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경북 영천 박청목 청년농업인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정성을 담은 인생복숭아'를 판매 슬로건으로 복숭아 농장 '도도명가'를 운영하고 있는 박청목(사진 오른쪽) 씨. 그는 20년 넘게 복숭아 농사를 지은 부모님 박성태(62)·서명희(57) 씨와 함께 이곳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서 그의 '진짜 꿈'을 이루고 있다.
'정성을 담은 인생복숭아'를 판매 슬로건으로 복숭아 농장 '도도명가'를 운영하고 있는 박청목(사진 오른쪽) 씨. 그는 20년 넘게 복숭아 농사를 지은 부모님 박성태(62)·서명희(57) 씨와 함께 이곳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서 그의 '진짜 꿈'을 이루고 있다.

‘할 일 없어 농사짓는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요즘은 ‘똑똑한 청년들이 농사짓는다’는 말이 대세이다. 그만큼 철저한 농촌 탐색과 사전 준비는 물론 각종 정부지원사업과 청년농업인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 귀농을 준비해 온 청년들이 농촌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빈틈없는 계획 없이는 농사지어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도 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속에서도 청년들은 농업의 가치를 발견하고, 농사를 짓고, 판로를 개척하며, 요리를 하고, 가게를 열고, 음악을 하고, 글도 쓰며 농촌 생활을 즐긴다. 농촌으로 간 청년들의 일상과 그들의 존재로 달라지는 농촌 분위기를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사물놀이에 빠져 국악 전공 했지만 ‘밝은 농업의 미래’ 보고 귀농

푸를청에 나무목. ‘푸른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박청목 씨(33)는 경북 영천 대창면에서 2대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농업인이다. 엷은 황갈색 앞치마를 둘러매고 복숭아 선별 작업을 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공방에서 작품을 만드는 어느 한 예술가의 모습같다. 그는 농사일할 때 입는 작업복이 따로 있을 정도로 복장에 신경을 쓰는 걸로 유명하다.

실제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물놀이에 빠져 국악을 전공했던 음악도이다. 국악에 이어 작곡 공부를 하면서 길거리 공연도 열곤 했다. 음악을 따라 자유롭게 살던 청목 씨가 부모님에 이어 복숭아 외길 인생을 걷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특히 8년 전 그가 귀농을 결심했던 2014년은 쌀 시장 개방과 한중 FTA 체결을 막기 위해 그 어느 해보다 힘겨운 날들이 이어지던 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때 귀농을 결심한 이유는 ‘밝은 농업의 미래’였다.

“22년 전 귀농한 부모님은 지금까지 복숭아 농사만 지으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고생하는 걸 너무 많이 보고 자랐어요. 농사는 절대 안 할 거라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음악을 하면서 20대 중반까지 보내다가 가끔 부모님 농사일을 도왔는데, 어느 순간 부모님이 하는 농업이 새롭게 보였어요. 내가 생각했던 그런 힘든 농사라기보단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소비 형태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또 공판장 출하가 아닌 직거래 출하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어요.”

청목 씨는 부모님이 일궈온 복숭아 농장을 잘 이어간다면 유럽의 어느 유명한 농장 못지않게 ‘충분히 돈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다품종 소량생산, 직거래 판매,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과수원 등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농업의 가능성이 보였다”면서 “특히 농사를 1년 내내 하는 게 아니고 겨울 농한기엔 남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도 계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생각하는 농업의 매력은 만능 엔터테이너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우선 작물의 생육 상태를 잘 읽을 줄 알아야 하므로 생물 등 자연과학에 빠삭해야 한다. 태풍, 장마, 가뭄 등 환경변화와 기후위기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체력은 물론 인내심도 필요하다. 시시각각 바뀌는 소비심리도 파악해 홍보·마케팅을 통한 농산물 판매 전력도 필수적이다. 농장을 운영하기 위한 경영 능력과 회계 관리도 빠질 수 없다.

 

복숭아 22~23개 품종 소량 생산, 직거래‘맛있어 고맙다’ 문자 뿌듯

청목 씨가 부모님과 함께 운영하는 과수원은 1만평 규모로 이중 2000평에서는 어린 복숭아나무를 키우고 있고, 나머지 8000평에서는 복숭아를 생산한다. 특히 백도, 설원, 납작백도, 아삭한황도, 신비, 하얀 망고 등 22~23개 품종의 복숭아를 6월 중하순부터 10월 초까지 계속해서 수확해 ‘복숭아 백화점’으로 불릴 정도다. 농사 경력 8년 차인 청목 씨는 청년농업인이라고 하면 으레 쉽게 떠올리는 ‘초보 농부’가 아니다. 나뭇잎 색깔만 봐도, 복숭아 향기만 맡아도 나무 상태와 수확 시기를 가늠하는 준 베테랑급 농업인이다.

복숭아 수확이 한창인 6월 말, 그의 일상은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오전에 복숭아를 수확하고, 오후에 선별작업을 거친 뒤 바로 택배 포장을 한다. 틈틈이 소비자들에게 보낼 복숭아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직거래 판매 비율은 5배 넘게 성장했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해 ‘복숭아가 정말 맛있어서 고맙다’는 문자를 서른 통 넘게 받은 일이다. 

“제값 받고 판 농산물인데도 고맙다는 문자를 받으니까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내 손으로 심고 가꾸고 수확해서 보낸 복숭아는 어떻게 보면 제 예술품이잖아요. 이걸 받은 분들이 고맙다고 하는데, 이 뿌듯함과 성취감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우리 농장 판매 슬로건이 ‘정성을 담은 인생복숭아’인데, 이걸 소비자들이 알아주니까 보람 있더라고요.”

 

같은 면에 청년농업인 20명초기영농정착금 확대 등 시급

영천시 대창면에는 청목 씨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농업인이 20명 정도 모여 있다. 이곳 농촌 청년들은 고된 일과를 마친 뒤 맥주도 한잔씩 기울이며, 고민을 나누는 일상을 보낸다. 청년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할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농촌 인구감소나 고령화를 걱정하면서 자꾸 농촌에 청년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청년들은 농사를 지어서 돈이 된다는 인식이 있어야 농촌에 들어올 겁니다. 농촌이 단순히 ‘힐링’만 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면 청년들은 안 움직일 거예요.”

청년들이 농업에 도전해 보겠다는 각오로 농촌에 들어온다면, 정부는 확실한 지원을 통해 농업의 비전과 적절한 대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5년 동안 열심히 농사지으면 최소한 중소기업 연봉 정도의 소득은 돼야 청년들이 농업을 이어갈 수 있는데, 지금처럼 청년농업인이 5년차부터 매년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에 허덕이는 모습이라면 이걸 보고 누가 농촌에 들어오려고 할까요?"

차라리 청년농업인 선발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더라도 제대로 농사지을 청년이라면, 과감하게 10년 동안 초기영농정착금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한 대부분의 청년농업인 지원이 청년창업농에 집중돼 후계농업인들의 불만이 많은 만큼, 앞으로는 청창농과 후계농을 확실히 분리해 지원해줘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꿈은 3대가 운영하는 백년기업 농장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내년에 제가 아빠가 되는데, 제 아이에게 농업을 물려주고 싶어요. 대신 저보다 이 농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겠죠? 3대가 함께 농장을 운영하는 백년기업으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그때까지 농촌에서 친구들과 함께 서로 힘이 되어주고 누구보다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갈 거예요.”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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