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사면초가 인삼업계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생산량 완만한 상승세 속
신규재배 크게 늘어난 2017년산
올해 6년근으로 수확 도래 비상

‘손질 번거롭다’ 수삼구매 기피
선물시장도 홍삼제품 선호
고형분 첨가량 줄어 재고 급증

인삼업계에선 수년 전부터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가격 폭락을 경고하며 수급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업계에서 인삼 공급량을 설명할 때 쓰는 단어는 ‘폭탄 돌리기’였다. 인삼의 소비는 줄고 있지만 생산량은 전체적으로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 부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생산량을 줄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생산량을 늘리는 행위가 반복됐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의 원인이 특정 주체만의 잘못이 아닌 농가와 농협, 정부 모두의 잘못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올해 수삼 쏟아진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행하는 인삼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인삼 생산량은 2016년 2만386톤에서 2017년 2만3310톤, 2018년 2만3265톤, 2019년 1만9582톤, 2020년 2만3896톤으로, 완만한 상승세를 띤다.

지난해에는 홍수 발생으로 상품성 하락을 우려한 인삼 농가들이 계획했던 재배기간보다 수확을 앞당겼고, 그 결과 시중에 소화되지 못한 수삼 물량이 적체되면서, 가격 또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충남 금산군에 따르면 8월 2일 생삼(수삼 10뿌리 기준) 가격은 3만1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가격인 3만8500원보다 20% 가까이 하락했다. 

문제는 올해 수확기 수삼 가격이 더 하락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계약재배 외 생산된 물량이 올해 수확기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삼협회에 따르면 국내 인삼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인삼공사와 인삼농협이 2017년 공급과잉을 이유로 신규계약재배를 대폭 줄였다. 평년에는 신규계약재배 면적이 1000ha 가량이었으나 2017년에는 677ha까지 감소했다. 2017년 총 신규재배면적이 2977ha인 것을 감안하면 계약재배 면적은 22.7% 수준이고 나머지 78.3%가 개인 재배면적인 셈이다. 2017년에 크게 증가한 개인 재배 6년근 수삼의 수확기가 올해로, 이 물량이 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온다면, 기존 수삼 물량이 적체된 상황에서 수삼 가격의 폭락은 막을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악화되는 소비부진

이처럼 공급 과잉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 부진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선 소비 감소의 원인을 소비자의 인삼 소비패턴 변화와 코로나19 발생 두 가지로 보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인 소비자의 인삼 소비패턴 변화의 경우 과거에는 수삼을 구매해 세척 등 손질 후 달여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손질이 번거롭다보니 수삼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대폭 줄었다. 

이와 관련 김명수 인삼의 미래 대표는 “수삼선물세트나 수삼을 이용한 요리 등을 애용하던 현 60대 이후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이 변화했다”라며 “홍삼 제품으로 선물을 하거나 복용을 하는 등 소비자의 소비패턴 변화가 수삼 시장의 급격한 쇄락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수삼 구매가 하락하는 대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홍삼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홍삼 제품에는 홍삼고형분이 첨가가 되는데 소비자의 가격 저항을 고려해 함량이 적게 들어가다 보니 홍삼 재고가 쉽게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예를 들면 홍삼농축액 제품에는 고형분이 60%가량 들어가지만 추출액제품에는 0.5%~5%, 홍삼수제품의 경우 0.03% 가량밖에 들어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강상묵 백제금산인삼농협 조합장은 “예전에는 홍삼제품에서 홍삼이 주재료였는데 국내·외 소비자들이 홍삼 특유의 향과 맛을 꺼리는 까닭에 다른 첨가제품을 넣다 보니 이제는 홍삼이 주재료가 아닌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보조 역할을 하게 되면서 고형분의 첨가량도 줄어듦에 따라 홍삼 재고가 쌓이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소비 감소의 원인은 코로나19 발생이다. 2019년 12월에 첫 발생한 코로나19는 경기를 급속하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기호식품인 인삼 시장은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황광보 고려인삼연합회장에 따르면 홍삼제품은 대부분 면세점과 백화점, 지역 토산품점에서 판매됐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어려워지고, 국내 관광도 얼어붙으며 홍삼제품의 소비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며 홍삼제품 판매 인프라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는 게 황광보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공항 면세점이나 백화점, 토산품점에서 홍삼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았고, 이 판매점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라며 “이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장을 철수하는 사례가 많아졌는데 더 큰 문제는 한 번 사라진 인프라는 다시 회복하는데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소비 위축은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판매 소극적인 농협, 정부는 불구경농가 재배량 조절 눈치싸움

인삼 수급 불균형 원인은
농협·정부·농가 ‘모두의 탓’
경작신고의무화 도입도
4년째 결론 못내고 지지부진

◇인삼 수급 불균형, 누구의 책임인가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으려 노력한다. 인삼업계는 수급 불균형의 원인을 농협, 정부, 농가 ‘모두’라고 지목했다. 특히 농협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농협이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인삼시장을 방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명수 인삼의 미래(강원인삼농협 이사) 대표에 따르면 전국에 인삼농협은 총 11개가 존재한다. 인삼농협들은 각 지역에서 인삼농가와 계약을 맺고 수삼을 수매해 홍삼제품을 만들고 각자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삼공사의 브랜드인 정관장에 비해 낮은 인지도와 소비자 니즈를 파악한 신제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홍삼제품 판매량은 저조한 상황이다. 홍삼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공장 가동일은 1년에 100일 수준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농가 수매량도 크게 늘지 않고 있다는 게 김명수 대표의 설명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조합장들은 재선을 위해 농협 본연의 기능인 경제사업 비중을 줄이고 신용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김명수 대표는 “인삼농협이 가공공장을 돌리면 적자고 또 홍삼 재고를 장기 보관하면 손실이 발생하는데 일부 조합장들이 재선을 위해 본연의 기능인 경제사업은 등한시하고, 보다 쉽고 편하게 재정을 늘릴 수 있는 경제사업에 치중하는 건 잘못됐다”라며 “농협이 어떻게 하면 조합원의 농산물을 조금 더 수매해 이것을 가공 후 잘 판매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인삼농협의 신제품 개발에 대한 의지 부족도 문제다. 소비자의 니즈는 빠르게 변하는데 여전히 과거에 출시된 제품에만 의존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홍삼제품 판매량도 줄어든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상묵 백제금산인삼농협 조합장은 “한국인삼공사는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는데 인삼농협은 신제품 개발이 다소 부족한 편이다”라며 “기존 홍삼제품에 안주하지 말고 젊은 층이 일상에서 보다 쉽게 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인삼이 기호식품인 까닭에 다른 작물에 비해 정부의 산업 진흥에 대한 적극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또 수년 째 논의 중인 경작신고의무화 도입도 정부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까닭에 정확한 공급량도 파악하지 못할뿐더러 자조금 거출에도 문제가 생기고 무임승차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김명수 대표는 “경작신고가 의무가 아니다보니 전체 물량의 80%밖에 생산량이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라며 “정부에서 경작신고의무화 도입을 4년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수급조절을 위해서는 정부가 하루빨리 도입을 진행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농가들도 전체적으로 인삼 공급이 과잉된 상황이면 적게 재배해야 하는데 서로 눈치를 보며 경작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인삼 산업 존폐 위기까지 몰리게 된 상황이다”라며 “농가들도 자성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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