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공간계획법’ 제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
<상>농촌공간계획법, 무엇이 담겼나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농촌지역 곳곳이 난개발과 저개발로 신음한 지 오래다. 한편에선 무분별하게 들어선 공장과 축사, 태양광시설 등으로 몸살을 앓고, 다른 한편에선 방치된 빈집과 노후 주택, 폐교 등으로 골치를 썩는다. 촘촘한 도시계획이 작동하는 도시와 달리 농촌은 공간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 수립이 부재했던 탓이다. 이로 인한 정주 여건의 악화와 농촌 경관의 훼손은 인구 유출과 지방 소멸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농촌공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지난 2월 27일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이하 농촌공간계획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그 결실을 맺었다. 2회에 걸쳐 법 제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법안 추진 배경은
무분별한 난개발 억제‘살기 좋은 농촌’으로 

수도권 집중현상에 출산율 바닥
지방소멸 넘어 국가소멸 ‘경고등’
농촌의 잠재력 주목 대안 모색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꼴찌다. OECD 평균 출산율 1.59명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이대로 가면 ‘지역 소멸’을 넘어 ‘국가 소멸’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요란하다.

이렇게 출산율이 낮아지는 근본적 이유로 많은 전문가들은 ‘수도권 집중현상’을 지목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인구(5164만명)의 50.4%(2602만명)가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 산다. 전체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절반이 넘는 인구가 몰려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선 ‘사회적 경쟁’의 심화로 출산율이 급락하고(서울지역 합계 출산율은 0.59명이다), 공동화가 진행되는 농촌에선 일자리 감소는 물론 의료, 교통, 보육 등 정주 여건이 악화돼 다시 인구가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실시한 ‘2020년 농업·농촌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촌생활이 불만족스러운 이유 1순위로 응답자의 38.7%가 ‘도시에 비해 열악한 주거 및 생활환경’을 꼽았다. 다음으로 ‘의료시설 등 의료환경 미흡’(20.2%), ‘문화 및 여가시설 미흡’(14.9%), ‘교육 여건 열악’(6.5%) 순으로 응답했다.

‘살기 좋은 곳’으로 인구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인구를 분산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선 수도권과 지역의 삶의 질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도시의 과밀화와 지방 소멸 등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잠재력을 가진 공간으로 농촌이 부상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체계적인 공간계획에 기반해 농촌다움을 저해하는 무분별한 난개발을 억제하고, 일터·삶터·쉼터로서 농촌공간을 재생하기 위한 법 제정에 나선 이유다.


#법안의 주요 내용과 특징은

1.  농촌특화지구 도입

농촌지역 용도에 따라 구획화
기능 유사한 시설끼리 배치해
주민 보호-산업 집적효과 제고

먼저, 농촌공간의 체계적·효율적 토지 이용이 가능하도록 농촌의 일정 지역을 용도에 따라 구획화(zoning)하는 ‘농촌특화지구’를 도입한다. 유해물질과 소음 등을 배출하는 공장이 농촌 마을 인근에 입지하면서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악취를 유발하는 축사와 난립한 태양광 시설 등이 주민 갈등을 초래, 정주 여건을 악화시키기고 있다는 문제 인식에 따른 것이다.

실제 전체 취락지구 2만486개 중 100m 범위 내 공장 용지가 있는 경우가 2815곳, 전국 축사 31만1000개소 중 주거지 내 또는 500m 이내에 위치한 축사가 25만3000개소(81%)에 달한다. 태양광 시설을 위해 농지가 전용된 규모도 2012년 180건(34ha)에서 2017년 6593건(1437ha), 2019년 1만1847건(2555ha)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기능이 유사한 시설끼리 배치해 주민 거주지역을 보호하고, 산업의 집적 효과를 높이겠다는 게 농식품부의 구상이다.

농촌특화지구 종류에는 7가지가 명시돼 있다. 유해시설로부터 주민의 거주환경을 보호하고 생활서비스 시설 등의 입지를 유도, 정주기능을 강화하는 ‘농촌마을보호지구’가 대표적이다. 주민이 모여 사는 일정구역을 지구로 지정, 유해시설을 정비하고 복지·문화·교육 등 각종 사회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면 농촌 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또 산업시설, 에너지시설 등을 집적화해 산업연계성을 높이고 농촌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농촌산업지구 △축산지구 △농촌융복합산업지구 △재생에너지지구를 도입한다. 그 밖에 농촌경관을 형성하고 농업 유산 등 농천 자원을 보전·관리하기 위한 △경관농업지구 △농업유산지구도 포함하고 있다.

시장·군수는 농촌특화지구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주민들은 주민협정, 주민협의회 등을 통해 지구의 지정과 운영에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2. 중장기 공간계획 ‘상향식’ 수립

10년마다 농촌공간계획 수립
5년마다 재검토해 정비토록
주민제안·주민협정제도 도입


앞으로 미래 농촌발전의 청사진을 담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농촌지역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에 농식품부 장관은 농촌공간의 미래상과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기본방침을 10년마다 수립하고 5년마다 재검토해 정비해야 한다. 기본방침은 시·군이 농촌공간계획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시·군은 관할 구역을 대상으로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에 대한 장기 전략을 설정하는 기본계획을 10년마다 수립하고, 기본계획에서 지정한 ‘농촌재생활성화지역’에 대한 종합적 사업 시행계획을 5년단위로 수립하도록 했다. 여기서 농촌재생활성화지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자원과 역량을 집중, 농촌재생 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대상지역을 말하는데, 시·군 기본계획을 통해 지정 및 해제할 수 있다.

농촌특화지구를 지정하고 농촌재생사업을 추진할 때는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주민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주민제안, 주민협정, 주민협의 제도를 도입하고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지원도 추진한다.


3. 농촌협약 도입과 재생프로젝트

‘농촌협약’ 법적근거 마련
농식품부-시군 거버넌스 구축
개소당 최대 300억+α 지원

농촌공간계획 제도를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인 ‘농촌협약’에 대한 법적 근거도 담겼다. 농식품부는 2020년부터 지방분권(지방이양) 대응을 위해 농식품부와 지자체가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농촌지역 생활권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통합 지원하는 ‘농촌협약 제도’를 도입·시행 중이다. 시·군이 농촌공간 전략계획과 농촌 생활권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계획을 수립하면, 해당계획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사업을 5년간 일괄(패키지)로 지원하는데, 개소당 투입되는 국비는 최대 300억+α 규모다.

농식품부는 2031년까지 400개 생활권역별로 △농촌공간정비, △주거·정주여건, △일자리·경제, △사회·생활서비스 등 핵심기능을 재생 지원하는 농촌재생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목표다.

이외에도, 농촌공간계획 제도의 추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농촌공간 정책을 심의하는 중앙·광역·기초정책심의회를 설치하고 정책을 지원하는 농촌공간 중앙·광역·기초지원기관의 지정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농촌공간계획 제도화의 첫걸음이 될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은 하위법령 제정을 거쳐 공포 1년 후인 2024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농식품부 이상만 농촌정책국장은 “농촌의 난개발, 지역소멸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농촌공간의 특성을 고려한 장기계획 수립을 바탕으로 농촌공간의 재생이 필요하다”며 “농촌이 부존자원을 최대한 활용,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농촌공간계획제도를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농림축산식품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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