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ㅣ12명의 청년들이 모여 술 빚는 라이스그루브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전통주가 젊은층의 인기를 등에 업고 순항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막걸리 수출 열기가 반짝 일고난 뒤 내리막길을 걷던 전통주 시장의 종사자들은 재도약 기회를 잘 이용하고 있다. 이 중 한 가지 사례가 도심 속 양조장이다. 과거에는 양조장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양조장이 도심 속으로 들어와 술을 빚고 있다. 소비기한이 다른 술에 비해 짧다는 유통 부분의 애로사항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고, 소비자와 소통하며 제품의 평가를 직접 듣고 수정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도심 속 양조장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전통주의 경쟁력 제고와 국산 쌀 소비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는 도심 속 양조장을 찾아 술을 빚는 철학과 계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은평 한잔 빚음 사업’이 인연공동 창업으로 시장 진입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라이스그루브를 찾았을 땐 숙성을 마친 탁주를 병에 담는 병입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날 모인 청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반복하고 있었다. 

라이스그루브는 ‘민들레 꽃씨’와 많이 닮았다. 전통주 창업에 관심이 많은 청년 12명이 민들레 꽃씨처럼 다닥다닥 붙어 서로에게 의지하며 공동으로 술을 빚고, 유통하는 등 전통주 시장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또 적절할 시기에 바람이 불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 라이스그루브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뿌리를 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에 설립된 라이스그루브는 문종희, 임재현 두 명의 각자 대표를 필두로 두 명의 이사, 여덟 명의 투자자 등 청년 12명이 공동으로 탁주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들이 서로를 처음 알게 된 건 2022년 4월이다. 은평구가 한국전통민속주협회 및 막걸리학교와  2022년 4월부터 7월까지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청년 20명을 대상으로 ‘은평 한잔 빚음 사업’을 펼쳤는데, 사업 종료 후 12명이 공동창업을 결심했고 라이스그루브 설립으로 이어졌다. 라이스그루브의 뜻은 쌀(Rice)과 리듬(Groove)의 합성어로 술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포와 소리에서 착안했다는 게 문종희 대표의 설명이다. 

양조장을 설립했지만 경험과 자금이 부족했고, 각자 본업이 있기 때문에 사업 초반부터 기존의 양조장들처럼 과감한 투자는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지역특산주가 아닌 소규모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해 조금씩 시장을 넓혀나가는 전략을 세웠다. 양조장을 세우고 첫 제품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코로나 기간 중 부쩍 성장한 국내 전통주 시장이 기회의 장에서 경쟁의 장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신생 양조장의 제품이 처음부터 경쟁력을 갖추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종희 대표는 “전통주 양조장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다양한 전통주가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경험과 자본이 부족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며 “12명이 매주 모여 머리를 맞댄 결과 부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고, 본격적인 시제품 생산에 나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시행착오 끝 ‘반딧불’ 선보여맛·향 색다른 농산물 사용 계획 

4개월 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2023년 2월, 라이스그루브의 첫 제품 ‘반딧불’이 세상에 나왔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20~30대 여성을 주 고객층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맛과 향, 그리고 제품 포장이나 홍보물까지 보다 더 세심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반딧불은 국내산 찹쌀과 누룩, 물을 기본으로 산뜻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라임과 레몬향이 나는 허브인 레몬밤을 부재료로 넣었다. 반딧불은 현재 전통주 전문 판매점에서 구매할 수 있고 가격은 1만6000원이다. 

반딧불이 시장에 첫 선을 보인 이후 지역특산주의 굴레에 묶여 부재료의 사용이 제한적인 국내 전통주 시장에서 특색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다음 제품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상황이다. 라이스그루브는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두 번째 제품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 특히 6월에 개최되는 주류 관련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이기 위해 생소한 부재료를 탁주와 합을 맞춰보고 있다. 

이들의 장기적인 계획은 지역특산주 지정을 통해 인터넷 판매를 하는 것이다. 특색 있는 부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탁주를 만드는 것이 라이스그부르의 운영 철학인 까닭에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인근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는 특색 있는 농산물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문종희 대표는 “더 많은 소비자가 라이스그루브의 제품을 손쉽게 접할 수 있으려면 지역특산주 지정을 통한 인터넷 판매로 이뤄져야 한다”며 “국내 농산물 중에 소비자들이 접해보지 못한 맛과 향이 색다른 부재료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제품 생산에 활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문종희 대표가 설명하는 반딧불
기름진 회 곁들이면 맛과 향 풍부

"반딧불은 찹쌀의 은은한 단맛과 라임의 경쾌하고 산뜻한 산미, 레몬밤의 향긋한 허브향을 막걸리 한 병에 담아낸 제품입니다. 풍부한 향이 특색이기 때문에 와인잔이나 깊은 잔에 따라 향을 느끼며 마시면 더욱 좋습니다. 술이 약한 분들은 탄산수나 토닉워터를 타서 마시면 칵테일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또 반딧불은 산미가 있어 식욕을 돋게 하기 위해 식전주로 마시거나 기름진 회랑 마시면 균형 있는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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