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기노 기자] 

“쌀값이 더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쌀값 폭락, 쌀 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는 정부를 성토하는 농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차라리 쌀값이 더 폭락해 동학농민운동과 같은 대정부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농민들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45년만의 쌀값 대폭락,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날 토론회에선 양곡관리법을 지키지 않은 농식품부의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지난 2020년 변동직불제가 폐지되면서 쌀값 하락 우려가 나오자, 농식품부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매년 수확기 쌀 수급안정대책을 수립하고, 시장격리 및 생산조정을 통해 쌀값이 안정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양곡관리법에는 쌀 초과 생산량이 생산량의 3%를 넘거나, 단경기(7~9월)나 수확기(10~12월) 쌀값이 전년보다 5% 이상 하락할 경우 시장에서 쌀을 격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지난해 27만톤의 과잉생산 예측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시장격리 시기를 늦추고, 분할방식으로 격리물량을 축소했으며, 최저가 입찰을 통해 쌀값 하락을 오히려 부추겼다. 수급 불안 시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양곡 시장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예측 가능성을 확보해 쌀값 안정을 유도하겠다는 양곡관리법의 입법 취지를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한 위법성 여부는 추후 면밀히 따져봐야겠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지난해 농식품부가 쌀값 안정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양곡관리법에서 정한 시장격리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농식품부는 쌀값이 일부 오른다는 이유로 시장격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당시 쌀 생산량이 늘어나는데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고, 전북 지역 신동진벼를 중심으로 도열병 피해가 상당하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정부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을 느껴 격리 물량을 발표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돌이켜 보면 그때 시장격리 물량을 발표하지 못한 것이 지금의 쌀값 폭락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 건 분명히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 물가안정을 이유로, 쌀값 하락 방조를 시인한 셈이다. 

토론회에서 농식품부는 쌀값 안정 대책과 연계해 ‘분질미’를 또 다시 언급했다. 분질미와 콩, 밀 등에 대해 전략작물직불제를 도입해 타작물재배사업과 같은 쌀 생산조정 효과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정황근 장관 취임 후 분질미는 쌀값과 식량안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취임 한 달 만에 ‘분질미 활용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놨고, 2027년까지 수입 밀가루(연간 200만톤)의 10%를 국내산 쌀가루로 대체하겠다는 청사진도 함께 발표했다. 분질미 대책이 수립되고 추진되는 과정은 장관의 정책적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보여준다.

농식품부가 분질미만큼의 정책적 의지를 쌀값 안정에 보였다면 어땠을까. 3차례에 걸친 시장격리에도 쌀값 폭락이 계속되고 있고, 수확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신곡 가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농식품부가 쌀값 안정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기노 농정팀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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