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기노 기자] 

정부 병충해 기준 마련 나섰지만
보험료 인상·도덕적 해이 등 우려
보험상품 개발까지 쉽지 않아
전문가 “과감한 정책결단 있어야”

지난해 집중호우와 폭염 등 이상기후로 탄저병이 창궐하면서 단감과 사과 등 과수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가운데, 정부가 탄저병을 농작물재해보험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보험상품 개발까지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과감한 정책적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제1차 농업재해보험 발전 기본계획’을 통해 2023년까지 보험화가 필요한 자연재해성 병충해 기준을 마련하고, 이후 관련 보험상품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농작물재해보험은 4개 품목(벼, 고추, 감자, 복숭아)에 대해서만 병충해 피해를 보상하고 있는데, 탄저병의 경우 재해보험 대상에도 포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재해보험정책과 관계자는 “지난해 이상기후로 단감과 사과 등 과수농가의 탄저병 피해가 컸고, 여러 품목에서 재해보험에 탄저병을 적용시켜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면서 “지난해 집중호우로 방제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은 자연재해로 볼 여지가 있다고 인지하고 있고, 현재 탄저병을 자연재해성 병충해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관련 연구용역을 마무리하고, 탄저병 등 자연재해성 병충해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지만, 연내 보험상품 출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농식품부는 탄저병의 재해보험 적용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보험료 인상’과 ‘도덕적 해이’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탄저병 방제를 열심히 한 농가와 그렇지 않은 농가를 구분하지 않으면, 보험요율만 올라가고,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면서 “이러한 이유로 병충해 피해와 관련한 보험 상품화에는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선진국도 도덕적 해이 문제 때문에 조금씩 보험을 확대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신중론이 기후변화 속도에 못 미치는,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수미 녀름 부소장은 “지원주체인 정부가 신중하게 검토하는 건 이해되지만, 기후변화는 빨라지는데 정부 정책이 뒤쳐질 경우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커지고, 보상은 제대로 못 받는 악순환이 계속될 우려가 있다”면서 “지금은 보수적인 접근보다는 재해보험을 과감하게 확대하는 정책이 시급한 상황으로, 도덕적 해이로 선량한 농민들이 피해를 입게 되면 현장에서 보험 개선 요구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도 “탄저병 등 병충해를 보험대상에 포함시키면 반대급부로 보험료는 상승할 수밖에 없겠지만,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대부분의 다른 나라도 재해보험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라면서 “품목이 다양하고, 요구하는 보장범위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지자체와 농진청, 농금원, 농협손해보험 등 유관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 차원의 보험기획 능력을 강화할 필요성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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