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새해 소망 ‖ 농부시장 마르쉐 상임이사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과연 지속가능할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수고롭지만 ‘돈’이 안되는 일, 누군가의 헌신에 기대지 않고서는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익명성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시대 아닌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대화하는 농부시장’이라는 콘셉트가 얼마나 먹힐까. 호기심에 한 번은 올 수 있어도, 두 번 세 번 다시 찾아올까. 의심도 들었을 터이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2012년 10월 서울 혜화동에서 시작한 농부시장 마르쉐@는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12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 마르쉐의 이보은 상임이사가 있다.

이보은 이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곳곳에서 소규모 농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다양한 형태의 농부시장이 주목받고 있고, 활발한 사회적 대화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올해는 우리 사회에서도 농부시장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져 묵은 숙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소규모 농가의 안정적 판매처로
자립 돕는 든든한 버팀목 자부
2세 농부들과 새로운 기획 도전

전국의 농부시장 기획자 연대
‘공간’ 확보 문제 등 해결하고
다양한 성공사례 만들어 갈 것

올해로 12년째 농부시장 마르쉐를 이끌고 있는 이보은 상임이사.
올해로 12년째 농부시장 마르쉐를 이끌고 있는 이보은 상임이사.

마르쉐(marche)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뜻이다. 장소를 의미하는 기호 앳(@)에 동네 이름을 붙여 시장이 어디서 열리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동네마다 작은 시장들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지난해 마르쉐는 시장을 46회나 열었다. 한 달에 네 번 꼴이다. 2013년 13회와 비교하면 개최 횟수만 해도 3배 이상 늘었다. 매달 혜화에서 열리는 농부시장을 기본으로 성수와 서교, 국립극장에서 채소시장을 열었고, 1월에는 바다장, 2월에는 발효장, 3월에는 씨앗장, 4월에는 풀장, 5월에는 지구장, 7월에는 햇밀장, 11월에는 토종장 등 달마다 테마를 달리해 주목도를 높였다. 다양한 주제의 워크숍이나 토론, 강연, 캠페인 등이 함께 진행되기도 한다. 지난해 방문객 수는 총 12만5000여명. 정규 출점팀도 150팀 정도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마르쉐를 찾는 농부들은 대부분 기존 유통망에 들어가기 힘든 다품종 소량생산 농부들이에요. 도시 근교나 텃밭에서 작은 농사를 짓고 있는 도시 농부들, 갓 귀농해 아직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귀농·귀촌인들, 부모님의 농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획을 모색하는 2세 농부들이 많죠. 그런 소규모 농부들의 자립을 돕는 안정적인 판매처로서 마르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실제 7년 이상 고정적으로 출점하고 있는 한 농가의 경우 지난해 마르쉐에서 올린 연 매출이 5000만원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보은 이사는 “닭 400마리를 키우는 가족농인데, 좋은 퇴비가 있으니까 각종 채소와 허브도 같이 길러요. 구운 계란이나 바질페스토, 레몬커드 같은 가공품도 만들고요. 1차, 2차, 3차를 다 하는거죠. 물론 쉽지 않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소농들도 안정적인 판로만 있다면 충분히 자립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죠. 세상이 주목하지 않을 뿐 저마다의 생존방식을 터득한 새로운 농부들은 이미 있고, 더 많이 나타날 거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풀어야 할 묵은 숙제가 산적하다. 가장 어려운 건 역시 ‘공간’의 문제. 출점자들의 자립과 성장을 위해서는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시장 운영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행정적 제약으로 인해 공간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이보은 이사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농부시장이 왜 열리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다양한 관계 맺기를 통해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게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보은 이사가 지난해 5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농부시장연합(WFMC)’ 창립총회를 다녀와서, 11월 WFMC의 전략책임자인 로빈 문(J. Robin Moon) 박사를 초청, 서울에서 제3회 농부시장포럼을 연 이유다.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따로 비슷한 고민을 해 오던 전국의 농부시장 기획자들과 생산자, 연구자들이 모였고, 제도 개선을 위한 공동의 대응을 해보자는 데 동의를 얻었다. 올해는 좀 더 그 보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우선 공부모임을 만들어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가 볼 참이다.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힘을 모아야하고, 그러려면 좀 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장을 운영하면서 쌓아온 성과와 노하우, 소비자 설문조사 등을 데이터화해 농부시장의 영향력을 수치로 증명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이보은 이사는 “올해는 더 많은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을 만나 농부시장이 창출해 내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증명하고 설득해 나가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라면서 “이를 통해 농부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제도적 개선이 진전을 이루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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