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공간계획법’ 제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
<하> 누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농촌정책 부문의 오랜 숙제였던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을 위한 법률안(이하 농촌공간계획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제정해야 하고, 시·군 농촌공간계획의 가이드라인이 될 국가 기본방침을 수립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토부나 환경부 등 관계부처와의 긴밀한 협의가 진행돼야 한다. 제도 시행의 주체인 지자체 공무원들의 역량을 제고하고, 지역 주민들의 공감과 참여를 끌어내는 것도 절실한 과제 중 하나다. 법안 통과 이후 시행령 준비 등으로 한층 더 바빠진 이상만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국장을 22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이상만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국장

농경연·농진청 등 참여 TF 운영
세부내용 하위법령에 담을 계획
국가 기본방침도 연말까지 수립 

시·군 지자체 주도 ‘상향식 계획’
공청회 등 주민 의견 충분히 청취
주민협의회·주민협정 적극 지원

-법안 추진의 배경과 의미에 대해 먼저 짚어주십시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 대도시·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발전으로 농촌소멸 우려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농촌은 활력이 떨어지고 병원·음식점 등 기본적인 생활서비스 기능마저 약화되는 악순환이 거듭됩니다. ‘농촌공간계획법’은 이러한 위기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제정된 법안입니다. 농촌공간에 대한 중장기 계획과 농촌특화지구 도입을 통해 체계적인 토지이용은 물론 쾌적하고 편리한 농촌공간을 조성, 국가균형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년 3월 법 시행 전까지 하위법령을 제정해야 할텐데,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올해 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건축공간연구원, 한국농어촌공사, 농진청 등과 함께 농촌공간계획 제도화 TF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법률의 효율적인 시행을 위해 농촌특화지구, 주민협정, 추진체계 등과 관련한 세부 내용을 하위법령에서 규정할 계획이고요. 국가 기본방침 수립 작업도 올 연말까지 추진할 예정입니다.”

-기본방침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요.

“기본방침은 시·군이 농촌공간계획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입니다. 10년 단위로 농촌공간의 재구조화와 재생에 대한 국가 목표가 설정될거고요, 세부적으로 농촌특화지구 등 공간의 체계적 관리, 위해시설 정비, 생활서비스시설 확충,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정주 및 주거 여건 개선, 생활서비스 공급에 대한 정책의 방향도 담게 됩니다. 현재 농촌공간의 미래상과 장기 전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안이 마련되면 의견 수렴과 심의 절차를 거쳐 최종 수립할 계획입니다.”

-지자체는 무엇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할까요.

“농촌공간계획은 시·군 지자체가 주도해 수립하는 ‘상향식’ 계획이기 때문에 지자체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역의 상황과 여건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해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민 참여를 보장하고 독려하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입니다. 이를 위해 주민협정 등 법령이 규정하고 있는 주민 참여 시스템을 원활하게 운영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행정적, 재정적 지원도 할 수 있습니다. 주민 스스로 농촌공간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과정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농식품부도 재정 지원, 사례 확산 등에 노력하겠습니다.”

-7개 농촌특화지구 지정과 관련해 기대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큰 게 사실입니다. 갈등 관리를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법안을 보시면 주민 제안을 통해 지역민 스스로 특화지구 지정을 요청할 수 있고, 시·군이 특화지구를 지정할 때는 공청회를 통해 지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도록 했습니다.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농촌특화지구가 설정된 이후에도 지역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농촌마을보호 등 목적 달성을 위해 주민협의회를 설립하고 주민협정을 체결,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농촌특화지구에 대한 계획을 어떻게 세우는지에 공간계획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봅니다. 7개 유형별로 지역에서 수행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시할 계획입니다. 어렵지만 가야할 길이고 10년, 20년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 기대했던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봅니다.”

-관계부처와의 협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국토계획법 상 용도지구나 환경영향평가, 각종 사회서비스 지원 등 관계부처와 협력이 필요한 사항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농촌에 대한 투자를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농촌공간계획에 따라 일관성 있게 각 부처 사업을 통합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앞으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등 다양한 협의채널을 활용해 국토부, 환경부, 기재부, 복지부 등과 긴밀히 논의해 나갈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농촌공간계획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선 국토계획법과의 연계가 필요하거든요. 국토계획법 상 도시·군 계획 수립 시 농촌공간계획이 반영되도록 법 개정 등을 국토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입니다.”

