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공산업, 변해야 산다
<하> 가공용 정부양곡 품질 향상 절실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국내 쌀가공산업의 발전을 위해 쌀가공산업 관계자들은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꼽았다. 돌이나 이물이 섞인 가공용 정부양곡으로 쌀가공제품을 생산·판매했을 때 모든 책임은 쌀가공제조업체들이 져야 하고, 더 나아가 소비자들의 쌀가공제품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산업 위축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 향상을 위해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인식 개선과 시설 투자, 명확한 책임 주체 지정과 문제 해결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쌀가공제조 현장을 찾아 가공용 정부양곡의 문제와 개선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돌과 이물 섞인 가공용 정부양곡 

쌀가공제품 생산·판매 A업체
포장 직전 육안검사·선별 분주
돌·나일론 실·머리카락 등
재선별 위해 두 명이나 고용

석발기 등 시설 구비 여력 없어
이물로 1500만원어치 폐기해도
“농관원 검사 통과”…적반하장

A 업체가 구매한 가공용 정부양곡에 발견된 돌과 나일론 실, 벨트 조각 등의 이물. 
A 업체가 구매한 가공용 정부양곡에 발견된 돌과 나일론 실, 벨트 조각 등의 이물. 

지난 2일 쌀가공제품을 생산·판매하는 A 업체를 방문했을 때 작업이 한창이었다. 깔끔한 시설에서 기계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점은 제품 포장 직전 단계에서 두 명이 쉴 틈 없이 육안검사와 선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A 업체 대표에게 가공용 정부양곡에 대해 묻자, 그간 쌓였던 불만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그는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쌀가공제품의 원재료인 가공용 정부양곡에 이물이 섞여 공급돼 제품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물로 인해 1500만원 어치의 제품을 폐기한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A 업체 대표가 경험한 이물은 돌과 나일론 소재의 실, 벨트 조각과 머리카락 덩어리 등이다. 이 중 대표적인 건 돌이다. 재선별을 통해 골라내더라도 제조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제품에 섞이게 되고, 소비자 섭취 시 치아가 깨지는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소비자에게 사과와 함께 적절한 보상을 하고 잘 마무리 됐지만, 깨져버린 소비자 신뢰는 회복할 수 없었다는 게 A 업체 대표의 설명이다. 나일론 소재의 실과 벨트 조각도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쌀을 운반하는 포대에서 떨어져 나온 이물로, 색이 쌀과 같이 하얗다보니 색채선별기에서 걸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황당했던 이물은 머리카락 덩어리였다. 도정이나 배송 등 공정의 모든 단계에서 머리카락 덩어리가 들어갈 수가 없는데 머리카락 뭉치가 섞인 건 아마도 작업 마지막에 납품 무게를 맞추려고 바닥에 떨어진 알곡을 쓸어 담아서 발생했을 것이라는 게 A 업체 대표의 추측이다. 

A 업체 대표가 가장 큰 문제로 제기하는 건 이물이 발생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 가공용 정부양곡 구매 업체만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가공용 정부양곡에서 이물이 발생해 도정을 진행한 정부양곡 도정공장에 문제를 제기하면 농관원 검사를 통과했는데 왜 문제를 제기하며, 시중 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가공용 정부양곡을 쓰면서 불만이 많다는 등의 적반하장식의 반응을 보여 당황스럽다는 게 A 업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에 이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생산현장에 돌을 걸러내는 석발기와 색채선별기 등의 시설을 구비하라고 하는데 규모가 작은 업체들이 어떻게 한 대에 3000~6000만원인 시설을 구비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가공용 정부양곡 외에도 kg당 3000~3600원에 시중에서 쌀을 구매해 사용하는데 문제가 발생하면 판매자가 끝까지 책임지며 처리하는 반면 가공용 정부양곡은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고 구매자인 쌀가공제조업체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형태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종 제품에 대해 이물 육안검사와 선별을 하는 직원 두 명을 고용해 최대한 이물을 거르고 있지만 시간과 인력 투입 대비 역부족인 상황이다”며 “쌀가공산업이 발전하려면 새로운 제품 개발에 전념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이물과의 전쟁을 벌이다보니 제품 개발은 먼 꿈이 된지 오래다”고 강조했다. 
 

