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조영규 기자]

▲ 김신길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왼쪽), 이용범 원광대 석좌교수(오른쪽)

“북한은 북방시장 진출 교두보…‘자재+기술’ 패키지 형태 지원을”

2018년 말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진행됐다. 남과 북의 물리적 통로를 잇는 첫 발이다. 이를 전후해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도 활동반경을 넓히는 중이다. 3차례의 회의를 거치면서, 신북방정책의 전략과 중점과제를 내놓고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모습이다. 한반도에서 북방까지 가는 과정의 첫 단추인 남북농업협력과 함께, 북방을 거점으로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꾸리는 데 우리나라 임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본보는 ‘한반도를 넘어 북방으로’ 가는 과정에서 농기계·자재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은 충남 천안의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대담 : 김신길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이용범 원광대 석좌교수
진행 : 서상현 한국농어민신문 부국장


김신길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평양·신의주 등에 농기계단지 조성
현지 맞춤형 제품 생산 계획
성공모델 만들면 북방 진출 용이할것
‘산·학·연·정’ 협의체부터 구성
농업 진출 콘트롤타워 역할하길

이용범 원광대 석좌교수
북한, 채소·과수 등 밭작물 고전
하우스 등 시설자재 절대 부족
터키·중국 저가공세 따라가면 ‘낭패’
기술지원·사후관리 함께 이뤄져야
남북관계 급변상황 미리 준비를


서상현(이하 서)=농기계·자재와 시설원예를 포함한 농산업계의 국내시장이 침체돼 있다. 그래서 국내시장 활로를 수출로 풀어야 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고, 북방과도 경제협력을 모색 중이어서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북관계에 따라 남북농업 교류 얘기가 나올텐데, 남북농업협력사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용범(이하 이)=지금 북한 식량문제는 예전보다 좋아지긴 했다. 벼와 옥수수는 450만톤 가까이, 감자와 고구마는 200만톤 정도 생산된다. 급한 불은 사실 꺼진 상태긴 하지만 취약계층은 여전히 어렵다. 때문에 먹거리를 제공해야 하고, 생산성을 많이 끌어올리지 않는 한 쉽지 않다. 이처럼 북한의 전체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농기계·자재다. 지금 북한에서 가장 어려운 쪽이 농기계·자재이기도 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과학농업과 온실, 버섯·과수·축산 기계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도 맞물린다. 이 때 북한의 농업상황도 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이 식량작물에 집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채소·과수와 같은 작물들이 취약한 점, 논에 비해 밭농사는 거의 무방비 상태라는 점 등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농기자재업계가 북한과의 농업협력 준비를 해야 한다.

서=농기계업계에서 바라보는 남북농업협력도 궁금하다. 단순히 지원만 했다가는 또 퍼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김신길(이하 김)=남북농업협력사업은 과거처럼 퍼주기식 지원이어선 안된다고 본다. 속담에도 있듯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농업시스템에서 ‘물고기 잡는 법’이란 북한에 적합한 농기계·자재의 개발, 보급이다. 이를 위해서 농기계조합에서는 북한에 농기계산업단지를 조성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평양이나 신의주와 같이 공업화가 돼 있는 도시에 농기계산업단지를 만들어서 남한에 있는 선진화된 농기계를 현지에서 직접 조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원가가 절감될 뿐만 아니라, 현지에 맞는 농기계 생산도 수월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 더 한다면 북한 현지에서 농기계를 시험을 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운영해야 한다. 이용범 교수님도 말씀했듯 북한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밭농업 비중이 더 많다. 밭농업이 65%, 수도작이 35%로 6대 4로 반대다. 따라서 테스트베드를 활용, 밭농업에 맞는 기계화도 추진해야 한다.

서=시설원예분야에서도 북한 현지에 맞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북한은 주곡이 어느 정도 안정화 돼 가고 있다 보니까 다음 단계인 채소나 과일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과일은 대규모 협동농장에서 시작한 반면 채소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채소는 노지 생산기간이 대단히 짧다. 봄채소는 양배추와 시금치밖에 없고, 고랭지 채소는 해 본적이 없다. 가을남새 즉 가을채소 역시 재배기간이 짧다. 옥수수를 심고 남은 짧은 시간에 생산하다 보니까 배추나 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태에서 먹게 된다. 근래에 와서 김 위원장이 직접 얘기하는 것이 남새온실이다. 평양 인근 비닐하우스가 1000㏊ 밖에 안된다. 북한의 인구 구성을 봐서는 2만㏊는 돼야 할 것이다. 채소를 키울 온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비닐하우스 농작물의 80%가 배추다.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구조다. 우리는 배추를 하우스에서 농사짓지 않는다. 그래서 신선한 채소를 다양하게 공급하는 체계를 위해서는 시설이 많이 필요하다.

서=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2018년 6월에 중점과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12번째 과제가 농업분야다. 북한과 함께 북방에도 농산업계의 진출이 예측된다.

