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공산업, 변해야 산다 <상> 국내 쌀가공산업 현황과 해결과제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국내 쌀가공산업이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또 최근에는 케이-팝(K-pop) 열풍에 힘입어 해외시장에서 냉동 김밥과 떡볶이 등의 쌀가공식품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쌀가공산업이 성장하며 가능성을 보이자 정부도 2028년까지 국내 쌀가공산업 규모 17조원과 쌀가공식품 수출액 4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담은 ‘제3차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외에서의 쌀가공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도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쌀가공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쌀가공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원재료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강조하고 있다. 쌀가공제품의 원료인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에 대한 변화가 없다면, 정부가 목표한 계획 달성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본보는 국내 쌀가공산업의 현황과 현장에서 제기하는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 문제, 개선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쌀가공산업의 현주소
2022년 기준 시장규모 8조4000억K-콘텐츠·글루텐프리 인기로 수출 늘어

쌀의 수급불균형 해결에 일조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식품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쌀가공산업은 2022년 기준 8조4000억원 상당의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쌀가공식품은 떡이나 쌀국수 등 일부 제품에 국한돼 있었지만, 이제는 냉동김밥과 간편 가공밥, 증류주와 약과, 간편 도시락 등 다양한 상품이 출시돼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히고 있다. 또 쌀가공식품은 언제 어디서든 한 끼 식사대용으로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쌀가공산업 시장규모는 2017년 4조9000억원에서 2018년 6조3000억원, 2019년 7조2000억원, 2020년 7조3000억원, 2021년7조 5000억원, 2022년 8조4000억원 등 급격하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수출도 쌀가공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케이-팝(K-pop)과 영화·드라마 등이 전 세계인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증가했다. 이 중에서도 인기를 끈 한국 음식은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냉동 김밥과 떡볶이 등이었고, 이로 인해 쌀가공식품 수출액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쌀가공식품 수출액은 2017년 7200만 달러에서 2019년 1억800만 달러를 달성하고, 2020년 1억3800만 달러, 2021년 1억6400만 달러, 2022년 1억8200만 달러, 2023년 2억 달러(추정치) 등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곡식에 함유된 글루텐 성분이 소화불량 등을 야기하는 글루텐불내증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며 국내외에서 글루텐프리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는데, 쌀로 만든 글루텐프리 제품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어 쌀가공식품 수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쌀가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남는 쌀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쌀가공식품을 제조했다면 이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며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간편식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 변화로 조리나 섭취가 간단하지만 영양소는 풍부한 쌀가공식품이 각광받아 쌀가공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쌀가공산업 발전을 위한 대책
‘17조 규모 목표’ 3차 쌀가공산업 기본계획
10대 유망품목·수출 업체 육성 등

정부도 쌀가공산업의 확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월 23일 발표한 ‘제3차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기본계획’에는 향후 5년간 국내 쌀가공산업의 청사진이 담겼다. 제3차 쌀가공산업 기본계획에는 미래 유망품목 집중 육성, 국내외 수요기반 확대, 산업 성장기반 고도화 등의 3대 주요과제와 9개 세부 과제를 통해 2028년까지 쌀가공산업 시장규모 17조원과 수출액 4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쌀가공산업에 대한 육성 의지와 세부계획이 담겼다. 

정부는 우선 국내외 식품 소비 유행을 고려해 간편과 건강, 케이-푸드와 뉴트로 등 4대 시장전략을 중심으로 간편 가공밥과 죽, 도시락과 김밥, 떡볶이와 냉동떡, 쌀 증류주와 쌀 음료, 쌀국수와 혼합면, 쌀빵과 쌀과자 등 10대 유망품목을 육성할 계획이다. 또 2023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한 가루쌀의 생산 및 유통 체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식품·외식업계와 협력해 제품개발과 판로확충을 지원하며 오는 2027년까지 수입 밀가루 수요의 10%를 가루쌀로 전환할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쌀가공식품 시장 확장을 통해 가공용 쌀 소비량도 2022년기준 57만톤에서 오는 2028년까지 72만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국글루텐프리인증을 받은 기업 100개를 육성하고, 해외 주요 글루텐프리 인증을 받은 쌀가공업체 수도 2028년까지 30개로 늘릴 예정이다. 또 수출액 4억 달러 달성을 위해 주요 수출국과 품목별 특화전략을 수립하고, 맞춤형 지원을 강화해 쌀가공식품 수출 대표업체 200개를 육성한다. 

