통성을 고려할 때 친인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전수 문제에 대한 식품명인들의 우려 지점이기도 하다. 이번 조사에서 식품명인들은 전수자에 대한 교육비 신설 또는 전수지원금의 확대 등을 요구했다. 전수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응답자가 전수 지원과 관련한 실질적인 정부의 지원을 요구했다.

전수 문제와 더불어 해결돼야 할 부분은 정부의 개별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약 79%가 식품명인 지정 이후 정부 또는 지자체로부터 금전적인 개별 예산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반면 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 이들은 21%였다. 그나마 시설 확충을 위해 상환을 목적으로 한 저금리 융자가 대부분으로, 이는 다른 농업 및 축산 분야의 시설현대화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이와 관련 조사에 참여한 한 명인은 “정부 지원의 경우 식품명인협회를 통해서나 박람회 참가 등의 행사 위주가 대부분이다. 육성 방안에 대한 고민이나 전담 인력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일회성에 그치는 예산 지원이 반복되고 있고, 이는 식품명인 차별화 등을 위해선 금액도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방향도 맞지 않는다”며 “정부 또는 지자체로부터 받는 예산 지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부의 지원이 궁색하다보니 식품명인의 대부분은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나 고용노동부의 명장 제도처럼 개별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쪽으로 정부 지원을 알아보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식품명인에 대한 지원이 없다보니 식품명인들이 스스로 담당 부처가 아닌 다른 관련부처로 눈을 돌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놓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중 무형문화재 또는 명장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은 72% 가량으로, 이들 모두가 ‘무형문화재나 명장 신청 등을 고려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100%가 ‘있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65%가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우수한 문화와 기술 등을 알리고 싶어서’, 30%가 ‘무형문화재와 명장 등이 정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정부 정책 개선 목소리, 요구사항은 

전수문제 지원 강화 최우선 과제
식품명인 홍보 강화·차별화 주문
법·규정 손질, 체험관 등 마련 여론

식품명인들은 식품명인제도 등 육성 방안이 필요하다는 데 여전히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차원의 육성 방안이 식품명인 발전에 여전히 유효하고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행 중인 식품명인제도 등에 대해선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현행 식품명인제도를 포함한 정부 정책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모든 응답자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이어 복수응답을 허용한 ‘정부 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46%의 응답자가 ‘전수 문제에 대한 지원 강화’를 요구했다. 그 다음으로 응답자의 27%가 ‘무형문화재와 명장과 같은 개별적인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으며, 19%가 ‘식품명인에 대한 대국민 홍보 강화 및 차별화 전략’을 요구했다. 또한 6%의 응답자는 ‘중장기적 차원의 식품명인 육성 방안’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신광수 한국식품명인협회장은 “식품명인들의 사회적 인지도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선 업계와 정부 차원의 노력이 공동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우선 법이나 관련 규정을 개정해 제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교육과 접목한 체험관을 마련해 우리의 전통식품 문화를 후손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맛볼 수 있도록 해야 식품명인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이번 조사에선 식품명인의 차별화 강화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주문도 나왔다. 정부가 지정한 식품명인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이 미흡하다보니 민간 차원의 ‘명인’들이 남발하고 있으며, 명칭에 대한 관리 등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오히려 ‘식품명인’이 되레 피해를 입는 사례가 '왕왕' 발생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식품명인을 활용한 6차산업화 활성화 방안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명인의 전수시설 및 체험관 설치를 통해 각 지역의 관광명소와 연계하거나 지역별 클러스터를 구성한다면 명인뿐만 아니라 농업 분야, 소비자 등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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