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여성농업인 김선미 씨

토끼띠 농업인을 만나다

1월 1일. 새해 첫 아침이 돌아오는 일은 매년 반복되지만, 자신의 해를 맞는 이들은 새해가 조금 더 특별하다. 토끼띠 계묘년 새해에도 특별한 마음으로 2023년을 기다리는 토끼띠들이 있다. 지혜롭고 꾀가 많다고 알려진 토끼는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동물의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소규모 목장형 유가공공장으로 6차 산업에 도전장을 내민 1987년생 토끼띠 김선미 씨와 콩 농사에서 딸기 농사로 과감하게 작목을 전환한 1999년생 토끼띠 이영찬 씨는 지혜롭고 부지런한 토끼를 닮아있다. 농촌을 누비며 새로운 활력을 북돋아 주고 있는 두 청년을 만나 새해 소망을 들어본다.

① 천안 여성농업인 김선미 씨 ‘유가공 전문가’ 변신…경영난 목장 구원투수로
군산 청년농부 이영찬 씨 “아버지 보며 꿈 키운 청년…딸기재배에 패기 담는다”

 

소규모 목장형 유가공공장 ‘맘맘스’의 대표 김선미 씨. 그는 불안정한 우유의 수급체계를 안정화하기 위해 신광목장에서 생산한 우유를 요구르트와 치즈로 가공해 판매하고, 체험장을 여는 등 목장을 6차 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목장형 유가공공장 ‘맘맘스’
첨가물 없는 요구르트·치즈 생산
“한번 맛본 이들 또 찾아와”

세 아이의 엄마이자 농부로
소박하지만 꽉 찬 꿈 키워
새해엔 로컬푸드 매장 개장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행복”

충남 천안시 북면 대평리는 진천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천안 끄트머리에 위치한 대평리에서 1987년생 토끼띠 김선미 씨(36)를 만났다. 그는 남편 이중호(38) 씨와 함께 새벽 5시면 눈을 뜨고 집 근처 목장으로 향한다. 남편은 하루 종일 축사에서 일을 하고, 선미 씨는 소규모 목장형 유가공공장 ‘맘맘스’에서 요구르트와 치즈를 가공·판매한다.

“시아버지의 응원과 권유가 큰 계기가 됐어요. 평생 목장을 운영하며 젖소를 기르고 우유를 생산하신 아버님은 변하는 세상에 대한 시선이 남다른 분이셨어요. 덕분에 유제품 수요가 어떻게 확대될 것인지, 세상 먹거리에서 유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키울 수 있었죠.”

불안정한 우유 수급체계로 인해 목장 경영이 어려워진 것도 선미 씨가 유가공에 뛰어든 이유다. 선미 씨의 시아버지 이종진(62) 씨가 운영하는 신광목장은 150여 두 착유소로 하루 4톤의 우유를 생산한다. 남편 중호 씨는 바로 옆 신진목장에서 한우와 육우 150여두를 사육한다. 하지만 목장 경영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코로나 이후 배합사료와 조사료 가격이 폭등했고, 낮은 수준의 유대로 우유를 생산할수록 손해를 봤다.

“신광목장에선 기능성 우유인 DHC원유와 A2원유를 공급해요. 좋은 우유로 인정받고 안정적인 공급처를 둬서 좋긴 하지만, 문제는 생산비가 많이 든다는 점이에요. 반면 유대는 높지 않죠. 다른 농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유 할당제도 때문에 목장 경영이 더 어려워졌어요. 인근에 어떤 목장이 폐업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가 가장 서글퍼요. 이제 곧 우리 차례일까 하는 걱정도 앞서고요. 결국 방법은 하나, 우유를 다른 제품으로 가공·판매해 수익을 올려야 했어요.”

2014년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 육아휴직에 돌입한 선미 씨는 요구르트와 치즈 가공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휴일마다 남편 어깨 너머로 목장 일을 도왔지만, 제대로 배우자는 각오로 충남대 목장형 유가공 수업과 연암대에서 유가공 산업 전반에 대한 과정을 이수했다.

금산에서 인삼 농사를 짓는 농민의 자녀로 태어난 선미 씨는 ‘농사’만은 짓지 말라는 부모님의 반대를 뒤로한 채, 농부로 사는 부모의 길을 선택했다. 5살, 4살 연년생 딸들을 키우며 선미 씨는 치즈 가공과 체험 등 신광목장을 6차 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목장 곳곳에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고 ‘체험 학습터’가 꾸려졌다. 이제 간판 올리는 일만 남겨둔 그때, 선미 씨는 셋째를 임신하게 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셋째를 임신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쩌지’였어요. 가공공장과 체험장을 위해 온 가족이 똘똘 뭉쳐 9억원을 대출받았어요. 이제 개장만 앞두고 있었는데, 셋째를 임신하게 됐으니 한숨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죠. 그러나 곧이어 우리에게 찾아온 귀한 생명보다 우선되는 게 있다는 것에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왔어요. 이 순간이 지금까지도 아이에게 미안해요.”
 

맘맘스 전경.
맘맘스 전경.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선미 씨는 개장을 1년 미뤘다. 공장의 기계들은 그렇게 1년을 멈춰있었다. 다음 해인 2017년, 우여곡절 끝에 가공·체험장 ‘맘맘스’가 문을 열었다. 다행히 개장 후 처음 맞는 추석에 선물 세트 주문이 제법 몰려들었다. 준비 단계부터 알음알음 여러 커뮤니티를 활발히 한 덕분이다. 한 달 동안 가공·체험으로 소비되는 우유량은 약 4톤. 신광목장 하루 착유량이다.

체험도 제법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집에서 체험학습을 온 아이들을 조사료를 생산하는 청보리밭에서 뛰어놀고,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였다. 금세 배고파진 배는 갓 짠 우유로 만든 치즈와 요구르트로 채웠다.

“신선한 우유로 첨가물을 하나도 넣지 않고 만든 요구르트와 치즈를 맛본 아이들과 어른들은 그 맛이 생각난다며 또 와요. 학교에서 체험으로 왔던 학생들이 가족들과 또 왔다며 재잘재잘 떠들 때 정말 큰 보람을 느껴요.”

선미 씨는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목장이 입소문을 타자 어린이집과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가족단위의 손님들까지 체험활동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쳤다. 선미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체험활동 안내와 교육을 하고, 밤에는 가공 포장 작업을 한다. 대한민국 슈퍼맘 세 아이의 엄마이자 농부인 선미 씨는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부지런히 살고 있었다.
 

맘맘스 제품.

2023년 ‘검은 토끼의 해’를 맞은 선미 씨의 새해 소망은 소박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오듯,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버틴 선미 씨는 지금까지 노력한 일의 결실을 기다렸다.

그는 “내년 3월 봄이 오면 통유리 창으로 지은 2층짜리 건물 ‘맘맘스 판매장’이 문을 연다”며 “이곳을 ‘대평리 로컬푸드 직매장’으로 활용해 수수료를 받지 않고, 마을 할머니들이 수확한 냉이, 배추, 밤, 단호박 등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맘맘스는 다양한 농산물로 소비자들을 맞을 수 있어서 좋고, 마을 사람들은 수수료 없이 판매할 수 있어서 좋다. 맘맘스를 통해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선미 씨는 새해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목장의 하루를 열 것이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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