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오형은 지역활성화센터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구자인 “행정의 정책 전문성 제고현장 활동가 육성 시급”

2000년대 들어 농촌 지역 곳곳에 수많은 농촌 개발 사업이 추진됐다. 하지만, 농촌에 사람들은 남지 않았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시설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방치됐다. 현장에서는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주민과 지역이 주도하는 상향식 체계 실현은 갈 길이 멀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개발 위주의 사업이 여전한 데다 관 주도의 공모제 방식을 거쳐 행정편의적인 성과지표에 기대는 추진 방식을 답습하고 있어 정책 취지가 현장에 제대로 스며들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행정의 정책 전문성 부재와 추진체계, 전달체계의 문제 등도 지적된다.

한국농어민신문은 릴레이대담의 두 번째 순서로 ‘농촌정책 혁신’을 주제로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 지원센터장과 오형은 지역활성화센터 대표의 대담을 진행했다. 두 전문가의 문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부적으로 구자인 센터장은 정책 추진·전달 체계의 개선과 현장 활동가 육성이 필요하다고 봤고, 오형은 대표는 지역이 스스로 결정해 지역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시 : 2021년 1월 27일(수) 오전 11시
장소 : 서울 강남구 자곡동 소재 지역활성화센터 사무실
사회 :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부국장


●농촌정책의 성과와 한계는

 구자인 
지역서 존재감 없는 농촌정책
시행착오 개선되지 않고 되풀이
주민 주도 상향식만 강조 오류
읍·면과 시·군의 역할 설계 못해

 오형은 
농촌관광에 치중된 초기 정책
농외소득·일자리 고민은 성과
물량·실적 중심의 사업 한계
가이드라인 맞춰 집행에 ‘급급’


-사회=지금까지 추진된 농촌정책과 농촌지역 개발사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짚어달라.

 ▲구자인 =성과와 한계를 먼저 얘기 전에 ‘농촌정책이 과연 무엇이냐, 그동안 농촌정책이 있었느냐’고 먼저 묻고 싶습니다. 농식품부에 ‘농촌정책국’이 생긴 게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7년경인데, 그 당시 문제의식은 농촌정책을 농업정책보다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자체로 내려오면 여전히 농촌정책은 농업정책의 부속물이나 지역개발 사업의 일부로 취급받을 만큼 존재감이 전혀 없는 상황이죠. 그러다보니 농업이 농민들만의 문제로 국한돼 농업·농촌의 지위가 지나치게 축소돼 버린 게 아닌가해요. 농촌에 살고 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주민들의 문제까지 포괄해 농촌정책을 풀어갔더라면 농업이 이렇게 쪼그라들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오형은 =초기 농촌정책은 일자리, 농외소득 확대에 중점이 두어졌습니다. 농촌관광에 치중돼 사업이 진행된 이유죠. 그러다 2007년쯤부터 읍면 소재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중심지를 중심으로 생활서비스를 어떻게 공급할까 하는 쪽으로 옮아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이 추진됐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을 꼽아보자면, 주민들이 농외소득을 만드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사무장이라든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 생활서비스에 대한 고민도 구체화되면서 공동체 활동이 좀 더 다각화되는 성과들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농촌은 계속 고령화됐고, 과소화됐고, 난개발 문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산 낭비 지적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농촌개발사업에 대한 비판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원인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오형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이 되려면,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다양한 시범연구, 실증연구가 선행돼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은 대부분 예산을 확보하고 바로 사업을 집행하는 단계로 진행됐어요. 당해연도 사업물량도 꽤 많았고요.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몇 개를 따왔느냐가 중요하고, 그 다음엔 예산 집행률에 의해 평가를 받다보니 사업이 주민들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된거죠. 행정의 역량이 사업 선정과 예산 집행에만 치중돼 나타난 문제점들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시설은 만드는 것보다 만든 시설을 20~30년에 걸쳐 운영하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들거든요. 그런데 시설을 짓는 예산만 잡아놓지, 관리운영 예산은 편성을 안해요. 물론 중간에 주민들이 이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역량강화사업을 진행했지만, 그러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이자 약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자인 =그동안 다양한 ‘시행착오’의 경험이 아주 많이 축적돼 있다는 사실이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수없이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시행착오가 여전히 개선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2000년대 초반 체험휴양마을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 주도 상향식’만 강조한 게 오류였다는 생각입니다. 주민 주도로 집행해야 할 일이 있고, 지역계획 차원에서 전문가가 결합해 행정이 해야 할 사업이 있는데 그것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거죠. 읍면 단위에서 해결할 숙제, 시군이나 광역 단위에서 풀어야할 숙제에 대한 고민이 없었어요. 농어촌공사 등과 같은 지원기관의 역할도 명확하게 설계하지 못했고요. 근본적으로, 주민 주체를 이야기했지만, 주민 주체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 지역사회 전체의 총량적인 역량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하게 ‘교육을 하면 역량이 강화된다’는 식의 발상으로 접근해던 게 문제였던거죠. 


