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훈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기회·과정의 형평에 가까운 균형정책
왜곡된 인식, 단기적 평가로 재단 안돼
정책·예산 지방 우선 배분에 바람 커져

정권 교체시마다 용머리(龍頭)로 관심을 끌다가 흐지부지 관심 밖으로 밀려나 뱀꼬리(蛇尾)가 되는 정책 단골메뉴가 있다. 바로 지역균형발전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일극체제를 완화하고 지역의 고른 발전에 목적을 둔다. 효율성보다는 형평성에 더 방점을 둔다. 좋은 목적의 정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때로는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목 하에 수천억 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지역개발사업(프로젝트)들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무리수를 감행하기도 한다. 포퓰리즘, 선심성 국고 낭비 등 비난이 빈번히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 또한 지역균형발전인 셈이다.

반면에 정책적으로나 국민적으로 관심도가 높지 않지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묵묵히 지속되어 온 정책이 있다. 지역별로 경쟁(잠재)력이 높은 특화작목을 연구개발하고 육성시켜 농업의 측면에서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정책이 그것이다. 지역특화작목을 연구개발하고 육성하는 정책은 지난 30여 년 동안 지속된 정책이다.

1990년대 몇몇 특화작목연구소(시험장) 설립을 기점으로 현재 9개 광역지자체 소속으로 전국에 42개 연구소와 5개 시험장이 운영되고 있다. 2019년에는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어 제1차 종합계획(2021~2025)이 수립되면서 지역특화작목 기반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보다 체계적인 추진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제1차 종합계획은 69개 특화작목(대표작목 9개, 집중육성작목 18개, 자체육성작목 42개)의 연구개발 및 육성을 위해 5년 동안 약 900억 원을 투입하도록 계획되었다. 계획기간 동안에 한 차례 지역특화작목이 재편되었고, 현재는 제2차 종합계획(2026~2030)을 수립하고 있다.

농업 부문에서 거의 유일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추진기반이 점차 탄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특화작목 정책을 실제로 실행하는 여건은 녹록지 않고,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위협받고 있다. 예기치 못한 새정부 출범으로 국정 및 농정방향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이 시점에서 지역특화작목 정책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안정적 실행기반을 담보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와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지역특화작목 정책이 온전히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정책적 고려와 성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것은 지역특화작목 정책에 대한 인식과 평가잣대의 전환이다. 지역특화작목 정책은 초중등 의무교육과 마찬가지로 기회의 형평, 과정의 형평에 가까운 균형정책이다. 지역별로 경쟁(잠재)력이 높은 특화작목을 육성하여 지역(농업)경제에 이바지하는 기본적인 체력과 역량을 키워주는게 핵심적 역할이다. 성공적으로 성장하는 특화작목도, 제 자리에 머무르는 특화작목도 나올 수 있다. 이는 정책의 공과(功過)로만 보면 안 된다. 기후변화, 병해충, 소비트렌드 등의 다변성과 불확실성이 결합된 결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제조, 서비스업과 달리 농업이 가지는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농업과학기술(S&T), 농업연구개발(R&D)의 약 70%는 현상을 유지하는데 소요된다는 주장처럼,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딸기, 수박, 옥수수, 키위 등의 품질 유지에도 상당한 노력과 재원, 즉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일환이지만 결과의 형평 내지 단기적, 가시적인 결과로써 엄격하게 평가할 정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에 대고 “지난 30여 년 동안 지역특화작목 정책을 추진했는데 딸기 외에 이렇다 할 성과가 있는가?”라고 묻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지금 먹고 있는 특화작목의 생산량과 품질이 떨어지고 가격이 크게 오르는 상황이 닥쳐서야, 지역특화작목 정책의 필요성을 폄하하는 우문에 비로소 현답(賢答)을 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상황을 어느 누구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왜곡된 인식과 평가잣대는 지역특화작목 정책과 관련된 예산의 문제로 귀착된다. 제1차 종합계획(5년)의 계획예산 약 900억 원은 적지 않은 돈이지만, 69개 특화작목으로 쪼개어보면, 하나의 특화작목에 1년 동안 불과 2~3억 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해당 예산으로 품종 개발·개량부터 유통·판매·수출에 이르는 농업가치사슬의 연구개발(R&D), 연구시설·장비의 현행화는 물론 유통·판매·수출 촉진까지 감당해야 한다. 관련 법률과 종합계획으로 정책 추진기반은 강화됐지만, 실행기반인 예산은 고점기 대비 반토막 밑으로 축소되었고, 계획과 달리 실예산은 한 해 100억 원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단언컨대 이 예산으로 현재 특화작목의 생산성 및 품질, 농가소득까지 챙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업이다.

내년부터 제2차 종합계획이 시행되지만 계획에 어떤 내용이 담기든 간에 정책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적정예산에 대한 합리적 검토는 물론 충분한 배려와 배분이 필요한 대목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새 정부 1개월, 숨 가쁘게 국정 및 농정 방향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지역특화작목 기반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언제쯤, 그리고 얼마나 관심이 집중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정책과 예산을 배분할 때 지방을 우선 배려할 것이라는 새 정부의 국정기조가 지역특화작목의 연구개발 및 육성으로 적극 이어지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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