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사 반발 속 응찰자 비공개 추진 ‘논란 가열’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김관태 기자]

경매사들은 경매 과정 중 노트북(PC 등)을 통해 다양한 유통정보를 확인, 경매에서 최대한 가격이 지지되도록 유도한다.

중도매인 매입 성향이나
구매·분산 능력 파악 등
경매사 역할 외면 ‘분통’

응찰기 오입력 등 확인토록
충분한 정보 제공 목소리


서울 가락시장에서 경매사들이 중도매인 등 응찰자를 알지 못한 채 경매를 진행토록 ‘경매 진행 방법 변경’이 추진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다음 달 1일 저녁 경매부터 경매사가 경매 과정 중 경매 현황과 응찰 정보 등을 볼 수 있는 노트북에서 ‘응찰자 숨기기’를 결정, 이 내용을 골자로 한 ‘청과부류 경매 진행 방법 개선 조치 명령’을 최근 각 도매시장법인과 농협가락공판장에 통보했다. 

서울시공사는 경매 과정에서의 공정성·투명성 향상을 통한 출하자와 중도매인 보호, 경매시스템 운영방법 개선을 통한 편중 낙찰 등의 의혹 해소에 따른 거래 신뢰도 향상이라는 취지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 또 지난해 말 경매사 노트북에서 응찰자를 숨기고 경매를 진행하자는 요구(민원)가 들어왔고, 지난 6월 열린 시장관리운영위에서도 출하자 보호와 공정한 경매 참여 등을 위해 조속히 경매 방법을 개선하라는 주문이 있었다는 점도 내세웠다. 

그러나 시장 유통인들은 이는 오히려 농산물 거래 특성을 무시하고 농산물 수취가 제고에도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가락시장 5대 청과 도매시장법인(서울·중앙·동화·한국·대아청과)과 농협경제지주 가락공판장은 최근 서울시공사에 ‘청과부류 경매 진행 방법 개선 조치 명령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도매법인들은 경매사가 중도매인들의 매입 성향이나 구매·분산 능력, 미수금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중도매인들의 오입력 등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응찰자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중도매인 등 응찰자가 응찰기를 잘못 누르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경매사 노트북에서 응찰자를 가리게 되면 중도매인 요청에 따른 재경매가 빈번하게 발생, 결국 경매 지연 등으로 경매 신속성이 저해되고 출하자에게 적정 가격을 제공해야 한다는 농안법 입법 취지도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응찰자 숨기기가 시행되는 경우 경매사 개입 여지가 현저하게 줄어들게 돼 중매인 등 응찰자 간 담합 가능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서울시공사 결정에 해당 당사자인 경매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시장 내 청과부류 경매사들은 최근 서울시공사 결정에 반대한다는 연명부를 돌려, 관련 사유서를 공사에 제출했다. 경매사들은 응찰자 숨기기가 농산물 주 거래제도인 경매제 순기능을 위축시킨다고 보며 강력히 대응할 태세다.

가락시장의 한 경매사는 “경매사들은 경매 이외에도 경매 전 재고 파악부터 물건 들어온 상황, 상품성, 소비량 예측, 중도매인 발주량, 지난 가격과 앞으로 가격 전망 등 여러 유통 동향을 파악하고 경매에 임한다”며 “그런데 경매 과정에서 응찰자를 지우라는 건 우리에게 단순히 응찰하면 노트북 엔터만 치라는 것이다. 이는 도매시장의 주요 기능인 수집과 분산 주체 간 경쟁이라는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을 모르는 처사이자 대한민국 농산물 유통 근간인 경매제를 위축시키는 사태로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경매사는 “지난 20년간 경매사 역할에 자부심을 가졌는데 서울시공사가 마치 우리가 공정한 경매를 저해한 것 마냥 치부해 회의감이 든다”며 “새벽에 경매 호창이 울리는 경매 현장은 얼마나 와서 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럴 일은 없지만 공사 말처럼 만에 하나 경매사와 중도매인 간 담합이 있다면 오히려 응찰자 이름을 가리면 담합은 더 교묘하게 발생할 수 있다”며 “중도매인 카르텔이 만연한 상황에 투명성을 강조하려면 응찰자 이름을 더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시공사가 이번 경매 방법 변경을 위해 내세운 ‘지난 6월 시장관리운영위에서 변경 주문이 있었다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시 회의 참석자 전언과 회의록을 보면 도매법인 대표는 물론 서울시공사가 ‘중도매인 보호’라는 이번 응찰자 삭제 변경 취지로 내세운 주체자인 중도매인 대표들까지 나서서 ‘경매장에 카메라가 수시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과 ‘중도매인이 응찰기를 잘못 누르거나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 등을 들며 ‘응찰자 숨기기를 유통인들이 굉장히 반대하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단 한 명의 전문가 위원만이 응찰자 숨기기를 찬성했고, 이에 어떤 진척된 내용이 없었는데 서울시공사가 ‘시장관리운영위에서 조속한 개선 주문이 있었다’고 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경욱·김관태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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