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관엽식물인 ‘녹보수’(품종명 보배)를 재배하는 몇 농가가 11월 어느 날, 경북 김천 소재 국립종자원을 방문했다. 이들이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행정위원회인 품종보호심판위원회에 품종보호권 무효심판 청구를 제기했다는 소식을 보도<본보 2023년 10월 31일자 6면>했던 터라 혹시 종자원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후배 기자와 함께 동행했다. 하지만 농가들이 요청한 이날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품종보호심판위에 회부된 사안인 만큼 취재 응대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종자원 측의 이유였다. 

이번 무효심판 청구에서 농가들이 제기하는 쟁점은 ‘신규성’과 ‘구별성’ 충족 여부다. 품종 출원일(2018년 10월 10일)보다 8년이나 앞선 2010년부터 중국과 대한민국에서 유통·판매돼 왔기 때문에 해당 품종이 식물신품종보호법상 품종보호 요건인 신규성과 구별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게 농가의 주장이다.

쉽게 말해 출원인이 새롭게 육종·개발한 것이 아니라 기존 유통 중이던 품종을 ‘신품종’인 것처럼 출원 신청을 했다는 것인데, 종자원이 이런 정황을 제대로 인지한 상태에서 품종보호 결정 처분을 내렸는지가 중요 부분 중 하나다.

종자원의 품종등록 심사는 서류검토와 재배심사 과정을 거치는데, 종자원은 당시 출원인이 서류로 제출한 대조군과 동일하게 해당 품종의 재래종을 대조군으로 비교한 것으로 파악된다. 심사 당시 기존 유통 품종을 대조군으로 삼지 않은 이유가 궁금한 대목이다. 이번 면담에 참석한 한 농가도 이 부분을 기자에게 언급했다.

“종자원이 신청서류를 검토할 때 서류에서 밝힌, 국내에 있다는 시험재배 장소를 찾아 현장 실사를 했더라면 기존에 유통 중인 품종인지, 신품종인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네요. 화훼 농가나 공판장 경매사 얘기라도 들었으면 어땠을까요.”

다른 농가의 얘기다. “출원인이 녹보수가 아니라 자신이 명명한 ‘보배수’라는 이름으로 국내의 한 화훼공판장에 처음 유통한 시기가 2019년 상반기 쯤이에요. 출원인이 출원 신청을 2018년 10월에 했으니 출원일로부터 6~7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죠. 당시 3만개가 들어왔는데, ‘삽목 번식’으로 가능한 물량이 아니에요. ‘삽목 번식’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거든요.” 당시 유통 중인 품종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출원인이 육종·개발한 신품종이라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문이다. 

이를 듣던 또 다른 농가도 거들었다. “대개 중국에서 녹보수 묘목을 수입해오면 농장에서 최소 2~3년 이상은 키워야 해요. 2019년 봄에 적어도 그 정도 굵기의 녹보수가 들어왔다면, 이미 2~3년 전부터 키웠던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고 3만개라면 얘기가 또 달라지죠. 2010년대 후반 무렵 중국에서 구형 녹보수가 쇠퇴하고 신종 녹보수가 유행했는데, 당시 중국 현지에서 유전자원 개량을 통해 종자 보급이 되기 시작했어요.”

농가들은 앞으로 열릴 예정인 농식품부 품종보호심판위원회(1심) 결과에 이어 2심 특허법원, 3심 대법원까지 수년이 걸리더라도 이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중에 유통되던 품종들이 출원 신청 여부에 따라 신품종으로 인정될 경우 빚어지게 될 악용 사례들이 많고, 해당 결정 처분이 업계에 미칠 파장이 결코 작지 않다는 문제 인식과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농가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평생 농사를 짓는 것보다 오히려 출원 신청이 안 된 품종을 찾아 품종 출원 신청을 노리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한 농가의 ‘농담’이 여의치 않은 농업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고성진 유통식품부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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