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농촌엔 사람이 없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할 사람, 준비된 사람이 없다. 당장 농사지을 사람조차 없고 부족한 자원 앞에 생존을 걱정해야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나 헌신을 이야기하는 사회혁신은 먼 나라 이야기다. 결국 그런 일들을 해낼 사람들을 찾고 육성하는 일이 시급할 수밖에 없다. 

ㅣ 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예전에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을 할 때였다. 방학 중 등교하는 학생들의 급식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어릴 때처럼 매일 도시락 싸주면 되지. 얼마나 아름다워요! 자녀들을 위해 정성스런 요리와 거기서 자라날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 오순도순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친구들과의 우정….”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경험상 대개 이런 류의 말들은 세상사 달관의 경지에 올랐거나 본인이 서 있는 자리가 별로 절박하지 않은,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서 비켜 서있는 이들의 말인 경우가 많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하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논리가 통째로 도전을 받으면서 새로운 사회모델들이 이야기되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빅소사이어티와 관계국가 모형이다. 농촌복지로 시작한 여민동락이기에 시민사회의 합의에 의한 새로운 공공성 담론, 사회투자 전략, 관계 기반의 공동체복지, 사회혁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지난한 과정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정부 들어서 거의 모든 정책사업에 시민사회(또는 공동체)와 사회혁신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그러나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10년간 134조원을 쏟아 부은 저출산정책의 결과가 세계 유례없는 합계 출산율 0.84명으로 나타나도, 십수년간 수조를 쏟아 부었지만 끊임없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농촌 지역개발 문제도, 앞서간 타 지역의 청년사업들을 베껴서 결국 비슷한 부정적 평가가 순차적으로 쏟아져도 제대로 된 진단과 변화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늘 그랬던 것처럼 문제는 주민들의 이기심과 욕심, 부족한 역량으로 귀결되고, 사업을 세팅한 결정권자들이나 그 사회적 위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이들은 또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뭔가 그럴듯한 대안을 내놓는다. 겉으로 보이는 표현과 양식은 섹시하면서도 일목요연하고 더욱 정의로워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악순환은 끝없이 반복된다. 막상 현장에서 들여다보면 실현 불가능하거나 현장 여건과 맞지 않아 그대로 수행하기 어렵고 10원이면 해결할 일을 시간은 시간대로 들이고 100원이 들게 만든다.

딱 봐도 보기 좋은 하드웨어나 외국에서 수입한 각종 기법들로 무장한 프로그램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는 그 분들한테는 그럴싸한 작품이 된다. 그리고 이후 여기저기서 창조적 베끼기와 순차적으로 망해가는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15년 농촌에 있으면서 늘상 보는 것들이다.

특히 농촌은 그러한 경향성이 더욱 뚜렷하다. 물론 오랫동안 이어온 관행과 방식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좋은 비전과 전략 목표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며 묵직하게 기다려주는 것도 신뢰와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적 배려일수 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만큼 농촌의 상황이, 미래가 밝지 않다. 마침 내년 대선, 지자체 선거가 있는 중요한 해다. 복합적 사회적 위기 앞에 내몰려 있는 농촌엔 마지막 출구일 수 있다. 농업·농촌에서 한자리 하시는 분들은 후보들에게 강하게 이야기 하라. 단기적 이해관계를 떠나, 더불어 사람 살만한 농촌을 위해 담대하고 혁신적인 방안을 공약에 담아 달라고 말이다. 말 한 김에 나도 한마디 보탤까 한다.

농촌의 위기를 풀어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승전 핵심인재의 육성이다. 장기적 과제인 국가교육과정과 교사양성의 혁신은 논외로 한다. 여기서는 10년의 단기적 과제로서의 핵심인재 육성이다. 농촌에 거주하는 성인부터 도시에 거주하며 귀농귀촌을 꿈꾸는 분들이 해당된다. 농촌엔 사람이 없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할 사람, 준비된 사람이 없다. 당장 농사지을 사람조차 없고 부족한 자원 앞에 생존을 걱정해야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나 헌신을 이야기하는 사회혁신은 먼 나라 이야기다. 결국 그런 일들을 해낼 사람들을 찾고 육성하는 일이 시급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과제는 오래 전부터 현장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제안했던 것들이다.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가 대표적 사례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 프로그램과 최저 임금수준의 인건비 지급과 단순 경험 수준의 프로그램이 아닌 3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의 육성기간이 필요하며 적정 수준의 인건비와 주거지 마련은 필수다. 농촌 사회혁신에는 복지, 교육, 문화, 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분야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여민동락이 15년간 현장에서 경험하고 이뤄낸, 그리고 실패한 수많은 과정을 통해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농업, 농촌 사회정책 관련 예산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솔직히 늘리지 않아도 현재 수준에서도 해결 가능한 방법들은 이미 존재한다. 모두가 결정권자나 이해관계자의 눈치를 보며 주저주저하거나 포기하기 때문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혁신은 이것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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