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장 뺏길 위기에 놓인 증평 김기중 씨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아들·딸들과 양돈업을 함께 해오며 돼지 키우는 걸 천직으로 여겼던 양돈 농가들이 농촌공간정비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양돈 농가 김기중·이상호·박창규 씨(사진 오른쪽부터)가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아들·딸들과 양돈업을 함께 해오며 돼지 키우는 걸 천직으로 여겼던 양돈 농가들이 농촌공간정비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양돈 농가 김기중·이상호·박창규 씨(사진 오른쪽부터)가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청년농 육성은 농림축산식품부 핵심 정책이지 않나요. 그런데 농식품부의 농촌공간정비사업으로 양돈 농가이자 이제 서른이 된 우리 아들·딸들은 농촌을 떠날 지경에 놓였습니다.”

충북 괴산군 사리면과 증평군 증평읍에서 2400두 규모의 양돈장을 운영하는 김기중 씨(56)는 지난 19일 현장에서 만나자마자 “요즘 자식들만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답답함부터 토로했다. 

사연인즉 김 씨의 딸과 아들은 대학을 마친 뒤 각각 6년 전과 4년 전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 일을 도왔고, 이젠 직접 각자의 농장을 맡으며 어엿한 한돈인이 됐다. 하지만 양돈업을 본격적으로 알아가며 돼지 키우는 재미를 붙이던 이들에게 최근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농식품부가 진행하는 ‘농촌공간정비사업’으로 인해 양돈장을 하지 못할 지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농식품부 ‘농촌공간정비 지침’에
축사를 유해시설로 규정 ‘낙인’

딸·아들 운영하는 양돈장 주변
최근 ‘정비사업’ 대상지 선정
투자비도 못 건지고 빚만 남아

2023년 농촌공간정비사업 시행지침을 보면 공장, 재생에너지시설(태양광 등), 빈집, 장기방치건물과 함께 ‘축사’가 유해시설 범위로 규정됐고, 최근 괴산군 사리지구와 증평군 남차1지구가 이 사업에 선정됐다. 

김 씨는 “축산업을 진흥하고 축산농가를 보호하는 책무가 있는 농식품부가 사업 지침에 축사를 유해시설로 분류한 게 말이 되느냐”며 “딸은 1993년생, 아들은 1995년생으로 이제 서른 남짓 됐다. 나는 그렇다 쳐도 열심히 돼지 키우겠다고 농촌행을 택한 우리 딸·아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더욱이 괴산에 앞서 이미 감정평가를 받은 증평 양돈장의 경우 투자 비용도 못 건지는 감정평가 가격이 책정됐다. 4년 전 12억원에 증평 양돈장을 구매한 뒤 3억 2000만원의 자부담을 들여 악취저감시설까지 설치했고 8대 방역시설 등 여러 시설도 갖추며 본격적으로 양돈장 운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감정평가액은 12억 7000만원에 불과했다. 

김기중 씨는 “적어도 내가 투자한 비용은 감정평가액으로 나와야 했는데 빚만 지고 농장을 그만두게 됐다. 요즘 워낙 제약이 많아 양돈장을 새로이 만들기 힘들고 이전할 만한 양돈장도 마땅치 않아 돼지를 계속 기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30년간 양돈업을 한 우리 부부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 자식 등 우리 가족 모두 망연자실해 있다”고 전했다. 

박창규·이상호 씨도 상황 비슷
“30대 초 청년농 귀한 존재인데
이전 등 대책 없이 사지로 몰아” 

김기중 씨와 함께 지난달 농촌공간정비사업 신규 지구로 선정돼 폐업 지경에 몰린 괴산 사리지구 내 또 다른 2명의 양돈 농가도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20여년 양돈 경력에 12년 전 괴산군 사리면으로 와 2000두 규모의 양돈장을 운영하는 박창규 씨(61)는 “1990년과 1994년생 아들 둘과 함께 양돈장을 하고 있는데, 아들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농촌에 30대 초반의 청년들은 정말 귀한 존재일진대 농식품부가 이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우리가 일하는 축사가 어떻게 유해시설로 분류되는지 이해되지 않고 자존심도 너무 상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수의사로 활동하며 양돈장 컨설팅도 해오다 5년 전 본격적으로 돼지를 기르게 된 이상호 씨(52)도 “우리는 악취가 기준치를 넘거나 분뇨를 배출하면 과태료나 범칙금도 받고 더 나아가 농장 폐쇄까지 해야 한다. 분명 관련 기준이 있고 이에 맞춰 사육을 해오고 있는데, 농식품부가 한순간 축산농가들을 유해시설에서 일하는 자들로 낙인찍었다”며 “나야 수의사나 컨설팅 일을 계속하면 되지만 가축만 키워온 농가들은 어찌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축산업 붕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돈사를 환경유해시설로 규정해 놓은 '농촌공간정비사업 선정' 플래카드가 현장 곳곳에 걸려 있었다.
돈사를 환경유해시설로 규정해 놓은 '농촌공간정비사업 선정' 플래카드가 현장 곳곳에 걸려 있었다.

양돈업계에선 최소한 농식품부가 이 사업을 신청하는 전제조건으로 이전 부지 마련 등을 넣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홍용표 대한한돈협회 괴산지부장은 “환경 부처도 아니고 축산 진흥 정책을 펴며 식량안보도 사수해야 하는 농식품부에서 해선 안 될 일을 했다. 적어도 이전 부지는 들어간 신청서를 지자체로부터 받아야 했다”며 “더욱이 이 사업 관련법인 농촌공간계획법 제정 목적은 농촌 난개발과 농촌 소멸 위기 대응에 있기에 이런 것들을 무시한 농촌공간정비사업은 이제라도 전면 재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 농촌계획과 관계자는 “최근 축사를 유해시설로 분류한 것에 대한 축산업계 비판 목소리를 듣고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시행지침 문구 변경(유해시설 축산 제외)에 대해 내부 검토에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변경되면 현재 선정된 곳을 소급해서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즉답을 피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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