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송품장 시범사업 추진

[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고성진 기자] 

“출하물량 조절을 통한 농산물 가격안정, 물류 효율화를 바탕으로 한 비용 절감, 효율적인 인력 활용, 환경 개선 등 전자송품장 정착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무궁무진합니다.”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이하 가락시장)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이하 서울시공사) 관계자의 목소리다. 정부가 농산물 도매거래 과정에서 사용하는 종이송품장을 ‘전자송품장’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본보 11월 3일자 6면 참조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하지만, 서울시공사 관계자 얘기처럼 농산물 출하자부터 운송기사, 하역노조, 도매시장법인, 시장개설자까지 종이송품장을 전자송품장으로 전환하는 형태 변화 하나만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서울시공사는 올해 초 농협경제지주·도매시장법인협회·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이 참여하는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전자송품장 도입 준비를 해왔고, 지난 11월 23일부터 전자송품장 시스템을 가락시장에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전자송품장 사용이 농산물 유통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가락시장 관계자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자송품장이 가져올 변화는=국내에서는 농산물 도매거래 시 종이송품장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산물 산지에서 출하자가 종이로 된 송품장에 수기로 출하내역을 작성해 상품과 함께 도매시장으로 발송하면 도매시장 도착 후 도매시장법인이 송품장 내용을 전산에 입력한 뒤 경매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전자송품장은 이렇게 수기로 작성해 오던 출하처와 품목, 매매방법, 운송수단 등 농산물의 도매시장 출하정보를 디지털화한 것을 말한다. 산지에서 농산물 출하자가 PC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출하정보를 입력하면 농산물이 도매시장에 도착하기 전 전자송품장 시스템을 통해 그 내용이 실시간 공유된다.

서울시공사, 도매시장법인 등 가락시장 관계자들은 전자송품장 도입으로 생산자들의 출하 선택권 확대와 수취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자송품장 사용이 정착되면 종합상황판을 통해 사전에 품목별 도매시장 예상 반입량, 시장 혼잡도, 실시간 경매현황을 확인할 수 있어 분산 출하가 가능해지고, 이는 물량 쏠림 현상을 방지해 적정 수취가격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성재 서울시공사 현대화사업단 P/L은 “전자송품장 시스템을 통해 출하 사전정보뿐만 아니라 수요·공급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 앞으로는 출하자 별로 자신의 물건을 어떤 중도매인이 낙찰 받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라며 “내년에는 과거 내역을 포함해 출하자 거래정보를 전자송품장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마이데이터 서비스’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락시장 개설자인 서울시공사 입장에선 전자송품장이 가락시장 물류 효율화에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자송품장과 연계한 ‘입차 스케줄링 시스템’을 활용하면 가락시장 하역 상황을 사전에 파악해 산지 출발 전 하차 가능 시점을 판단할 수 있어서다. 아직은 농산물 운송 차량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서울시공사는 입차 스케줄링 시스템을 내년 설 명절 시즌에 시범 운영한 후 점차 보완해 나갈 방침이다.

최덕훈 서울시공사 유통혁신팀 차장은 “입차 스케줄링 시스템을 활용하면 복잡하고 불편하게 가락시장과 시장 주변에서 하차 가능시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산지에서부터 대략적인 하차시간에 맞춰 출발한 후 대기가 필요하면 가까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기다리다 시장으로 들어오면 된다”라며 “하역노조에서도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하차작업을 위해 미리 대기할 필요가 없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가락시장 내 혼잡도 또한 개선되고, 운송 차량이 오랜 시간 대기하면서 불필요한 연료를 사용하는 것을 줄일 수 있어 탄소저감 등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성재 P/L은 “농산물 운송 차량이 하차작업 시간까지 대기하면서 사용하는 유류비와 운송기사 인건비 등을 계산하면 연간 350억원의 사회적 비용 손실이 발생한다”라며 “전자송품장 사용으로 이러한 비용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공사는 앞으로 3단계에 걸쳐 전자송품장과 연계한 가락시장 고도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1단계에선 현장에 대한 인적·전자송품장 시스템을 활용한 통제를 병행하고, 2단계에서는 컴퓨터 비전을 사용해 현장 판단을 컴퓨터가 내린 후 입차를 지시하는 등 AI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는 현장에 대한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구현하게 된다. 최덕훈 차장은 “단계별로 1~2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라며 “다만, 빠르게 첨단 기술 수준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기간은 단축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도매시장법인에서는 전자송품장 사용이 정착되면 인력 활용 측면에서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5~6명의 인력이 판매원표 입력 작업을 하는데도 품목당 짧게는 30분에서 6시간이 소요되는데, 전자송품장 사용으로 이 시간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희선 동화청과 영업관리팀 차장은 “판매원표 입력 업무 시간을 단축하면 산지관리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효율적인 인력 활용이 가능해진다”고 전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송품장 시범사업이 가락시장에서 11월 23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전자송품장 전환에 따른 변화, 향후 계획과 과제 등을 가락시장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왼쪽부터 윤희선 동화청과 차장, 최덕훈 서울시공사 차장, 이성재 서울시공사 PL.
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송품장 시범사업이 가락시장에서 11월 23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전자송품장 전환에 따른 변화, 향후 계획과 과제 등을 가락시장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왼쪽부터 윤희선 동화청과 차장, 최덕훈 서울시공사 차장, 이성재 서울시공사 PL.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과제는
새로운 시스템 적응 부담고령 출하자엔 ‘높은 벽’