떡을 제조하는 B 업체가 문제를 제기한 가공용 정부양곡 포대 안에서 돌가루와 먼지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떡을 제조해 판매하는 B 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가공용 정부양곡을 사용하는 이 업체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떡을 제조하기 위해 가공용 정부양곡 포대를 뜯었는데 쌀의 색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포대들에서 먼지와 돌이 잔뜩 섞여 있는 쌀을 꺼내 플라스틱 거름망에 30초가량 흔들자 윗면에는 먼지 섞인 어두운 쌀과 부피가 큰 돌이 모였고, 거름망 아래에는 작은 돌가루를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된 포대들을 살펴보니 다른 포대에 찍혀 있는 생산연도와 도정연월, 검사 도장 등이 찍혀있지 않았다. 

B 업체 대표는 이물이 과도하게 섞여 있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관할 지자체에 보고를 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현장 검증에 나온 지자체 관계자에게 돌아온 건 사실 확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지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면 가공용 정부양곡을 앞으로 구매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협박성 답변이었다는 게 B 업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사람이 먹는 식품의 원재료에서 먼지와 돌 등이 나와선 안 되고, 또 가공용 정부양곡의 배정과 관리를 담당하는 지자체는 문제 제기를 지속적으로 하면 다음부터 구매가 힘들어진다는 말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가공용 정부양곡 품질 향상 방안 

도정 담당 이름 넣어 문제 추적
명확한 책임 주체 찾기도 시급

쌀가공제조업체들은 가공용 정부양곡 품질이 향상되기 위해선 ‘추적과 책임’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식품의 경우 어떤 공장의 어느 작업자가 생산했는지 제품에 표기돼 있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추적이 가능하지만, 가공용 정부양곡에는 도정공장의 이름만 적혀 있어 작업자까지 추적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가공용 정부양곡 포대에 도정공장의 이름과 더불어 도정 담당자의 이름까지 넣으면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도 지금보다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도정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명확한 책임 주체가 필요하다는 점도 요구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가공용 정부양곡의 소유자는 농림축산식품부이고, 도정은 정부양곡 도정공장, 검사는 농관원, 보관은 정부양곡 보관창고, 이송은 민간 택배사 등 여러 유통 단계에 걸쳐 주체가 다양하다. 따라서 가공용 정부양곡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고, 책임을 지는 주체도 없는 상황이다. 

문제 발생 시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보니 구매자들은 전적으로 가공용쌀 품질관리센터의 중재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 제기 이후 현장 조사와 중재 기간 등에 소요되는 시간이 2~3달이고, 대체할 수 있는 가공용 정부양곡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신고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A 업체 대표는 “상식적으로 물건에 하자가 있을 때 판매자가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데, 가공용 정부양곡은 구매자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형태다”며 “가공용 정부양곡에 이물이 발생해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즉각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공용 정부양곡 품질 개선을 위한 업계 노력
저품질 원료곡 사료용 전환색채선별기 성능·채널수 강화 추진

곡물협회, 도정공장주 교육도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이뤄지자 정부양곡 도정공장들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대한곡물협회는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 향상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한곡물협회는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 향상을 위해 도정공장 원료 탱크에 투입 시 품질이 떨어지는 원료곡은 지자체와 협의해 주정이나 사료용으로 전환하고,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기계 및 시설을 품질향상 중심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특히 이물질 제거에 필요한 색채선별기 성능과 채널수를 강화하고, 도정공장 1일 점검표 작성 의무화와 지도 점검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정부양곡 도정공장주의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반기별 1회 이상 품질 및 민원 대응 교육을 실시하고, 품질 관련 위반 업체에 대해 위반 정보와 물량 등에 따라 과징금을 징수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양곡의 품질변화 방지를 위해 저온창고 등의 시설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대한곡물협회 측은 “상온 창고에 장기 보관된 벼는 설치류나 벌레, 변질품 등으로 품질이 떨어져 적격품 생산에 애로가 많다”며 “정부양곡의 품질변화 방지를 위한 시설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도정공장주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대한곡물협회가 제시한 가공용 정부양곡 품질개선을 위한 방안을 두고 쌀가공업계에서는 명확한 책임 주체 지정과 보상에 대한 계획이 빠져 있는 점에 대해 아쉽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쌀가공업계 관계자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주들의 인식과 시설 개선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디서 잘못됐는지 추적하고 책임을 지는 시스템 마련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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