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선별적 지원금을 받을 때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검열하게 됐다. 내가 지금 이 돈을 여기에 쓰는 게 맞는지, 주변에서 뭐라 하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편적 지원금을 받을 때는 이런 고민이 발동되지 않았다. 올해 민생지원금을 받을 때도 우리는 주변 모두와 함께 돈을 받았고 무엇을 썼는지 행정에 증빙할 필요는 없었다. 

| 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2021년 코로나로 모두가 고통 받던 시절 받았던 민생지원금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그 돈으로 친한 이웃을 초대해 한우 등심을 사서 구워먹었다. 고기는 맛있었고, 없는 살림 속 한우를 사서 누군가를 대접하는 비일상의 경험은 나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내 속을 든든하게 했다.

그 전에 받다가 포기해버렸던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금은 쓰면서도 눈치가 보였다. 누군가가 지원금으로 외제차를 고쳤다느니, 사치를 했다는 이상한 기사가 막 나돌았고, 하나둘씩 사용처에 제약이 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돈을 쓰고 내역을 보고하고 끊임없이 자격을 확인받다보니 위축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돈은 내가 3년 안에 성공적인 농업인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돈이었다. 해보니 3년이란 시간 안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6개월 만에 자격을 포기하고 영농조합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는데, 솔직히 속이 다 시원했다.

선별적 지원금을 받을 때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검열하게 됐다. 내가 지금 이 돈을 여기에 쓰는 게 맞는지, 주변에서 뭐라 하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편적 지원금을 받을 때는 이런 고민이 발동되지 않았다. 올해 민생지원금을 받을 때도 우리는 주변 모두와 함께 돈을 받았고 무엇을 썼는지 행정에 증빙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가게든 식당이든 활기가 도는 것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이번에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발표되면서 순창이 시끌시끌해졌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소득이나 재산과 관계없이 인구소멸지역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게 되는 기본소득이다. 일단은 시범사업이라 69개의 인구소멸지역 중에 단 6곳만 선정될 예정이어서 그 안에 순창이 들어가고자 애를 쓰고 있다. 지자체의 추진의지 역시 선정에 중요한 평가기준이다 보니 순창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담당 TF팀을 만들고 간담회를 하고, 촉구대회 등을 열며 유치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미 2023년부터 이 사업을 알고 있었다. ‘농어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라는 단체를 통해 2년 넘게 이미 민간에서 지원금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전국 농어민들이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촉구하는 단체로 먼저 청년농어민에게 3년간 기본소득을 주는 사회실험을 진행했다. 나는 이 사회실험의 참여자로 선정되어 이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아준 소중한 돈을 매달 받아오고 있다. 가끔 간담회나 연구 인터뷰 등을 하기는 했지만, 사용내역을 증빙하거나 인증하는 경우는 없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청년농업인이라는 이유로 매달 지원을 받았다.

몇 명만 선발해서 주는 돈이다 보니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농촌에서 자리 잡은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내가 이 돈을 받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사회실험이니 받은 만큼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싶은데 자신이 없었다. 감사하지만 민망했다. 그러나 이 돈은 나에게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돈이 없었다면 중간에 일을 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농사를 짓다보면 돈이 마르는 시기가 있는데, 그 때마다 요긴하게 썼다. 돈이 마르지 않는 시기에는 오롯이 나를 위해 썼다. 필라테스를 배우며 아프던 허리가 좋아졌다. 필라테스는 사치라고 생각하며 엄두를 못 내왔었는데 오히려 건강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줬다.

농촌에서 마주했던 지원금들의 상당수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저런 제약과, 조건과 자격 등으로 사람을 비참하게 한다. 어떤 언니는 말했다. ‘공무원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이 돈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을 꺼라고 생각하며 이미 나를 잠정 범죄자로 보는 것 같았어’. 여기에다 자격에 맞는 사람인지, 또 돈을 목적대로 사용했는지를 증빙하기 위한 수많은 행정적인 업무가 따라오기 때문에 받던 사람들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내가 계속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묵묵히 나를 지원하는 느낌이었다. 일정규모 이상의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하지도 않았고, 농업에 관련된 것에만 사용해야한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주어지는 이 돈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던지. 지금은 시범사업으로 혼자만 받아왔지만, 농어촌기본소득 지역으로 선정된다면 순창은 이 돈을 모두가 함께 받게 된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역의 행보에 힘을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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