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산비 시대, 생산성 높은 축산농가 ‘톺아보기’
① 유인호 분홍돼지 영농조합법인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유인호 분홍돼지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16년부터 홀로 양돈장을 경영하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유 대표는 이를 바탕으로 사육규모도 더 늘려나갈 계획이다.
유인호 분홍돼지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16년부터 홀로 양돈장을 경영하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유 대표는 이를 바탕으로 사육규모도 더 늘려나갈 계획이다.

전국 평균치 3배 가량 많은
돼지 6500두 순천에서 사육
“1만두까지 늘리는 게 목표”

올해 MSY 28두까지 높여
평균대비 10두, 55%나 많아


국제 곡물가와 환율 인상 등으로 사룟값과 유류비를 비롯해 각종 기자재값이 급등하면서 축산 농가 생산비가 치솟고 있다. 반면 정부의 할당관세(무관세) 조치로 늘어난 수입 물량과 사육마릿수 증가, 소비 침체 등이 맞물리며 한우 가격이 급락하고 있고 다른 축종 역시 평년 가격으론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든 지경이다. 검은 토끼해인 계묘년 새해 벽두부터 축산 농가에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 속에서도 높은 생산성을 토대로 소득을 높이고 장기적인 계획까지 구현해나가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축산 농가들이 있다. 한국농어민신문은 신년 기획으로 모범이 될 만한 축산 현장을 찾아 ‘고생산비 시대, 생산성 높은 축산 농가 톺아보기’를 연속 기획한다.
 

전국 평균 대비 MSY 10두 높은 분홍돼지

분홍돼지 MSY는 전국 평균치보다 10두가량 많은 28두를 보이며 높은 생산성을 과시하고 있다. 
분홍돼지 MSY는 전국 평균치보다 10두가량 많은 28두를 보이며 높은 생산성을 과시하고 있다. 

전국 평균치보다 3배가량 많은 6500두의 돼지가 사육되는 전남 순천의 분홍돼지 영농조합법인은 유인호 대표가 2016년 아버지로부터 홀로서기를 하며 지금까지 양돈장을 운영하고 있다. 분홍돼지란 농장 명은 새끼 돼지가 분홍색이라는 점과 분홍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에다 한글 이름 등을 고려해 유 대표가 직접 지었다.

1979년생인 유인호 대표는 20대에 두 곳의 대학을 나왔다. 명지대 전기제어계측과를 졸업한 뒤 양돈업에 뛰어들기 위해 축산 전문대인 천안연암대에 다시 들어가 축산업을 공부했다. 유인호 대표는 “구구단을 양돈장 분만실에서 외웠을 정도로 양돈장이 친숙했지만, 돼지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명지대를 졸업할 때쯤 생겼다. 원래 CEO가 꿈이었는데 어려서부터 봐왔던 돼지를 키우면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양돈장에서 CEO 꿈도 이룰 수 있겠다 싶었다”며 “그런 판단 하에 아버지께 양돈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니 축산을 공부하고 오라고 하셨고, 그래서 연암대에서 축산업을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0대 마지막 해였던 2007년부터 현장에서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 유인호 대표가 홀로 양돈장을 운영한 2016년 이후 분홍돼지 생산성이 본격적으로 향상됐다. 양돈 생산성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인 MSY(어미돼지 한 마리당 연간 출하마릿수)가 이를 말해준다. 현재 전국 양돈장 평균 MSY가 18두 내외인 가운데 유 대표가 농장에 처음 내려왔을 때 분홍돼지 양돈장도 MSY가 18두가량이었다. 그러다 2017년을 지나며 MSY가 22두까지 올라섰고, 올해엔 전국 평균보다 10두(55%)나 많은 28두의 MSY를 기록했다.
 

사진은 전남 순천 산중턱에 있는 분홍돼지 영농조합법인 전경.
사진은 전남 순천 산중턱에 있는 분홍돼지 영농조합법인 전경.

비결 하나. 전문성 있는 직원, 체계화된 조직
그렇다면 무엇이 분홍돼지 생산성을 꽃피우게 했을까. 유인호 대표는 무엇보다 ‘전문성 있는 직원, 체계화된 조직’에 답이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10명 정도 근무하는 분홍돼지 직원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다.

