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성 커지는 법안 비용 추계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농정 과제 법안들이 입법화되려면 보다 면밀한 비용(예산) 추계가 담보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농업 분야의 경우 새로운 사업이나 정책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이에 부응하는 예산 증가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실제는 전체 사업 예산을 그대로 둔 채 기존의 사업 예산을 들어내는 식의 논의 구조로 인해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 당국의 권한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농업 법안의 비용 추계가 부실하다는 점은 재정 당국의 벽을 넘어서기 힘겨운 구조를 ‘고질화’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주요 법안의 비용 추계 내용을 살펴봤다.


예산 부처 권한 따라 입법 ‘좌지우지’

대통령 공약 과일간식 사업
기재부, 원안보다 예산 축소
일부 법안 예산 수립 이유로
진척 안 되는 경우도 있어
중요 정책 도입취지 못 살리는
‘왜곡·축소’ 사례도 주시해야



◇‘국회 위에 기재부’

“국회 위에 기재부(기획재정부)가 있다”는 소리를 국회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농정 전반에 미칠 영향력이 큰 법안일수록 상당한 예산이 수반될 가능성이 있는데, 입법기관인 국회가 아니라 예산 부처의 권한에 따라 입법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새로운 사업이나 정책이 시행된다고 하면 그에 맞는 예산이 추가 확보돼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실제는 전체 사업 예산에서 어떤 것을 들어내느냐의 문제 때문에 법안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재정 당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국회 위에 기재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회의 다른 관계자는 “국회예산정책처가 비용 추계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해당 부처를 통해 관련 자료나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당국의 의도가 반영될 여지가 있다”면서 “예산정책처가 감당하는 업무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비용 추계가 부실한 측면은 정부에 보다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을 지낸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4·15총선’에 앞서 진행한 한국농어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농업계가 재정 당국의 대응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조언을 전했다.

신정훈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께서 한 마디 언급한 부분이 과일간식 사업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공약임에도 기재부는 원안보다 예산을 축소 반영했다. 도입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산 수립을 이유로 중요한 농정 정책들이 ‘왜곡·축소’되는 사례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사례는 앞선 20대 국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농업 분야에서는 대통령 공약인 공익직불제 추진 과정이 대표적이다.

2018년 11월 공익직불제 도입 법안이 발의된 이후 국회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기재부가 예산 확보에 난색을 표하면서 관련 논의는 몇 개월째 표류했다. 2019년 1월 농해수위 여야 간사들이 2조4000억~3조원 확보에 합의했다는 소식만 전해졌을 뿐 아무 것도 확정된 건 없었다. ‘기재부의 1조8000억원’ 입장이 변화했는지 여부에 온통 관심이 쏠렸다. 논의 자체가 예산 확보 쪽에 맞춰지면서 공익직불제의 세부 내용과 개선 점 등의 사안을 공론화할 수 없는 여건이 조성됐고, 결국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된 공익직불제(농업소득보전법 전부개정안)는 우여곡절 끝에 20대 국회 막바지에 처리됐다.  

신정훈 의원은 “농정 전환을 위한 주요 정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 키를 쥐고 있는 ‘컨트롤타워’가 재정 당국이었다는 부분을 국정운영 경험을 통해 다시금 절감했다. 재정 당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농업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농업계의 대응 전략도 이런 측면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6건 발의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비용 추계 ‘전무’

‘농민수당’은 최대 3조 추산
재정 확보 방안 불투명 ‘우려’

‘공익직불제’ 5년 간 ‘예산 동결’
20대 때 정해 논란 가능성


◇주요 정책별 예산 추계는

▲기초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주요 농산물의 가격이 최저(또는 기준)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그 차액을 지급하는 내용의 기초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를 도입하는 법안(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1대 국회 들어 한 달 새 6건이나 발의됐다. 일부 지자체가 시행 중인 이 제도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 것이 법안의 골자다. 이 사안은 농민 단체들이 총선을 앞두고 농정공약으로 요구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련 법안의 비용 추계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안의 비용 추계를 담당하는 국회예산정책처가 관련 예외 규정에 따라 “대상 품목, 적용관리가격 등을 파악할 수 없어 추가 재정소요액을 추정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밝히고 있어서다. 이 법안은 앞선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는데, 당시에도 “대상 품목, 지원 규모, 기준가격 등의 세부사항이 정해지지 않아 비용 추계 등이 어렵다”는 똑같은 이유로 비용 추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 재정 당국이 재정 문제를, 농정 당국이 쏠림 품목의 과잉 생산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해 법안 처리가 좌절됐다. 21대 국회도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제기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한 예산 추계는 일부에서 제기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전농은 7개 품목의 수급품목을 중심으로 자체 추산한 결과 3000억원의 기금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을 정부 당국에 전달한 바 있다. 또한 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 관계자들이 사회부조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농민수당=‘농민수당’과 관련한 법안도 ‘농어업인 공익수당지원법안’, ‘농업인 기초연금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 ‘농어업인 기초연금법안’ 등의 이름으로 발의된 상황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모든 농민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공익수당지원법안은 약 3조원, 농가당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법안(농업인 기초연금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은 1조2000억원 소요될 것으로 각각 분석했다. 농민 기준일 경우 250만명, 농가 기준 100만호 등을 연 120만원 지급액으로 곱한 금액이다. 농어업에 10년 이상 종사한 65세 이상 농어업인들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법안은 비용 추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1조원 미만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담 비율 ‘1대1’ 매칭일 경우 최대 3조원 비용은 각각 1조5000억원씩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이처럼 상당한 재정 소요가 예상되고 있는데, 재정 확보 방안이 불투명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것이다. 고려 지점이 많은 법안일수록 논의가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어 입법화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공익직불제 예산 확대=지난 7월 8일 더불어민주당 농어민위원회가 주관한 한 토론회에서 박범수 농식품부 정책기획관은 “공익직불제 예산 2조4000억원을 (20대)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약속한 게 5년 동안 공익직불제 예산을 2조4000억원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 당국이 5년간 예산 동결 방침을 사전에 정한 것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에 따라 공익직불제 중 공익기능 이행에 따른 직불 지급 근거인 ‘선택형직불’의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농업계의 요구 반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현재 선택형직불의 구체적인 안 역시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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