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 처우도 열악…‘상대적 박탈감’ 커져

▲ 식품명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박람회 또는 세미나 개최 등에 따른 간접 지원에 그치고 있으며, 제도 시행 20년 동안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품명인들의 처우 개선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그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다른 분야의 장인들에 대한 지원 여건과 비교해 보면 식품명인들의 열악한 현실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 식품명인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식품명인의 처우 개선과는 점점 요원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른 장인제도들과의 비교를 통해 식품명인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본다.


#어느 식품명인의 고민 

전수하고 싶어도 비용 부담이 발목
지원금 주는 무형문화재 신청 고민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수십 년간 전통주를 빚어 온 A씨는 당시 농림부(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식품명인으로 지정됐다. 그런 그가 최근 문화재청이 담당하고 있는 무형문화재의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

전통주 분야에서 천착해 온 땀과 노력을 인정받은 명인이라는 자긍심으로 묵묵하게 우리의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애를 써왔지만, 산업 여건은 갈수록 녹록치 않거니와 정부나 지자체 등 외부 지원도 전무한 실정이어서 고심 끝에 내린 생각이었단다. 무형문화재의 경우 전수지원금 등의 직접적인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위해선 정해진 기준과 절차 등을 부합해야 하고, 이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이 명인은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형문화재 지정이 꼭 필요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 이 명인의 얘기다. 다름 아닌 식품명인의 처우 개선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이 명인은 “명인 선정 이후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지자체나 중앙정부로부터 개별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 전수를 해주고 싶어도 정부 지원 없이 개개인이 모든 비용을 다 부담해야 돼 전수지원금을 주는 무형문화재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며 “무형문화재로 선정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식품명인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미흡하기 때문에 스스로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것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농수축산 분야에서 전통성과 우수성을 가진 이들을 인증하는 식품명인제도가 1994년 시작된 지 올해로 20년을 맞고 있지만, 명인 지정 이후 사후관리의 부재 속에서 열악한 지원 여건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명인 육성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의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부분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이로 인해 예산 확보 및 사업 계획의 부실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수십 년 동안 식품명인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수준의 피상적이고 소극적인 지원이 되풀이됐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이렇다 보니 명인들은 처우 개선을 위해 주무부처가 아닌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나 고용노동부가 지정하는 명장제도 등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에 놓여 있다. 물론 식품명인들 사이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식품명인들이 적극적으로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부분도 현재 상황을 야기한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무게 추는 명인 내부의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것보다 지원 제도의 취약성 및 정부 등의 관심 부족으로 인한 측면으로 쏠린다. 이에 따라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정비의 필요성과 이에 따른 지원 개선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로 모아지고 있다.
 

 

#무형문화재와 명장, 그리고 식품명인

장기간 숙련된 우수기능 보유 비슷하지만 지원 천차만별
무형 문화재·명장은 장려금·전수지원, 품위 유지비 등 지원 
식품명인은 전시·박람회 참가, 홍보사업 등 간접지원 그쳐 


그렇다면, 식품명인이 아닌 다른 장인들에 대한 지원은 어떨까. 국내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우수기능(문화)인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고용노동부의 대한민국명장,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하는 대한민국식품명인이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제도 취지와 출발점은 다르지만,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동안 숙련된 우수기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분모다.

무형문화재와 명장의 경우 식품명인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무형문화재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공포되면서 시작됐고, 명장제도는 1986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뒤를 이어 식품명인제도가 1994년부터 시행돼 왔지만,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건이 두드러진데다 이런 부분들이 20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서 제도의 보완 요구가 일고 있다.