현장서도 쉽게 작성하도록
설계과정부터 세심하게 검토

사용해 본 출하자들은
‘생각보다 간편’ 반응이지만
사용자 확보 여전한 과제  

서울시공사는 지난 2017년, 자체적으로 ‘송품장 전자신고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자송품장에는 입력해야 하는 품목을 코드화 해놓고 있는데, 도매시장법인 별로 농산물 품목코드가 다른 상황인 데다, 출하자들의 전자송품장 이용률이 저조했던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서울시공사와 도매시장법인 관계자 모두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라며 긍정적인 시선으로 전자송품장 도입을 바라보고 있다. 과거에는 서울시공사 단독으로 추진했던 사업이었던 반면 지금은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고, 그 사이 IT 기술 수준이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성재 P/L은 “과거 큰 걸림돌이었던 품목코드 문제는 공통모듈 시스템 방식으로 해결했다”면서 “각 도매시장법인의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서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법인 고유의 특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전자송품장 사용자 확대다. 현재 무, 배추, 양파, 깐마늘, 팽이버섯, 배 등 6개 품목에 대해 전자송품장을 시범운영 중인데, 아직은 시행 초기라 20여개 출하단체에서 하루 60건 정도 전자송품장을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에 서울시공사는 최근 가락시장에서 거래한 출하자 목록을 뽑아 규모가 큰 출하자를 중심으로 전자송품장 사용을 홍보하고 있다.

도매시장법인도 마찬가지다. 법인 별로 출하자를 대상으로 전자송품장 사용을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은 반응이 냉랭하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이 전자송품장 사용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동화청과의 윤희선 차장은 “사용자 확보가 여전한 과제로, 그동안 종이송품장으로 거래해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출하자들은 현 상태에서 변화를 주는 것을 번거로워 한다”라며 “특히 PC나 스마트폰 활용 등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출하자들이 체감하는 불편함은 더 클 것”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다행스러운 부분은 직접 전자송품장을 사용해 본 출하자들은 ‘생각보다는 간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게 윤희선 차장의 이야기다. 실제로 전자송품장 시스템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회원가입 없이 로그인 절차를 간편하게 만들었고, 입력 항목도 최소화 했다. 본인인증 후 출하하는 도매법인을 선택하고, 출하자 정보와 출하내역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반복 입력 항목은 큐알(QR) 코드를 활용할 수 있어 현장에서도 쉽게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윤희선 차장은 “전자송품장 사용자 확대를 위해서는 일단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보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라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전자송품장 사용자를 대상으로 정책적 지원을 해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또 다른 방법은 산지 지원 정책과 연계해 농협 단위에서라도 전자송품장을 사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윤희선 차장은 “농협의 경우 전자송품장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라며 “최소한 농협 단위라도 전자송품장을 활용하도록 해 사용자를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이성재 P/L은 “정부, 도매시장, 도매시장법인이 함께 전자송품장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라며 “2024년 말까지 이어지는 시범사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제 사용 경험을 토대로 전자송품장 기능도 보완·발전시켜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우정수·고성진 기자 woojs@agrinet.co.kr

<공동기획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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