농식품부는 “쌀가공산업 육성으로 우리 쌀 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하고, 쌀 소비 확대로 안정적인 수급 유지 기반을 강화하겠다”며 “최근 냉동김밥과 떡볶이 등 해외 시장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다양한 쌀가공식품의 국내외 판촉을 적극 지원해 현재의 시장 성장세를 강력히 견인하겠다”고 강조했다. 

 


#쌀가공산업 발전을 위한 선결과제
시설개선 의지 없는 도정공장‘을’ 가공업체는 문제제기도 못해 

매달 바뀌는 도정공장·지역
균일한 품질 유지할 수 없어
쌀가공제품에 ‘악영향’ 미쳐

전국 정부양곡 도정공장 120곳 
기존 이외 신규는 ‘거의 불가능’
보복 걱정에 개선 요구 어렵고
신고해도 처리 기간 ‘하세월’

쌀가공산업이 국내외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고, 농식품부도 쌀가공산업의 육성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 개선이다. 

쌀가공제조업체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점은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공용쌀을 도정하는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지역이 매달 바뀌다보니 품질이 균일하지 않고, 이에 따라 쌀가공제품의 품질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부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한 가공용쌀에 돌과 벨트 조각, 천과 설치류 사체 등의 이물질이 섞여 들어온다는 점이다. 제조과정에서 최대한 쌀에 섞인 이물을 골라내고 있지만, 기계나 사람의 눈으로 고르지 못한 이물질이 쌀가공식품에 섞여 출고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쌀가공제조업체들이 떠안아야 하고, 소비자의 신뢰도도 떨어져 막대한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쌀가공업계는 이 같은 가공용쌀 품질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무책임을 꼽고 있다. 현재 전국에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120개(2023년 4월 기준)가 존재하는데 사실상 신규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설 투자나 개선에 대한 의지가 없고 가공용 정부양곡의 품질 향상도 기대하기 힘들며, 구매자인 쌀가공제조업체들이 오히려 을의 위치에 있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힘들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이 사실상 기존에 선정된 곳 외에는 신규 지정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운영 주체들이 시설을 개선할 의지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며 “또 한정된 정부양곡 가공공장의 수 때문에 구매자인 쌀가공제조업체들이 문제가 발생해 이의를 제기하면 거래를 끊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는 일부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가공용쌀 품질 개선을 저해하고 있는 또 다른 원인으로 정부의 제도를 꼽았다. 현재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책임생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원료별 도정수율이 각각 다르긴 하지만 보통 72%라고 가정할 때 도정공장은 벼 100t 중 72t의 가공용쌀만 생산하면 되고, 나머지 물량은 귀속된다. 따라서 가공공장들은 계약된 생산량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품질 문제에 대해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 발생에 대한 후속대책이 미흡한 점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가공용쌀에서 이물 발생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쌀가공식품협회 공급관리시스템 내에 설치된 가공용쌀 품질관리 신고센터에 신고를 하고 대한곡물협회 품질관리실과 중재 또는 원인규명 등의 프로세스를 통한 처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처리 기간이 오래 걸리고, 문제가 발생한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보복이 두려워 문제제기를 쉽게 할 수 없다는 게 쌀가공제조업체들의 설명이다. 

쌀가공제조업체 관계자는 “가공용쌀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해서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는 농관원 검사에서 합격한 쌀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며 “샘플검사 외 검사되지 않은 쌀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합격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대응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도 쌀가공제조업체들이 가공용쌀의 품질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개선 방향을 업계와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문제가 지속되는 가공공장에 대해 가공물량을 줄이거나 일정기간 가동을 중단하는 등 패널티를 적용하는 방안을 지자체와 협의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한병 농식품부 식량정책과 서기관은 “가공용쌀의 품질 문제와 관련해 연관된 협회 및 지자체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정부양곡 가공공장에 대해선 어떤 패널티를 부과하고, 가공용쌀의 품질 향상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다”고 말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