▲지정 현황=이들 중 가장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명장이다. 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대한민국명장은 10월 현재 587명이다. 국내의 전 분야를 아우르고 있는 만큼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들은 600명이 되지 않는다. 이 중 농수축산 분야로 분류될 수 있는 명장은 10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170여 명이다. 다양한 종목에 걸쳐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희소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인지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반면 식품명인은 현재까지 식품분야에서 56명이 지정돼 사망 등으로 인한 지정해제를 제외하고 50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원 방식과 금액=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 중의 하나로 꼽힌다. 명장이나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에게는 자금이 직접적으로 지원되는 반면 식품명인들은 직접적인 자금 지원이 아닌 간접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장으로 지정되면 일시장려금 2000만원이 지급되고, 선정 직종에서 계속 종사할 때는 계속종사장려금으로 근속연수에 따라 191만~381만원(2014년 기준)의 금액이 연 1회 지급된다. 전수지원금도 있다. 명장 선정 다음해부터 2~5년 이내에 전승자에게 80만원, 전수자에게는 매월 20만원씩 지급된다. 이 자금은 계속종사장려금과 중복 지원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으며, 재원은 숙련기술장려적립금에서 마련되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에게는 품위 유지 및 처우 개선 등의 목적으로 매월 130만~170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전승지원금도 매달 지급된다. 이 지원금은 기본적으로 생활보조비가 아니고, 전수교육에 따른 목적성 경비 차원이며, 이밖에도 의료 혜택 등도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식품명인들은 이 같은 지원과는 동떨어져 있다. 직접적인 자금 지원이 아닌 각종 전시회 및 박람회 등의 개최나 참가, 판매촉진이나 홍보 사업, 전수에 필요한 도서 발간 또는 국내외 세미나・발표회 개최를 지원하는 간접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데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신청 및 심사 절차를 거쳐 이뤄지고 있어 식품명인 모두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담인력 유무=전담부서 및 인력 측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지원 업무는 문화재청과 산하 기관들이 전담하고 있으며, 지역 무형문화재의 경우는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명장 지원 업무는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인력공단이 전담하고 있다.

반면 식품명인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진흥과가 사업계획 및 예산 집행 등 전반적인 부분을 총괄하고 있는데, 다른 업무 등과 병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럴 경우 현안 문제에 우선순위가 밀려 식품명인에 대한 정책 및 지원이 소홀해 질 여지가 있다. 식품명인에 대한 관심 및  인식이 부족하다는 명인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직접적인 이유다. 또한 식품명인에 대한 정책이나 예산 확보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수준에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수혜대상 범위=식품명인은 지원을 받는 범위가 명인으로 한정돼 있는 반면 무형문화재는 보유자, 전수교육조교, 전수장학생, 보유단체 등으로 폭이 매우 넓다는 점도 차이를 보인다. 명장의 경우도 전수자에 관한 지원 규정이 마련돼 있어 식품명인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보완점은

가치·우수성 고려 현실 반영, 전반적 제도개선 목소리 고조
지원 근거 마련돼 있지만 간접지원으로 일부 대상만 수혜 
전수자까지 지원 대상 확대, 교육프로그램 등 강화 모색을


무형문화재와 명장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그 가치와 우수성 등을 고려할 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형평성과 적정성 등의 기준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제도의 전반적인 개선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식품명인에 대한 지원은 이보다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명인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은 커지고 있다.

한 식품명인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숙련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무형문화재와 명장과 같은 맥락에 있는데 식품명인들에 대한 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무형문화재와 명장과의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식품명인에 대한 지원 방안이 개선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도적으로 식품명인 지원에 대한 근거 규정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원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이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으로 지목된다. 임의 규정을 통해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지만, 대부분 간접 지원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식품명인에 대한 지원은 일부에만 해당되고 있고,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충분한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식품명인은 “50여 명의 식품명인들에게 매달 100만원씩 지원한다고 하면 소요 예산은 약 6억원 정도”라며 “이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확보될 수 있는 수준의 예산이며, 다른 장인제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식품명인들에게도 직접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수혜 범위를 확대하는 부분도 보완해야 할 지점이다. 이와 관련 최근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은 식품명인제도의 수혜대상 범위를 전수자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식품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현재 식품산업진흥법 상 식품명인제도에서는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사람들에 한정하여 각종 지원이 제공되고 있다”며 “하지만 식품 명인 뿐 아니라 식품 명인들 밑에서 배우고 그 기능을 전수하는 사람들도 우리 전통식품의 계승·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개인 차원에서 전통식품에 대한 연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이와 관련 식품명인의 한 전수자는 “전수자에 대한 지원 없이는 식품명인 육성 방안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며 “다른 제도처럼 전수지원금과 더불어 교육 프로그램 등을 확대하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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