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올해 극심한 저온 피해 등 이상기후 여파로 유례없는 가격 고공행진을 띠면서 이른바 ‘금사과’ 등 자극적인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 ‘사과 수입 제한(비관세장벽)을 풀어야 한다’는 취지의 보도까지 나오고 있어 언론 행태가 ‘점입가경’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 우려 자극 보도에 농경연 “소매가는 상승폭 제한” 설명

이달 3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11월 과일 관측을 발표하자, “11월에도 금사과, 전년 도매가격 대비 79.9~94.2% 올라 두 배 수준 될 것”<한국경제>이라는 기조의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 매체의 보도 내용이 농경연 자료를 바탕으로 도매가격을 전년 대비 단순 비교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례적으로, 농경연은 “생육이 나빠 도매가격이 크게 상승했으나 정부의 수급 안정 대책으로 소매가격 상승 폭은 제한되고 있다”고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사과 11월 도매가격이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할 전망이지만, 소매가격은 20% 수준의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언론 보도가 소비자들의 과도한 우려를 부추길 수 있다고 보고 설명자료를 배포했다는 게 농경연 관계자의 설명이다.
 

‘폐쇄적인 공급구조’ 탓하며 수입 허용 취지 보도까지 ‘점입가경’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 같은 사과 가격 폭등이 벌어지는 원인이 사과 수입을 막고 있는 ‘폐쇄적인 공급구조’에 있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놔 생산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농경연의 관측 발표에 앞서 11월 1일 “수입장벽 30년...한국 사과, 세계서 가장 비싸졌다”는 제목으로 <한국경제>에 실린 해당 기사는, 이후 11월 6일 허원순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이 쓴 “[시사이슈 찬반토론]‘수출 한국’의 사과 수입 제한, 바람직한가”라는 제목의 기사에도 주요 내용이 반영됐다.

요지는 검역을 앞세운 비관세 장벽으로 미국 등 외국 사과가 국내에 들어오지 못해 공급이 부족할 경우 소비자들이 비싼 사과를 사 먹고 있는 실정이라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해서라도 사과 수입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기후에 더해진 ‘소비부진·인력난·생산비 상승’ 현장 삼중고 나몰라라

관련 생산업계에서는 수입 일변도의 대책이 근본 처방이 아니라 반대로 생산 분야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며, 영농 현장을 알지 못하는 무책임한 보도라는 반응이다.

사과 생산자단체의 관계자는 “해당 기사를 보고 분통이 터졌다. 올해 사과 가격이 오른 것은 과일량 부족이 이유인 것은 맞다. 가격이 높아 소비자 부담이 커진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냉해와 긴 장마, 고온 과습이 지속되면서 생산량이 줄고 탄저병 등이 전국으로 확산돼 애지중지 키운 사과를 탄저병으로 폐기해야 하는 농민들의 아픔을 아는지는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소비 부진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농촌 노동력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고 자재 가격도 올라 생산 현장은 ‘삼중고’ 속에서 위기감이 크다. 농민 대부분이 빚을 내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가 입장에선 한창 수확기에도 흉년으로 출하물량이 급감해 판매할 사과가 없어 농가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상대적 박탈감, 이에 더해 주변의 차가운 시선으로 속앓이까지 늘어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미 식물검역전문가 회의’ 시점 맞물려미국 자국 과일 수입 허용 요구 확대

특히 공교롭게도, 해당 보도가 나온 시점이 ‘한·미 식물검역전문가 회의’가 열리는 시점과 맞물려 있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곱지 않다. 7~8일 미국 현지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이번 회의에서 미국 정부는 자몽, 감자 등 자국 과일 품목의 수입 허용을 우리 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관측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신선 과일이 수입되기 위해서는 수입위험분석(IRA) 8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사과의 경우 일본이 5단계(관리방안평가)로 절차상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과 뉴질랜드가 3단계(예비위험평가), 독일이 2단계(착수), 중국·이탈리아·포르투갈 등이 1단계로 아직 IRA를 통과한 국가가 없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농가들이 대응할 수 없는 생산 분야의 리스크 요인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 기반을 안정화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이 우선돼야지, ‘수입 만능주의’ 발상은 지속가능한 생산 기반 구축과는 거꾸로 가는 방향으로,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면서 “더욱이 한미 식물검역 회의가 열리는 시점과 맞물려 사과 수입 제한을 풀어달라는 주장은 불순한 의도가 있어 보여 더욱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영농 현장 변동성 커졌는데특단 생산 지원책은 ‘오리무중’

올해 생산량 43만1000톤 예상
7월 관측보다 감소폭 7%p 늘어
현장선 “체감상 물량 30% 감소”

2020년과 물량 비슷한데 유독 논란
‘가격 급등’ 부각, 수급 측면만 다뤄
원인 파악은 아직…대책도 전무

이상기후와 농촌 고령화·인력 부족 문제 등으로 영농 현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 지는 꽤 됐지만, 특단의 생산 지원책은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반복되는 ‘금사과’(가격) 논란은 올해처럼 공급량이 급감할 때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되레 공급량이 많은 해에도, 출하 초반 등의 상황에 따라 가격 불안 우려가 언급되고는 한다.   

사과 생산량과 가격 등락 추이는 연간 생산량 50만톤 기준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50만톤 이상인 ‘풍년작’일 경우 생산 과잉으로 가격은 떨어지고, 50만톤에 못 미치면 물량이 적어 가격이 올라가는 경향을 띠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4~2023년) 사과 생산량이 가장 적었던 해는 2020년(42만2115톤)이다. 당시 봄철 저온피해 영향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2010년 이후 역대 최저치는 2011년 37만9541톤이다. 50만톤 밑으로 떨어진 해는 지난 10년간 올해를 포함해 네 번 정도(2014년, 2018년, 2020년, 2023년) 된다. 10년 사이 재배면적(2014년 3만702ha→2022년 3만4603ha)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여서 기상 여건이 받춰준다면, 기본적으로 공급(생산) 물량이 많은 구조다. 

2020년 생산량과 비슷한 올해 유독 가격 논란이 커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도 의문이 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생산량 감소 폭이 통계 예상치보다 더 크다는 점이 그 중 하나다. 농경연에 따르면 올해 사과 생산량은 43만1000톤 내외로 전년(2022년 56만6041톤) 대비 2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7월 생산량 관측 발표 당시 전년 대비 감소폭 17%에 비해 약 7% 차이가 난 상황으로, 저온 피해에 더해 수확기 탄저병이 크게 확산돼 이 피해 부분이 반영되면서 생산량 예상치가 조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역시도 현장 온도와는 차이가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과 주산지인 경북 지역의 대표적인 사과 집결지인 안동농협공판장의 관계자는 “11월까지 수확기라 물량을 계속 받는 중이어서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체감상 전년 대비 30% 이상 물량이 감소한 것 같다”고 전했다.

사과 생산자단체 관계자도 “올해는 2020년도와 생산 물량이 비슷한 정도다. 이렇게 가격이 급등한 부분을 보면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들에 대한 원인 파악이 나오지 않고 가격 급등이 워낙 부각되다보니 수급 측면만 다뤄지고 있다. 생산량 예상 통계치도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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