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승인 종자 8년 동안 유통

[한국농어민신문 최영진‧고성진 기자] 

국내에서 승인받지 않은 유전자 변형(LMO) 주키니호박이 2015년부터 유통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가 해당 종자의 판매를 금지하고 전량 수거·폐기조치 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유통된 지 8년이 지난 시점이라서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키니호박을 재배한 농가들은 출하 일시 정지와 산지폐기 등 피해를 입어 이에 대한 대책도 요구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주키니호박 종자 일부가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로 판정돼 관계기관 합동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지난 26일부터 농가출하를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서 승인된 LMO는 사료용으로 콩, 옥수수 등 5개 품목과 식품가공용으로 콩, 옥수수, 유채 등 6개 품목뿐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선 LMO 주키니호박을 인체에 무해하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미승인된 품목이다. 

문제는 이번에 LMO로 드러난 주키니호박 종자가 검역에서 걸러지지 않고 국내로 유입, 육종돼 2015년부터 최근까지 판매됐다는 점이다. 국내로 들어온 경로에 대해 정부는 판매 업체가 미국에서 주키니호박 종자를 수입할 때 국내 검역 절차 등을 정상적으로 밟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종자를 수입할 때 LMO 농산물임을 신고해야 하는데, 이런 승인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제 특송으로 반입, 수입시 문제 없었다”검역‧관리 허점

문제의 주키니호박 종자를 육종‧판매한 홍익바이오는 “LMO 종자라는 것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홍익바이오는 2010~2011년 유전자원 확보 차원에서 해당 종자를 미국의 온라인몰에서 구매, 국제 특송으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홍익바이오 관계자는 “해당 종자는 조니스 셀렉티드 시드(Johnny’s Selected Seed)에서 50~100립을 구매한 것으로 누구나 살 수 있고,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 주키니호박을 판매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LMO 검사설비가 없어서 자체적으로 확인하진 못했고, 이 설비를 갖춘 국내 종자업체도 한두 군데 밖에 없을 정도로 다른 기업에서도 일어날 수 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국립종자원은 조사결과 홍익바이오가 들여온 주키니호박 종자에 대한 검역 기록이 없고, 종자 구입 입증도 못하고 있어 관련 법령 위반사항을 고발 조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사실여부를 떠나 수입업자가 무엇을 들여오는지 속였을 때 허점이 있었다는 점과 품종 관리가 미흡했다는 비판을 정부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검역당국은 LMO 종자가 우편·특송으로 들어올 때 사전신고 목록을 토대로 검사를 진행한다. LMO 국경 검사 대상품목은 32개로, 이번에 문제가 된 주키니호박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사전 통관 과정에서 육안으로 X-RAY 검사를 하는데, 소량의 작은 씨앗은 허위신고를 할 경우 현실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X-RAY 검사를 통과한 해당 종자는 국내에서 별도의 추가 검사 없이 육종, 계속해서 판매된 것으로 풀이된다. 
 

신품종 역추적으로 주키니호박 LMO 드러나

홍익바이오의 주키니호박이 LMO라는 것은 최근 다른 B종자업체가 신품종을 출원하면서 드러났다. 정부는 2018년부터 신품종으로 등록되는 종자를 유전자 변형 농산물인지 검사하고 있는데, 최근 출원된 B종자업체의 주키니호박 종자에서 LMO가 검출됨에 따라 역추적한 결과 홍익바이오의 주키니호박이 육종에 사용됐다는 것을 밝혔다. 다시 말해 B종자업체에서 이를 활용한 신품종을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LMO 주키니호박이 유통될 수도 있었던 셈이다. 

B종자업체는 출원한 주키니호박 종자에서 LMO가 검출됨에 따라 강원도에서 시범재배하고 상품화하려던 관련 종자를 모두 폐기처분했다고 밝혔다. 또 보유한 다른 품목에 대해서도 LMO 검출 여부를 전수조사하고 앞으로 유전자원 도입시 검사를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와 같이 국내로 다른 LMO 농산물 종자가 유입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외국에서 개발, 유통되고 있는 품목을 전수조사하고 있으며 검역도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애호박은 음성으로 확인됐으며 단호박 품목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정혜련 농식품부 국제협력관은 “문제가 된 주키니호박 품종 판매 업체가 종자를 등록한 2015년에는 LMO를 심사하는 제도가 미흡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해외 직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만큼 화물검사뿐만 아니라 우체국과 특송 검사를 강화하고 세관과 협조해서 AI 기술을 도입하는 등 빠르게 검역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고시개정을 통해 LMO 검사를 더 강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전수검사 후 출하 재개 방침유통‧농가 파장

국내산 주키니호박 일부 종자에서 미승인 LMO가 확인되자 유통 현장에 미치는 파장도 거셌다. 농식품부가 3월 26일(22시)부터 4월 2일(자정)까지 주키니호박 출하를 잠정 중단하면서 산지 출하가 ‘꽁꽁’ 묶였다. 농산물도매시장 반입이 금지된 28일 이후 2~3일 동안은 주키니호박 대신 애호박 시세가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등 여파가 계속됐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애호박 도매가격(20개·상품)은 27일 2만4255원에서 반입 금지 조치가 내려진 28일 3만2750원으로 크게 올랐고, 29일에는 3만6217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30일 2만8446원으로 떨어졌고, 31일이 돼서야 27일과 비슷한 수준인 2만4934원으로 가라앉았다. 농식품부는 생산 단계 주키니호박 전수 검사를 거쳐 LMO 음성 확인 시 4월 3일부터 산지 출하를 재개할 방침이다. 

가락시장에서 호박 경매를 하고 있는 김영진 동화청과 경매사는 “평년 기준으로 주키니호박 반입 물량이 많지 않은 시점이다. 가정용으로는 보통 애호박을 많이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애호박의 대체품으로 주키니호박이 식자재용으로 나가는 편”이라며 “시세 역시 떨어지는 시점인데, LMO 사태가 터지면서 애호박 시세가 일시적으로 급등하기도 했으나 안정되고 있으며, 출하 중단 조치가 끝나는 3일 이후 주키니호박이 도매시장에 반입될 수 있을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승 중앙청과 채소1팀 과장은 “경기도 여주에서 주키니호박을 심은 다음에 가지를 재배하는데, 이번 일로 재배 단계가 어그러진 농가들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농민 피해보상·소비 촉진 급선무“정보공개 및 책임자 문책해야”

소비자·환경·농민 단체들은 LMO 주키니호박이 국내 유통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에 정보 공개와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했다. GMO반대전국행동·환경농업단체연합회·전국먹거리연대 등은 31일 2차 입장문을 내고 “국민들은 정부가 먹거리 검역을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에 분통이 터진 상황이고 농민들은 고생해서 농사지은 호박이 하루아침에 유전자 변형 농산물로 판명나 망연자실하다”며 “농민 피해보상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이미 시중의 주키니호박 값은 폭락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한다는 농민도 있으며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주키니호박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농민들이 태반이다”고 비판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성명서를 통해 “출하 정지로 인한 농가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보상 대책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며 “동향 및 세부 내용을 실시간으로 농업인‧소비자 등에 공유하고 함께 대책을 강구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는 농가의 단위면적당 생산량과 생산비를 비롯한 소득자료를 파악하고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종구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재배 농가 보상과 관련 1차 회의를 했는데, 신뢰성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미흡한 상황”이라며 “지역농협과 농협중앙회로부터 주키니호박 생산량 등의 조사 결과를 받고 다음 주 중으로 일주일 간 출하를 정지한 농가와 산지 폐기한 농가 등에게 차등 보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영진‧고성진 기자 choiy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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