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영민 기자] 

 

1970년대에 지어진 고삼농협의 양곡창고. 천장이 목재로 돼 있다.
1970년대에 지어진 고삼농협의 양곡창고. 천장이 목재로 돼 있다.

우리 국민들의 주식을 보관하는 양곡창고가 낙후돼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위원장 소병훈, 이하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도 농협의 양곡창고 노후화가 문제로 지적됐다. 이는 양곡창고의 노후화로 저장기능이 떨어져 고품질 쌀 생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대부분의 농산물이 저장부터 유통까지의 과정이 콜드체인시스템을 적용해 신선도를 유지하는 반면 쌀은 이 같은 저장·유통시설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한 밑바탕이 되는 양곡창고 현대화사업의 사례와 농협의 양곡창고 경쟁력 방안에 대해 연재한다.

#양곡창고 노후화 수준 심각
농협 양곡창고 6%만 저온저장시설 갖춰

양곡창고 현대화사업에 
농협경제 올해 250억 투입
신축·전환, 개보수 지원

국회는 물론 지역농협에서도 양곡창고 현대화 필요성은 지속 제기돼 왔다. 실제로 지난해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소병훈 위원장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전북 정읍·고창) 의원은 농협의 양곡창고 노후화 문제를 지적하며, 농협과 정부의 양곡창고 현대화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을 촉구했다. 또한 지난 5월 열린 농협 벼 전국협의회 총회에서도 양곡창고 현대화에 대한 정부 지원이 건의되기도 했다.

농협경제지주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농협의 양곡창고 현황 및 실태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농협 526개소에서 양곡창고 2425동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정부 양곡창고는 1636동(67.5%), 자체 양곡창고는 789동(32.5%)이다.

문제는 이들 양곡창고 중에 30년 이상 된 노후창고가 무려 1876동으로 전체의 77.4%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농협의 양곡창고 중에 저온저장시설을 갖춘 양곡창고의 비율은 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민간에서 보유하고 있는 양곡창고의 저온저장시설이 26% 정도로 알려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농협의 양곡창고 시설이 더 낙후돼 있는 실정이다.

이에 농협경제지주는 올해 250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노후화된 농협 양곡창고의 현대화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대상은 양곡창고를 저온저장창고 형태로 신축·전환하는 것은 물론 노후창고를 개보수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아울러 사용이 어려운 양곡창고를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경우도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양곡창고 현대화로 학교급식 선도하는 안성 ‘고삼농협’

백대연(사진 왼쪽 두 번째) 농협경제지주 양곡사업부 국장이 현대화된 양곡창고에서 고삼농협의 박찬경(오른쪽 두 번째) 상임이사, 한진구 상무(오른쪽 첫 번째), 장동은 양곡유통센터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백대연(사진 왼쪽 두 번째) 농협경제지주 양곡사업부 국장이 현대화된 양곡창고에서 고삼농협의 박찬경(오른쪽 두 번째) 상임이사, 한진구 상무(오른쪽 첫 번째), 장동은 양곡유통센터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저온저장시설 갖추고
친환경쌀 학교급식 납품
조합원도 자부심 느껴 

경기 안성 고삼농협은 1976년에 세워져 50년 가까이 된 양곡창고부터 지난해 지은 저온저장시설을 갖춘 양곡창고까지 양곡창고의 과거와 현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고삼농협은 총 8동의 자체 양곡창고를 보유하고 있는데, 저온저장시설을 갖춘 양곡창고는 4동이다. 농협경제지주가 조사한 저온저장시설 양곡창고 6%에 해당하는 4동이 고삼농협에 있는 셈이다.

고삼농협이 저온저장시설을 갖춘 양곡창고를 보유하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삼농협은 일반 벼는 안성마춤농협조공법인을 통해 수매를 하고, 친환경 쌀만을 수매해 보관·가공하면서 학교급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양곡창고를 저온저장시설로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급식으로 친환경 쌀을 납품하려면 전처리시설을 갖춘 업체로 지정이 돼야 합니다. 일반 양곡창고는 학교급식 납품의 기준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저온저장시설을 갖춘 양곡창고 운영은 필수입니다.” 박찬경 고삼농협 상임이사의 말이다. 그래서 고삼농협은 저온저장시설이 갖춰진 양곡창고 4동은 친환경 찹쌀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4동의 양곡창고도 모자라 현재 약 48.5㎡(160평) 규모의 양곡창고를 신축하고 있고, 내년엔 30.3㎡(100평) 규모의 양곡창고를 추가로 신축할 계획이다. 지역농협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안으면서 양곡창고 신축이라는 고정투자를 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한진구 고삼농협 기획상무는 “잡곡은 일반 창고에 보관하면 쌀벌레(바구미)가 생긴다. 여기에 여름철에 학교급식으로 쌀을 공급하면 밥 맛이 없다는 얘기도 종종 들렸다”며 “학교급식을 위한 전처리업체 기준을 맞추는 것도 있었지만, 저온저장시설을 갖춘 곳에서 보관하면 이듬해 가을까지 출하하는 데에 문제도 없고 밥맛이 좋다는 평가도 있다. 쌀은 수확 후 건조나 보관이 중요해서 저온시설이 갖춰진 창고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판단해 (저온저장시설 양곡창고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찬경 상임이사는 “사실 저온저장시설이 있는 양곡창고를 운영한다고 해서 조합 경영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16년부터 학교급식 전처리시설 업체로 선정되면서 조합원들의 자부심이 크다. 만약 학교급식 납품업체에서 탈락되면 조합원들의 자존심에도 상처가 생길 것”이라며 “이러한 자부심을 지키는 것도 농협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고삼농협이 양곡창고를 신축하거나 개·보수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60평의 신축 양곡창고 사업비만 16억원인데 코로나19로 지자체 예산이 줄면서 2억5000만원만을 보조 받았다.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100평 규모의 양곡창고 신축 사업비도 6억원 가량이 들 전망이다.

한진구 상무는 “농식품부에서 고품질쌀 유통활성화를 위해 벼 건조·저장시설 지원사업이 있는데 대상이 벼 수매량 3000톤 이상이다. 우리처럼 잡곡을 주로 하는 지역농협이나 벼 수매량이 적은 지역농협은 정부 사업을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찬경 이사는 “저온저장 양곡창고는 시대가 요구하는 시설이다. 학교급식은 물론 고품질 쌀 생산과 유통을 위해 양곡창고는 저온저장시설로 갈 수밖에 없다”며 “더욱이 노후화로 오래된 양곡창고는 지역 경관을 해치고 먼지 발생으로 단골 민원이 되곤 한다. 다만 양곡창고를 현대화하는 사업이 정말로 꼭 필요한 곳에 지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영민 기자 kimym@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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