-추진 체계와 현장 주체의 문제도 같이 말씀해주세요. 

 ▲구자인 =농식품부는 읍면 단위의 정책 추진주체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요. 사업을 집행하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만 했지,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핵심단위인 읍면에 대한 관심을 놓치고 있습니다. 주민자치회 전환에 관심이 없는 농촌정책은 다 엉터리에요. 또 하나는 그 많은 예산을 투자했음에도 농촌 현장에 사람이 남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행정은 정책 전문성이 없고, 현장에는 활동가가 없고, 토론이 아니라 무조건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사업을 집행하려고 하니, 자율성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침을 구체화시켜 달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죠. 문제는 뻔히 보이는데 아무리 문제제기를 해도 행정은 전혀 바뀌질 않으니 답답합니다. 

 ▲오형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단위 사업들마다 항목과 예산을 다 정해놓고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사업을 집행하다보니까 지역에서 지역의 문제를 고민해서 우리가 뭔가 새로운 정책과제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또 하나, 제가 스스로 잘못 생각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농촌 지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사업 공고가 나고 신청을 하면 3개월 안에 추진위원회를 급하게 만들죠. 지역사회 내에 다양한 그룹들의 충분한 이해나 고민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보니, 사업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당연히 지역내 갈등이 격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형은 “충분한 R&D 없이 예산부터 푸는 추진방식 바꿔야”

●농촌 현실 진단과 농촌정책의 방향은

 구자인 
읍면 단위로 주민자치 강화해
일상 관련 정책 결정하게 해야
마을마다 공동체수당 지급하고 
마을회관 재설계·임대주택 필요

 오형은 
코로나로 농촌의 저밀도 주목
창조적 일자리 등 농촌에 기회
경제서비스 구축하는 혁신 필요
디지털 격차 해소도 중요 방향 


-한편에선 농촌 소멸을 얘기하고 다른 한편에선 코로나 이후 비대면 시대에 농촌의 새로운 기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농촌이 처한 현실,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구자인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한 곳은 예산도 많이 흘러가고 사업 기회도 많죠. 도시보다 농촌은 빈 공간이 많고, 문제점도 많으니까 활동할 수 있는 기회, 일자리를 만들어낼 여지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죠. 가장 절박한 문제입니다. 중간지원조직을 포함해 현장 활동가가 너무 부족해요. 두 번째, 행정의 정책전문성이 떨어집니다. 순환보직제를 포함해 행정조직 개편이 시급합니다. 세 번째는 민간의 칸막이 문제입니다. 농민단체와 농민단체는 물론, 지역내 여러 사회조직 사이에 협력구조가 전혀 없어요. 제가 보기엔 행정의 칸막이가 민간의 칸막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민간이 어느 순간 행정의 예산에 줄을 서는 방식으로 조직화되면서 협력 구조를 못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오형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서 저밀도 사회에 대한 관심, 질병으로부터 안전한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에 귀농귀촌 의향이 더 높아졌다는 응답이 20.3%나 늘었습니다. 농촌으로서는 충분한 기회로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경제활동과 여가가 혼재되기 시작하면서 ‘월화수목금’과 ‘토일’의 구분이 없어지고,  이제는 재택근무, 비대면 업무 처리 등에 익숙해지고 있죠. 그런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이 농촌이라고 생각합니다. OECD가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에서도 농촌이 도시보다 창조적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다고 나와 있어요. 이런 잠재력이 농촌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선상에서 앞으로 농촌정책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 키워드는 무엇이 돼야 할까요?