유인호 대표는 “분만사 2명, 임신사 2명, 자돈육성·비육사 3명, 액비팀 2명 등이 근무하고 있고 이들은 그곳에서만 계속 활동한다. 양돈장에서도 각 사육 기간별로 돼지 특성이 달라 전문화가 요구되기에 직원들을 한 곳에서 오래 근무토록 한다”고 설명했다.

분홍돼지 직원들은 다이어리도 직접 쓴다. 단순한 일정이 아닌 직원들이 쓰는 다이어리는 해당 양돈 분야의 전문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유 대표는 “다이어리를 통해 1년간 있었던 모든 일을 몇 십 초면 찾을 수 있다. 월 단위와 일 단위로 다이어리를 쓰는데 월 단위가 목차라면 일 단위는 그 목차의 자세한 설명서 같은 역할을 한다”며 “예를 들어 모돈이 수액을 맞으면 월 단위 목차에서 해당 일을 찾고 그 해당 일에 가면 어떤 방법으로 수액 했고, 어느 모돈(산차나 노산 등)에 효과가 좋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돼지 자체뿐만 아니라 세척기 공사를 했다거나 무침 주사기를 샀다는 등의 자세한 기록들이 다이어리에 적혀 있다”며 “3년 치 정도의 다이어리가 쌓이면 이는 해당(모돈, 비육돈 등) 양돈 분야의 전문서와 같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농촌 현장에 인력난이 극에 달했던 1~2년 전에도 분홍돼지는 인력난을 전혀 겪지 않았다. 직원을 여유 있게 운영하는 등 직원들에 대한 업무 스트레스를 줄였기 때문. 이로 인해 12년간 분홍돼지에선 직원 이직이 ‘제로’다.

이와 관련 유인호 대표는 “우선 채용과 인력 배분이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처럼 감정이 좋지 않은 국가가 동남아에도 있다”며 “그런 국가 출신 직원들은 뽑지 않고, 또 직원들을 다 합법적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농어촌 현장에선 직원 고용 시간이 탄력적이지만 일주일에 48시간 정도 근무할 수 있게 하며 30~40% 정도 인력을 더 뽑고 있다”며 “그렇게 하니 직원들의 업무 스트레스도 확연히 줄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면 충분히 다녀오라고 하고, 그들은 다녀와도 일이 밀리지 않으니 농장에 복귀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 코로나로 인한 인력난도 문제없이 지나갔고, 지난 12년간 우리 농장에선 직원 이직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분홍돼지는 좋은 사료와 종돈 선택이 생산성 향상의 첫 시작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분홍돼지는 좋은 사료와 종돈 선택이 생산성 향상의 첫 시작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비결 둘. 좋은 사료와 종돈 선택
분홍사료는 2021년 4분기부터 새로운 사료업체와 거래를 시작했다. 당시 사료업체를 선택하기 위해 분홍돼지는 C사 등 5개 사료업체에서 70일령 체중에 대한 자돈사료 시험 사양을 진행했다. 1~2차에 걸친 시험 사양 결과 C사가 월등한 성적으로 높은 체중을 달성했고 이에 이 업체와 거래를 결정하게 됐다.

유인호 대표는 “농가 중엔 사료 회사를 바꿀 때 사료 단가가 싸거나 자금을 잘 밀어주는 쪽으로 업체를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리는 철저히 사양 시험을 통해 사료 업체를 선정했다. 물론 우리 돼지가 C사 사료와 잘 맞았기에 이 업체를 택했지만 각 양돈장 돼지에 맞는 적합한 사료업체가 있을 것”이라며 “사료 선정은 돼지를 키우는 데 기본이자 너무 중요하기에 각 양돈장 돼지들에 맞는 사료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고기의 시작점이 될 종돈 선택도 신중하게 결정했다. 그동안 종돈을 자가로 선발해왔지만 3년 전부터 순천종돈장 종돈을 받기 시작했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순천종돈장은 분홍사료와 같이 C사 사료를 50년간 사용하며 ‘순금한돈’이란 브랜드를 런칭하는 등 국내 최고의 종돈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이곳 종돈을 활용하면서 분홍돼지 MSY도 4두가량 올라갔다.