김=북한에 농기자재를 정착시키는 것이 먼저다. 중국 농기계가 많이 들어가 있고, 북한주민들도 중국농기계에 익숙해져 있다. 남북경협 물꼬가 트이면 일본도 북한 시장을 노릴 것이란 염려가 있다.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북한은 우리나라와 생활관습이 같고 언어도 같고 또 영농방법과 영농시기도 비슷하기 때문에 전략을 잘 세우면 북한 시장 접근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한에서 농업기계화가 성공하면 그 모델을 그대로 가지고 북방지역으로 갈 수 있다. 북방 국가의 지도자들이 우리의 선진 기술을 기초로 북방국가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점인 식량 자급자족을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려는 의지가 높다. 맞춤형 농기자재를 진출시켜서 우리의 농기자재가 북방국가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북방에서 우리나라 시설원예에 관심이 많다. 이곳은 북한처럼 파종시기와 수확시기가 짧고 저장·유통시설도 부족하다. 이것을 우리나라 기술로 해결해보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북방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해서 우리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

이=중앙아시아를 비롯한 북방지역 시설의 문제는 우리가 원할만한 기준의 시설들이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을 다니면서 본 온실과 자신의 농장에 지어진 온실이 다르다고 얘기한다. 저가의 시설을 지어놓고 기술지원도 안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시설자재를 팔면 AS(사후관리)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최소한 그들이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포함한 컨설팅이 필요하다. 이것이 전혀 안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시설은 ‘아니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틈으로 터키가 들어오고 있다. 터키는 시설과 인력을 같이 지원하고 있다. 자칫하다간 이 시장도 터키에 다 뺏긴다고 봐야 한다. 이를 방지하려면 시설자재만 달랑 주는 것이 아니라 시설자재에 기술까지 더해서 ‘패키지’ 형태로 지원해줘야 한다. 이것이 해결돼야 또 다른 농기자재가 들어갈 수가 있다.

서=이사장님은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산하 농업특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방으로의 수출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전략이 있다면 무엇일까.

김=2017년 CIS국가 특히 우즈베키스탄에 온실 및 자재를 6000만달러 정도 수출했고 2018년 3/4분기까지 4000만달러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현장을 보면 터키나 중국이 저가공세를 펴고 있고, 우리도 밀려날 수 없으니 값싼 자재로 저가공세에 참여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합 차원에서 상대국 정부와 특별한 채널을 이용해서 품질이 유지되면서 가격도 보장을 받는 정상적인 거래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농업특별위원회에도 현지 맞춤형 온실을 개발하고 개발된 규격으로 검수를 할 수 있도록 제안을 했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대통령의 지시없이는 함구령을 내리고 있어 아직 긍정적인 대답을 얻지 못한 실정이긴 하다. 그럼에도, 2019년에 우즈베키스탄의 농업전문 박람회에 참가하는 등 우즈베키스탄과 협력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서=북한을 넘어 북방으로 진출해 북방경제공동체를 구성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비전 중 하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농기자재 등 농산업계는 물론 정부, 학계 등 각계의 역할이 있을텐데 각계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김=북방경제공동체란 청사진을 완성하기 위해선 농기자재업계나 학계, 정계, 연구기관 등이 ‘산·학·연·정’ 협의체를 구성해 방향을 정하고 정부 예산도 거기에 맞게 수립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추진하면 틀림없이 우리 시장이 될 것 같다. 이것을 각자 계획만 가지고 각자 추진하니까 어려움이 있지 않은가. 산·학·연·정이 정기적으로 만나 북방경제협력이 어떻게 추진돼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그에 따른 과제를 토론하면 앞으로 북방지역에 농업이 진출하는데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하지 않겠는가.

이=같은 생각이다. 특히 농기자재를 중심으로 한 북한·북방과 농업협력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농촌진흥청이 뒷받침해서 컨설팅팀을 운영하는 방안이다. 컨설팅팀에는 작물을 다루는 팀도 있고 농기계 다루는 팀도 있고 스마트팜을 다루는 팀도 있어야 될 것이다. 이들이 한 팀으로 이뤄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존의 인식을 한국 온실이나 한국 농기자재는 안심하고 써도 된다는 인식으로 바꿔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 가서 보면 기가 막히게 좋은데 우리는 왜 안되느냐는 현실적인 고민을 풀어줘야 한다.

서=북방경제협력을 농민들에게 설명하고 함께 동참하자는 의미에서 남북농업협력이 왜 중요한지 말씀 부탁드린다.

김=한국농업이 선진화됐다는 점을 자랑하고 싶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가 개발한 스마트폰과 반도체칩은 세계 일류다. 이에 못지않게 한국의 농업기술도 세계 일류라고 한다. 세계 일류인데 일류만큼 써먹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일례로 우리나라 배 맛이 세계에서 제일 좋다. 우리나라 딸기 맛이 세계 최고다. 우리나라 영농기술이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이 안에는 농기계도 있고 농자재도 있고 시설원예도 있다. 우리나라의 기술을 앞세워 산·학·연·정의 힘으로 북한이나 북방쪽으로 진출해나간다면 우리 앞에 블루오션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이=100% 맞는 말이다. 북한을 향한 유엔제재와 미국제재가 동시에 가해지다 보니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최근 분위기를 봤을 때 뭔가 조금씩 풀려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어느 정도 선에서 제재부분도 어느 정도 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아니더라도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교류가 이뤄질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농민단체가 그간의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북한 농민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 본다. 그것이 길어지면 5년이 되겠지만 그 안에 3년 내로 다 이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사이에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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