 ▲구자인 =무엇보다 읍면 주민생활권 단위로 주민자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농촌 정책이 정확하게 실현되려고 하면 면 단위에서 종합 행정이 가능해야 되기 때문에 면에 대한 관심이 더 있어야 됩니다. 면에 비해 군은 면적도 넓고 인구도 많아요. 현장에 살고 있는 농민들, 주민들의 정책적 요구들이 행정에 반영되기에는 너무 멀죠. 군 단위에서는 제도적으로 민관 협치 시스템을 정확히 구축해 민간의 의견을 반영될 수 있게 하고, 지원 기능의 일부가 통합형 중간지원조직으로 구축되도록 만들어내는 한편 실제적인 정책 결정, 일상에 관련된 정책은 읍면 단위에서 결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형은 =내용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공간적으로는 농촌다움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농촌정책은 국민들이 미래에 거주하고 여가를 즐기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 국토의 일부분으로서의 농촌 공간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으로는 일상경제 서비스(상점, 목욕탕, 이발소, 식당), 복지,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돌봄, 보육, 교육)가 지역 내에서 형성되고 공급되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돌봄과 의료시스템이 같이 붙어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CCRC(의료복지마을)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해요. 마지막으로는 디지털 격차 해소 부분이에요. 도시와 다른 방식의 적정한 디지털 기술들, 교통 문제도 그렇고,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도 그렇고, 고령화돼 있는 어르신들이 잘 쓸 수 있는 방식으로 디지털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구자인 =콘텐츠 관련해서는 3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보조사업의 방식을 바꾸는 것 중의 하나로 모든 행정리, 모든 마을마다 매년 300만~500만원의 마을공동체 수당을 주자는 것이에요. 마을에 주고, 마을에서 집행하게 하되 마을 분들이 필요하면 2~3년 모아서 집행할 수도 있고 옆 마을과 같이할 수도 있는 등 다양한 실험들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어느 순간 마을회관이 경로당이 돼 버렸어요. 코로나 시대에 마을회관이 폐쇄됐다고 하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경로당이 폐쇄된 것이죠.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회의라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설계해야 하고, 여기에 디지털 뉴딜 사업이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마을회관을 거점으로 행정리의 마을 자치도 되고 외부와 소통하는 공공시설, 공공사업으로 분명히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면 소재지마다 공공임대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000명 정도 되는 지자체면, 면 소재지에 30~40호 정도의 공공임대주택을 만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농공단지나 귀농귀촌과 연계하면 중간 거점이 될 수 있어요. 지역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저층연립 형태의 임대주택을 LH가 수익사업이 아니라 사회공헌 사업의 성격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농촌정책, 어떻게 바꿔야 할까

 구자인 
행정이 정책 전문성 갖춰야
컨설팅 기관 등 제 역할 가능
공무원 순환보직제 보완하고
농촌협약은 속도 조절 필요

 오형은 
백여개가 넘는 수천억 사업
담당 공무원 1~2명이서 관리
전문성·역량 발휘 불가능
농촌재생법 법제화 추진 필요

 

-말씀하신 농촌 정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추진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컨설팅 농정’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형은 =초기에 컨설팅 일을 시작할 때 사업 집행기간 2년 동안의 사업계획을 수립한 게 아니고, 10년의 마을계획을 수립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지침이 만들어지면서 ‘이건 5년짜리 계획이니까 5년 계획만 수립해’ 이렇게 돼버렸죠. 중앙정부, 광역, 지자체, 전문가들까지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평가하고 관리하다보니까 컨설팅 기관들도 거기에 순응하고 따라가는 상황이 됐던 것 같습니다. 컨설팅 기관의 전문성 문제도 분명 있지만, 그나마 살아남은 회사들은 이 일을 20년간 꾸준히 해 온 회사들인데, 이 업무에 대한 정당한 평가나 보상 기준 등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다보니 농촌에 컨설팅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좋은 인력들이 남지 않게 되는 거고요. 

 ▲구자인 =핵심적인 문제는 행정의 정책 전문성 문제입니다. 행정이 정확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못하면서 농어촌공사와 컨설팅 업체에 사업을 다 맡겨버리고, 관리만 하는 입장이에요. 행정이 공공의 역할을 분명히 해주면 컨설팅 기관도 제자리를 잡아갈 수 있는데, 컨설팅 기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식이 돼 버린 것이죠. 행정의 정책 전문성 문제에서 핵심은 여전히 공무원 순환보직제입니다. 사업을 알 만 하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다음 오는 사람들은 자기 일도 아닌데 뒤치다꺼리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농어촌공사의 문제도 있고, 전문성 없는 컨설팅 회사의 문제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행정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형은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은 전국 100여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고, 지금은 지방으로 이양돼 6000억~7000억원 규모이지만 그 전에는 거의 1조원 가까운 예산이었죠. 이 전체 사업을 농식품부 담당 사무관 1명, 주무관 1명이 관리합니다. 비슷한 유형의 국토부 도시재생뉴딜을 보면 아예 사업단을 만들어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고, 부처뿐만 아니고 LH, 국토연구원 등 다양한 기관이 협조하는 틀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과 크게 비교되죠. 정책 사업이 만들어지면, 예산을 가지고 담당 사무관이 지침을 만들어서 뿌리고, 그 다음에는 공사에 위탁하는 구조가 반복되다보니 당연히 전문성이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구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모제 방식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인데요.