유 대표는 “유전력은 돼지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산자수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동안 자가로 종돈을 선발했는데 3년 전부터 순천종돈장 종돈을 받으면서 MSY가 4두 정도 올라가고 자가 선발을 하지 않아 여유도 생겨 그걸 다른 데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홍돼지 양돈장은 돼지 사육 환경을 최적의 시스템으로 개조하기 위해 현대화 공사를 진행했다.
분홍돼지 양돈장은 돼지 사육 환경을 최적의 시스템으로 개조하기 위해 현대화 공사를 진행했다.

비결 셋. 현대화 시설에 밀사 지양
분홍돼지 양돈장은 3년 전 화재가 크게 발생했다. 유인호 대표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양돈장에 현대화 공사를 해 건물을 돼지 사육환경에 최적의 시스템으로 개조했고, 8대 방역시설도 모두 설치 완료했다.

유 대표는 “시설을 현대화로 조금씩 개조했지만, 화재가 난 이후에 전면 현대화를 도입했다”며 “현대화 이후 돼지 사육환경이 상당히 좋아졌고, 생산성도 크게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분홍돼지는 밀식 사육도 지양한다. 이를 위해 택한 게 위탁장 사업이다. 2022년 8월 전남 곡성에 있는 부성농원에 첫 입식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전남 담양의 한 양돈장에도 조만간 위탁 사육을 할 계획이다. 이는 분홍돼지에 밀식 사육에서 벗어나는 효과와 더불어 농장 규모도 더 늘릴 기회를 줬다.

그는 “양돈장 급이기는 제한돼 있는데 돼지가 많으면 밥을 먹기 힘들고 활동에도 제약을 받아 아픈 돼지들이 생겨나며 질병에도 취약해진다”며 “위탁 사육을 해 밀사가 나지 않게 하면 돼지가 잘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육사 부족으로 인해 임신사나 분만사가 여유 공간이 있는데도 사육규모를 못 늘리고 있었는데 위탁장을 구해 사육 규모도 더 늘릴 수 있게 됐다. 현재 6500두인 농장 규모를 8000두까지 늘리려 하고, 궁극적으론 1만 두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유인호 대표는 분홍돼지 10대 뉴스 제작, 온라인 카페 개설 등을 통해 직원 및 농가와 소통하고 있다.

비결 넷. 양지에서 소통 또 소통
양돈 2세 농가인 유인호 대표는 주변 양돈 2세들과의 소통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22년 10월 ‘양지바른돼지’라는 네이버 카페를 개설한 것도 농가·업체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유인호 대표는 “축산 농가, 그중에서도 양돈 농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가축 방역 때문인지 폐쇄적인 경우가 있고 자신들의 사육 노하우를 잘 공유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농가 간 소통과 사육 방법 공유는 대한민국 전체 한돈산업을 위해 상당히 중요하다. 그래서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 농가와 업체 등과 소통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양돈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풋살을 하거나 회식을 하며 친목도 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분홍돼지는 최근 ‘2022년 분홍돼지 10대 뉴스’도 만들었다. 이 역시 직원 활동 상황을 알리는 역할 외에도 후배 농가에 분홍돼지의 노하우가 제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유 대표는 “10대 뉴스를 올해 처음 만들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지난 1년간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 있고, 이 10대 뉴스가 10년 정도 쌓이게 되면 양돈산업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책자가 될 수 있다”며 “이는 나중에 들어올 양돈 후배들에게 좋은 지침서도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바랐다.

지금까지 밝힌 여러 비결 이외에도 분홍돼지 10대 뉴스에 따르면 분홍돼지는 효과적인 농장 자금 운용, 법인 컨설팅·세미나 등 농장 아카데미 운영, 농장 성적 상향을 위한 실험 진행 등 양돈업의 ‘정도’를 걷고 있다.

이와 관련 유인호 대표는 “국민 주식인 한돈산업 발전은 농가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직원·농가들과 소통 속에 정도 경영을 하며, 대한민국 한돈산업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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