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충북 보은 김동현 청년농업인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김영제, 김동현 씨 부자는 충북 보은군에서 파란농원을 운영하며 사과 4000평, 대추 1000평 농사를 짓고 있다. 한해 수확한 사과는 약 20톤으로 전량 직거래로 판매되고 있다.
김영제, 김동현 씨 부자는 충북 보은군에서 파란농원을 운영하며 사과 4000평, 대추 1000평 농사를 짓고 있다. 한해 수확한 사과는 약 20톤으로 전량 직거래로 판매되고 있다.

농업 뛰어든 지 올해로 8년
사과·대추 농사 짓는 데 주력 

가공식품 분야에도 뛰어들어
‘춘자 씨네 사과즙’ 선보여

농촌소멸 막는데 역할 큰 청년
영농 기반 제공 등 힘써야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한 30대 이하 청년은 1522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도보다 11.1%나 증가한 것인데, 이에 대해 정부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의 정책성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실제 직접 만나본 청년들의 말은 좀 달랐다. 2030 청년들은 조금 독특하다. 청년들은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특히 부모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자란 청년들은 처음에는 농업을 기피하다가 천천히 농업의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농업에 뛰어든 청년들이 많았다. 농촌으로 간 청년들이 농사를 짓게 된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다.

“2011년 뭣 모르던 시절에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이 하나 있는데, ‘벤츠 타는 농부’가 되고 싶다고 썼더군요. 그 나이에 벤츠라는 자동차는 자수성가의 아이콘 같았나 봐요. 농업에 뛰어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이제 딱 10년이 됐는데, 겨우 소나타 할부가 끝나갑니다.”
 

충북 보은군 산외면 백석리 속리산 자락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과와 대추 농사를 짓는 김동현 씨(35)는 농사를 짓게 된 이유에 대해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같이 대답했다.

20가구도 채 되지 않는 이곳 산외면 백석마을에서 김동현 씨는 태어나고 자랐다. 동현 씨도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게 ‘죽었다 깨나도 농사 안 지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동현 씨가 커가는 사이 마을 어르신들은 점점 연로해졌고, 그가 스물다섯쯤 되었을 땐 더 이상 사과농원 일을 도와줄 마을 분들이 없었다.

‘다 떠나면 이 땅엔 누가 남아있을까?’ 그는 부모님의 인생이 담긴 마을과 사과농원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실제로 동현 씨가 사는 보은군은 충북 내에서도 ‘소멸 고위험지역’에 속한다. 귀농한 청년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이곳에서는 젊은 청년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동현 씨는 충북대학교 토목학과에 진학했다. 그에게 ‘농업’은 아직 여러 개의 진로선택사항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억대 농부'를 소개하는 방송을 보게 됐고, 그는 먼지 나고 땀 냄새 풍기는 농사로도 잘 먹고 잘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그는 토목학과에서 농업경제학과로 전공을 바꿨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농업’을 진로로 선택한 것이다.

이어 대학 졸업 후 젊은 도시 사람들이 농촌을 한 번이라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서울에 있는 농업 관련 재단에서 1년 정도 경험을 쌓았다. 귀농은 몇 년 후의 일이 될 줄로 생각했던 그가 귀농을 앞당기게 된 계기는 어머니 유춘자 씨가 고된 농사일로 인해 무릎 수술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파란농장에서 판매되는 따라먹는 방식의 생사과즙. 

그는 어느덧 8년 차 청년 농부가 됐다. 부모님 사과 농원에서 일하면서 처음에는 ‘말 잘 통하는 한국인 노동자’ 정도로 매달 급여를 받았다. 그렇게 3~4년이 지나고부터 그는 직접 사과 가공 분야에 도전해 어머니의 이름을 딴 ‘춘자씨네 사과즙’을 출시했다. 특수 밸브를 사용한 용기(에코백)를 활용해 손으로 따라 마시는 사과즙이 인기를 끌면서 인근 사과 농가와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고, ‘모모씨네 사과즙’이라는 제품명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이후 사과주스와 사과칩 등 점차 가공제품 품목을 늘렸고, 지난해는 작은 물량이나마 백화점 직영몰을 통해 필리핀과 대만에 사과주스를 수출하기도 했다. 몇 년 동안의 가공 노하우가 쌓이면서 지난해 가공식품 매출로만 7000만원을 달성했다는 그는 현재 부모님 명의의 농지에서 발생되는 수입은 부모님 통장으로, 가공·유통을 통해 나오는 수입은 동현 씨 통장으로 정산하는 방식으로 분배하고 있다.

그가 바라는 농업·농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청년 농부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만큼 그는 농업과 농촌의 가능성이 조금 더 열렸다고 생각했다. 현재 농업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삶의 모습과 성공 사례를 보여 준다면, 농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농업·농촌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라고. 무엇보다 동현 씨는 농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간이고, 농업 역시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아는 시대가 오길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년농업인정책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부재하다는 얘길 꺼냈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느낀 바로는 농촌이 소멸하지 않고 버티려면 이탈하지 않는 젊은 농업인구를 확보해야 한다. 이 부분은 귀농·귀촌으로도 메꿀 수 없는 틈이다. 그러나 지난 정부 때 나온 청년창업농정책은 많은 청년을 농촌으로 유입시키는 데는 성공한 듯 보였으나 이미 농업을 시작했거나 부모의 기반이 있는 승(후)계농들에게는 지원 기간을 단축하거나 부모의 건강보험료 즉 부모의 농업 기반 및 자산에 따라 선정제외기준을 만드는 등 ‘마지못해 해준 정책’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탈하지 않을만한 젊은 농업인구의 확보라는 청년농업인정책의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아주 아쉬운 부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선거철이 되니 ‘청년 팔이’로 쓰고 버리기 좋은 카드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더군요. 제가 청년이라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농업·농촌의 한 구성원으로서 먼저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어요. 연고 없이 시작하는 창업농에게는 영농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고, 승(후)계농은 부모님의 기업을 이어 더 성장할 수 있게 해주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는 어떻게 하면 더 전문적이고 탄탄한 농원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매출 정체와 원자재 가격변동, 심각한 기후변화 등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

“1년에 2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상품 5개를 모으니, 연 매출 1억원이 되더군요. 제 목표는 현재 농업을 기반으로 10억원의 매출을 만드는 거예요. 아주 많이 모아야 하겠지만, 그쯤 되면 최소한 주변 사람들에게 ‘농업도 멋진 직업이구나!’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을까요? 10년 뒤에는, 10년 전 꿈이었던 벤츠 타는 농부가 꼭 되고 싶습니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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