 ▲구자인 =공모사업의 원래 취지가 많이 왜곡돼 있고, 공무원들이 지자체를 줄 세우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게 정말 큰 문제입니다. 사실 공모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평균적으로 예산이 배분된다고 봐야 합니다. 먼저 시작하느냐, 나중에 시작하느냐의 차이밖에 없죠. 농식품부는 제대로 된 시범사업이 없습니다. 시범사업도 없이 공모사업을 하니 결국 ‘검증 안된 사업인데 위험을 같이 나눌 지자체를 찾습니다’ 하는 꼴이죠. 방법론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공모사업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지침이 뜨니까 준비되지 않은 데가 막 들어와요. 어쩔 수 없이 개수를 정하고 예산을 정해놨으니까 질이 떨어져도 해 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공모기간도 너무 짧아요. 충분히 논의가 안 되니 결국 컨설팅 업체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 설명회도 없어요. 홍보도 전부 다 행정을 통해 공문으로 내려갑니다. 민간은 행정에서 누가 전화해주면 알게 되는 실정이죠. 

 ▲오형은 =지역이 스스로 뭔가를 계획하고 스스로 뭔가를 실행하도록 만들어야 되는데,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예산의 한계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재정자립도가 터무니없이 낮고, 공무원 수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권한이나 예산을 지방으로 이양한다고 바로 해결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지자체가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해 줘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지자체가 스스로 결정한 다음에 중앙정부 예산을 선택해 가지고 올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올해 추진하는 농촌협약제도와 농촌공간계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형은 =농촌협약은 제도이고, 제도를 실행할 최상위 계획은 농촌공간계획입니다. 그 속에 농촌공간 전략계획과 생활권활성화계획, 농촌공간정비계획이 있습니다. 협약은 농식품부와 지자체 간의 약속으로, 그 약속의 대상은 생활권 활성화계획의 내용입니다. 올해 당장 9개 지역, 예비지역 3곳이 선정됐고요. 하지만 생활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해야 되는지, 생활권이라는 것이 어디를 거점으로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어요. 충분한 R&D나 고민 없이 정책이 시작돼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진행되면 공모의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사업이 집행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지자체 입장에서는 예전에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으로 중심지, 기초 거점으로 들어오던 예산인데 총량으로 보면 줄었어요. 그 예산을 받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좀 더 세밀하게 관리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문제를 개선해야 합니다.  

 ▲구자인 =농촌협약과 관련해 정보 공개가 충분히 안 돼 있고, 논의가 안 돼 있어서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협약의 속도 조절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농촌협약이 전제가 되려면 지자체가 계획을 수립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공무원 순환보직제 문제라든지 민간의 추진주체, 중간지원조직 등의 문제들을 충분히 얘기하고 검토하면서 가야 되는데 그런 것 없이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재편 얘기가 나오니까 농촌협약으로 빨리 갈아탄 것이죠. 생활권 개념이 읍면도 정리가 안 돼 있는 상황에서, 옆에 위치한 면과 생활권을 묶는다고 한들 문제가 많습니다. 과학적으로 굉장히 엄밀한 것처럼 통계 분석을 통해 생활권을 구분한다고 하지만, 행정리 단위로 쪼개서 보면 생활권이 또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 등 논쟁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오형은 =일본 정부는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역경제축소를 극복하기 위해 마을 사람 일자리 장기비전을 책정하고, 지방재생법을 개정하고, 지자체가 지역재생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는 농촌공간계획과 협약제도는 관련법도, 타부처사업의 예산 연계도, 관련 교부금도, 지원 특례도 없는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농촌재생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예산 연계도, 관련 교부금 등도 담아야 합니다. 


-두 분 다 농특위 위원으로 활동 중이신데, 농촌정책 문제는 어떻게 논의가 되고 있나요.

 ▲오형은 =농특위에서 농촌 문제를 다루는 분과는 농어촌분과인데, 농어촌정책혁신소분과와 농어촌사회혁신소분과 등 2개 소분과가 있습니다. 지난해 농특위가 의결한 안건은 3가지로 추진체계 개편, 청년일자리, 사회적 경제 다각화 등입니다. 농특위 본회의에서 의결하고 나면 행안부, 농림부 등 부처별로 이행사항에 대해 제시하고, 분기별로 이행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긴급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농특위 내에서 농어촌 정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연구가 마무리되면 아젠다 방식으로 콘텐츠를 개편해 농림부뿐만 아니라 행안부 등 타부처 정책과 함께 연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구자인 =농어촌정책혁신소분과장을 맡고 있는데, 올해 중점 과제는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지난해 추진체계 개편과 관련한 의결 과제를 강하게 요구해 의결했어요. 거기에 대해 올해 연구용역 형식으로 잘 되고 있는 사례들을 찾아 홍보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농촌공간계획과 관련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에요. 세 번째 농어촌정책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 농특위 내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를 하자는 생각입니다. 농특위 내 농어촌 정책의 비전 연구가 곧 마무리되면 내부 토론회를 열고 의견을 나눌 계획입니다.

정리=김선아·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