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이평진 기자] 

조선비즈 ‘사과 첫 수입’ 보도
생산자 “협의 중단” 즉각 반발
정치권까지 논란 확산 조짐에
농식품부 “수입 임박 오해” 해명

물가 앞세워 수입 확대 설레발
국내 생산기반 유지에 ‘독’
“농업 망가뜨리는데 혈안” 분통


우리 정부가 사상 첫 사과 수입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뉴질랜드와 검역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유력 언론의 단독보도가 나오면서 사과 수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농업계 안팎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설을 앞두고 과일 가격안정 차원에서 수입 과일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물가정책 기조와 맞물리며, 사과 수입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추측 속에서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충격과 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경제지인 <조선비즈>는 1월 10일자 기사 “정부, 사상 첫 사과 수입 추진...미·뉴질랜드와 협의 중”이라는 제목의 단독기사를 보도했다. 설 성수품인 사과와 배 등 주요 과일 가격을 잡기 위해 사과 수입을 위한 검역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다. 이 매체는 “그동안 사과가 신선과실 상태로 공식 경로를 거쳐 국내로 수입된 적은 없었다”며, 설 앞두고 사과 수입이 임박한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갔다.

해당 보도를 접한 생산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있다. 10일 전국사과생산자협회(회장 김충근)는 성명을 내고 “전국의 사과 생산 농가들은 당혹감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정부는 사과 수입을 위한 모든 협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사과값이 전년 대비 30% 급등했으니 수입을 통해 가격을 잡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그러나 급등의 원인이 생산량 감소 때문이고 이로 인해 농가는 팔 수 있는 사과도 없고 소득이 오르지도 않았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수입을 하면 사과값이 떨어지고 농가 수입은 평년보다 떨어지게 된다. 물가잡기용 수입은 농가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이개호 더불어민주당(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정책위의장) 의원도 11일 “물가안정을 이유로 추진하고 있는 사과 수입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개호 의원은 “가격이 오르면 수입하고 내리면 나 몰라라 하면서 우리 농업과 농산물의 가치를 홀대하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대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비단 농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환경과 글로벌 식량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의 식량 안보를 위협하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논란이 확산 조짐을 보이자 농림축산식품부는 10일 “사과, 배뿐만 아니라 오렌지, 망고 등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 검역 절차에 따른 협의가 진행 중일 뿐 이외 다른 요인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출국에서 요청한 외국 농산물의 수입위험분석 절차는 그간 진행돼 온 것이기 때문에 보도대로 ‘검역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고, 이와 별도로 사과 수입과 관련해 특별히 새롭게 추진되는 부분이 없다”며 “해당 보도가 설을 앞두고 사과 수입이 임박한 것 같은 오해를 줄 수 있어 매체에 항의 의견을 전달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외래병해충 유입 피해 방지 등 검역 차원에서 수입위험분석(IRA)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접수 △착수통보 △예비위험평가 △개별병해충위험평가 △위험관리방안평가 △검역요건 초안 작성 △입안 예고 △고시 등 모두 8개 단계다.

우리나라에 사과 수입위험분석 절차 개시를 요청한 국가는 11개국인데, 이들 국가 중 가장 절차가 많이 진행된 국가는 일본(위험관리방안평가, 5단계)이다. 일본은 1992년에 절차 개시를 요청했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뉴질랜드·독일이 3단계인 예비위험평가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도 1993년 요청 이후 30년이 지난 상황이다. 나머지 브라질·아르헨티나·이탈리아·중국·포르투갈·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은 1단계다.

사과 수입이 필요하다는 기조의 언론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11월 <한국경제>는 사과 수입 제한으로 국내 소비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과를 사 먹고 있다며, 검역을 앞세운 비관세 수입 장벽을 풀어줘야 한다는 취지의 보도<본보 2023년 11월 14일자 관련기사 참고>를 몇몇 낸 바 있어 올해 작황 부진으로 어려움이 큰 사과 생산자들의 분노를 샀다.

이 같은 보도 행태에 대해, 농업계 관계자는 “사과 가격이 높다고 농민들이 돈을 더 버는 구조가 아니다. 공급 부족 상황에서 수입은 오히려 국내 생산 기반을 망치는 ‘독’이 될 수밖에 없는데, 수입 장벽을 풀고 수입을 해야 한다는 식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수입 일변도의 정책 방향을 부추기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는 셈”이라면서, “영농 여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농업을 망가뜨리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고성진·이평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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