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현장 요구 담은 법안 잇단 발의
비용추계 없인 실현 가능성 의문
지난 국회서도 번번이 좌절
발의단계부터 신중 검토를


기초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농민수당’ 등 농업계에서 요구한 정책 사안과 관련한 법안들이 21대 국회에서 입법화되려면 보다 현실적인 비용 추계 및 재원 확보 방안이 법안 발의 단계에서 선행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의원의 전문성과 비용 추계 책임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농업 현장의 요구를 담은 관련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21대 총선에 앞서 발표한 정당별 농정 공약, 개별 의원들의 지역구 공약, 농민 단체들의 요구안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돼 이를 이행하려는 취지에서 관련 법안의 발의로 나타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향후 농정 전반에 미칠 파급력이 작지 않은 법안임에도 비용 추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거나 재원 확보 방안 등이 부실해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 자칫 ‘생색내기’용 법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표적인 것들이 몇몇 있다. 주요 농산물의 가격이 최저(또는 기준)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그 차액을 지급하는 기초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를 도입하는 법안(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6~7월 한 달간 6건이나 각각 발의됐다. 이들 법안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일부 지자체가 시행 중인 해당 제도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과도 비슷해 분간하기 쉽지 않다. 

이들 법안의 또 다른 공통점은 비용 추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비용 추계가 허술하다는 지적을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비용 수반이 예상되는 법률안을 발의할 경우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를 첨부해야 한다. 다만 비용이 예상되더라도, △그 비용이 연평균 10억원 미만이거나 한시적인 경비로서 총 30억원 미만인 경우 또는 △의안의 내용이 선언적·권고적인 형식으로 규정돼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

최저가격보장제 도입 법안들 모두 비용 추계를 맡고 있는 예산정책처가 관련 근거의 예외 규정을 이유로 “대상 품목, 적용관리가격 등을 파악할 수 없어 추가 재정소요액을 추정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비용추계 미첨부 사유를 밝힘에 따라 비용 추계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비용 추계와 관련한 예외 규정에 대한 지적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선언적 형식의 모호한 법안 발의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비용 추계가 부재한 상태에서 법안 논의에 착수할 경우 앞선 20대 국회의 법안 심사 과정을 또다시 되풀이할 우려를 낳는다. 정보와 전문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세한 정부 당국에 유리한 논의 구조로 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재정 당국이 재정 문제를, 농정 당국이 쏠림 품목의 과잉생산 우려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혀 법안 처리가 좌절된 바 있다.  

재원 규모를 놓고 논란이 있는 ‘농민수당’과 관련한 법안도 이런 맥락에서 우려점이 있다. 21대 국회 들어 ‘농어업인 공익수당지원법안’, ‘농업인 기초연금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 ‘농어업인 기초연금법안’ 등의 이름으로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황. 일부 법안에 대해 단순 산술적 방식의 비용 추계가 나와 법안별 비교가 가능한 부분이 있지만, 쟁점인 재원 확보 방안이 담겨있지 않아 법안 논의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가장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모든 농민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공익수당지원법안의 경우 예산정책처는 약 3조원의 추가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최범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법안의 면면을 살펴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법안을 재활용하거나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법안 심사 및 공론화 여부, 나아가 국회 통과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면서 “총선 공약 이행을 위한 생색내기식 법안 발의보다는 비용 추계와 재정 확보 방안 등을 전제로 실현 가능성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 법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농민 단체도 정책 사안에 대한 소요 예산을 파악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정부나 국회에 비해 정보나 전문성, 역량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면서 “국회의원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예산정책처의 비용 추계가 가능할 수 있도록 법안 발의 단계에서 법안 내용을 구체화하고, 비용 추계와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국회 차원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관련기사 3면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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