-농촌 주민들이나 농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농촌공간계획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농촌 주민들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주민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주민협의회 설립, 주민 협정 체결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만큼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공익을 우선하는 이해와 양보, 그리고 합리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주시길 기대합니다.”

 


전문가 제언
“면단위 주민자치회 중심, 민관협치형 정책 추진체계 만들어야”

‘농촌공간계획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도록 위해서는 누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소장과 서정민 지역순환경제센터 센터장을 만났다. 지난 13일 충남 홍성에 위치한 마을연구소 일소공도에서 만난 이들은 “면 단위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한 민관협치형 정책 추진체계”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소장
농촌 난개발 책임 행정에 있어
반성 없이 주민 탓하면 안돼
지자체 농촌정책전담부서 신설
공간계획 통합 관리해야 실효
"

구자인 소장은 먼저 “농촌 난개발의 가장 큰 책임은 국가정책과 지자체 행정에 있다”면서 “그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난개발이 왜 생겼는지, 원인은 짚지 않고 현상만 나열해선 안된다는 것.

그는 “도로나 댐, 간척 등 대규모 개발사업을 주도한 것도, 공장 부지 인허가 내주고 우량농지에 축사 신축을 허가한 것도 다 행정 아니냐”면서 “이에 대한 반성이 전제가 되어야지, 자꾸 현재 살고 있는 주민 탓을 하거나 특화지구 지정을 통해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규제하려고 들면 결과적으로 이 법의 실효성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정민 지역순환경제센터 센터장
타부처·지자체 협조 끌어내려면
농식품부 전향적 자세 필요
특화지구 지정 갈등 소지 많아
대표성 있는 주민조직 육성을

서정민 센터장은 이와 관련 “농촌공간 정책의 주무부처인 농식품부가 좀 더 전향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농식품부 스스로 농촌다움을 유지하겠다는 의지, 목표를 명확히 하고, 국토부 등 다른 부처나 지자체에 요구할 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자체가 농촌협약을 신청하려면 농촌정책 전담부서를 신설하도록 한다든가, 국토부 라인의 시·군종합계획과 농촌공간계획이 매칭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군 단위의 경우 농식품부 사업 예산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농식품부가 소신을 갖고 추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자인 소장은 “법률 명칭으로 보자면,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농촌재생에 대해서는 농식품부가 권한을 가지는 것 아닌가. 토지이용계획에 대한 법적 권한까지는 못 가져왔지만 공간계획 차원에서는 농식품부가 주도권을 갖고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면서 “공모사업을 지렛대로 지자체에 담당 과를 만들도록 유도하고, 농촌정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도록 해야 농촌공간계획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농촌특화지구 지정과 관련해선 ‘필요하다’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기 설치된 축사나 에너지시설 등을 한 곳에 몰게 될 경우 갈등 유발의 소지가 너무 많고 그에 따른 재정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정민 센터장은 “지자체 입장에서도 이미 있는 것을 옮기는 것에만 초점을 두다 보면 미래로 나갈 수가 없다. 오히려 앞으로 개발할 때 어떤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잡고, 점진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정비해나가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 협정’을 추진할 수 있는 주민 조직으로 면 단위 주민자치회를 주목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을 표했다. 구자인 소장은 “공간정책이 추진되려면 현장에 지속가능한 조직 체계가 있어야 한다. 면단위 주민자치회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처럼 사업별로 계속 별도 위원회를 자꾸 만들기만 하면 역량도 축적되지 않고, 관계성도 안 생기고, 사람도 없는데 자꾸 감투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다보면 결국 용역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정민 센터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유럽의 농촌정책 자료들을 보면 제일 공을 들여 강조하는 키워드가 거버넌스와 파트너십이다. 행정과 민간, 민간과 민간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이 없으면 아무리 예산을 투입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읍면의 주민자치회가 대표성과 공공성을 가지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농식품부가 지자체에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농림축산식품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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