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훈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트럼프 1기 때보다 흔적 지우기 ‘심화’ 
통상전쟁에 자칫 후순위로 밀릴까 걱정
기후스마트농업은 미래 대비한 생존의 길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통치의 부활은 세계 경제 및 산업의 질서와 안녕에 큰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농업도 예외는 아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전쟁은 농업의 세계화 및 자유화를 위협하고, 패권국 중심 농업통상 관계의 재배치가 세계 각국의 농업정책 이슈를 지배할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관세가 무기화됨에 따라 자국주의와 경제논리로 점철된 농업통상이 부득불 농업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당장의 농업통상 대응에 가려져서 자칫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후스마트농업(Climate-Smart Agriculture; CSA)이 후순위로 밀려나는데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제사회는 글로벌 식량안보라는 인류공영의 가치, 기후위기 심화에 맞선 생존전략으로서 기후스마트농업과 관련된 인식 강화와 연대 형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2010년 개최된 ‘세계식량안보를 위한 기후스마트농업 컨퍼런스’에서 기후스마트농업을 공식의제로 제안하기 이전부터 형성되어 온 위기 인식, 이후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합하면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공들여 탑을 쌓은 셈이다.

그러나 지금 공든 탑이 흔들리고 있다. 자타공인 기후변화 대응의 선도자인 글로벌 농업강국 미국이 또 다시 기후스마트농업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며 사실상 정책적 후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약속인 파리협정 재탈퇴,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철회, 기후스마트농업 관련 예산, 연구 및 정보의 대폭적 감축 내지 폐지로 미국은 기후스마트농업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미국 농무부(USDA) 웹사이트 내 기후변화 관련 자료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고, 기후스마트농업을 지원하는 31억 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보조금은 중단될 예정이다.

환경단체들은 기후스마트농업, 세계 식량안보를 파괴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기후검열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농무부를 제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이상기후로 인한 농장 구호와 농작물 보험에 수백억 달러를 지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후스마트농업을 외면하려는 현실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기후스마트농업 흔적 지우기가 한 국가만의 일시적 일탈일지, 아니면 나쁜 영향력에 따른 기후재앙농업의 서막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자국주의 보호농업, 경제농업을 우선할 때 얻게 될 단기적, 금전적 보상의 유혹은 상당하다. 이로 인해 그동안 어렵게 성취해 낸 기후스마트농업에 대한 공감대, 농업정책의 추진, 농업현장의 참여가 위축될 위험성 또한 상당하다.

십년수목 백년수인(十年樹木 百年樹人)이라는 옛말이 있다. 나무는 10년을 내다보고 심고, 사람은 100년을 내다보고 키운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먼 미래를 생각하며 장기적으로 교육, 정신, 철학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농업에 대입해 보면 나무는 관행농업이고, 사람은 미래를 대비하는 기후스마트농업이다. 지난 20여 년은 향후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기후스마트농업을 실천하는 농업인, 지지하는 국민과 정책입안자를 늘려가는 시간이었다. 지금 주춤한다면 주춤한 시간 이상으로 회복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기후스마트농업을 노골적으로 부정하거나 자국주의 보호농업·경제농업으로 급선회하는 국가는 드물다. 기후스마트농업을 등한시하면 기후위기 심화에 직면한 농업을 되살리기 위해 향후 무역의 관세(關稅)보다 더 무거운 국가재정이자 국민 세금, 즉 공공의 대가인 관세(官稅)를 물게 될 것임을 이미 많은 국가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비록 기후스마트농업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농식품 분야 탄소중립 농업정책, 기후변화 대응(적응 및 완화) 농업기술혁신(R&D)을 강조하며 농업의 미래 기틀을 다지고 있다.

다만 예기치 못한 대선을 앞두고 농정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은 한국 기후스마트농업에 큰 변수이다. 지난 세월 쌓아 온 공든 탑이 위협받고 한국 농업에도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농업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십년수목 백년수인의 의미를 교훈 삼아야 한다. 기후스마트농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길이다. 지금은 기후스마트농업에 필요한 농업정책 쇄신과 농업기술 혁신에 변함없는 지지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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