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조영규 기자]


“신북방정책 시작점은 ‘농업협력’…농기자재가 디딤돌 될 것”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가 ‘신경제지도’다. 우리나라 경제지도를 확장한다는 의미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통해 한반도를 하나의 시장으로 재편하는 것을 중심으로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을 각각 추진, 한반도가 동북아지역 경제협력의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청사진에서 농산업계는 ‘신북방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이 구현되려면 남북경제협력이 선행돼야 하고, 남북농업협력이 그 디딤돌이 될 것이란 전망에서, 디딤돌의 첫 번째 ‘돌’이 농기계·자재라는 판단이다. 새해를 맞아 한반도를 넘어 북방으로 향하는 길에 농기자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봤다.


●정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경제통일 기반 구축 뼈대
북방경제공동체 마련 의지
“남북경제협력 시작은 농업”
농산업계도 기대감 고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통일부의 핵심 국정과제다. ‘한반도를 남과 북이란 두 개의 시장이 아닌 하나의 시장협력을 지향함으로써 경제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뼈대다. 홍순직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경제는 분단과 남북관계 불안정으로 인해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통로가 막혀있는 ‘섬나라 경제’나 다름이 없다”고 설명했다. 홍 연구원은 “그 탈출구와 해법이 바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통한 ‘북한 특수’ 개발”이라며 “남북경협 활성화로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북상시켜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추진 배경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완성하려면 남북경제협력은 필수다.

정부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연장선으로서, 북방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러시아, 중국(동북3성), 카자흐스탄 등 13개 국가와 협력을 강화, 한반도 평화정착 기반을 구축하자는 목적에서, 2017년 8월 대통력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출범했다. 한반도가 북방경제공동체의 출발점이라고 볼 때 남북경제협력은 북방경제공동체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최근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경제지도’를 추진하기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남북이 남북철도 연결을 위해 현장조사에 돌입한 것도 그 중 하나이며, 정부가 ‘경제지도’를 넓혀가는 속도에 맞춰 남북경제협력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농업계는 그간 남북경제협력의 시작이 남북농업협력이었다는 점에서 남북농업협력 향방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남북농업협력 당시 농기계·자재가 가장 먼저 북한에 지원됐던 만큼 농산업계가 보는 관심도 뜨겁다. 물론 현재 대북 제재 국면에선 국산 농기자재 반출이 어렵다. 그럼에도, 제재가 완화 또는 해제될 때를 대비한 농산업계의 준비도 함께 요구되고 있다.

이중용 서울대 교수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에 농기자재산업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남북 개별농업정책에 이어 한반도통합 농업정책, 동북아통합 농업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지금 현재 남북농업협력이 이뤄지기 어렵겠지만 미래를 위한 어떻게 남북농업협력을 어떻게 할지 기술적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통일농수산사업단이 운영한 남북공동영농사업 중 북한농기계 성능 개선을 위해 남북이 함께 농기계 작업기를 살펴보고 있다.

●북한농업에 변화 바람

시장화 진전 따라 농작물 다양화
농기계·농업용 공구 수입 늘어


남북농업협력 과정에서 농기자재의 역할을 점치기 위해선 북한의 농업상황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 시선집중 GSnJ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부문에 새로운 경제관리 방법이 도입됐다는 점이다. 시장화 진전에 따라 협동농장이 곡물생산 위주에서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형태로 전환되고 있고, 다수확 곡물 종자와 채소 종자 수입이 늘고 있으며, 농기계·농업용 공구 수입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 이 보고서는 트랙터 수입액이 2010년 130만 달러에서 2013~2015년 연평균 210만달러로 증가했다는 점, 최근 북한이 금성뜨락또르(트랙터) 공장에서 천리마 840이라는 80마력급 신형 트랙터를 개발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트랙터 수는 5만9010대로, 2012년 5만7626대보다 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보고서엔 비료, 농약, 비닐박막, 농기계 연료공급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권태진 GS&J 북한·동북아 연구소 원장은 “농민들의 사적 영농활동이 증가하고 있는데다, 협동농장의 농자재 수요가 증가하면서 농자재 시장 유통물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대부분 농자재는 북한 내 생산이 제한적이어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농자재가 공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하나 주목할 사안은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경제개발 5개년 전략’(2016~2020)이다. 이 전략에 농업부문의 방향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권태진 원장의 의견.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과학농사를 통해 성과를 달성’, ‘우량 품종 육성 및 종자생산’, ‘종합적 기계화를 통해 기계화 비중 60~79% 수준으로 향상’, ‘협동농장의 농기계 가동률 향상과 영농공정의 기계화 확대’ 등이 그것이다. 북한의 변화에 비춰볼 때 국산 농기자재의 활용도 높다는 해석이다.


●농기자재 대북지원 어떻게

기계화·과학영농 뒷받침
복합비료·칼슘 지원 등 필요

남북농업기계교류협력위 발족
농기자재 산업단지 추진
노후화된 농기계 개선 등 검토


▲농기자재 대북지원 이유는=북한에 농기자재가 지원돼야 하는 이유로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대비하기 위함이란 주장이다. 북한의 개혁·개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 ‘농업 생산성 저하’가 우려되며, 농기자재를 통해 농업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백정민 통일농수산사업단 사무총장은 “북한이 특구를 중심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면 특구 주변의 농업인구가 산업인구로 바뀔 것이고, 결국 농업인력 감소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북한 농업의 기계화와 과학영농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 사무총장은 “우리나라도 산업화 과정에서 대거 농촌인구가 도시로 유입됐는데 이 때 품종개량과 비료·농약 증산, 영농기술 개발 등이 추진돼 농업 생산성이 향상됐다”며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농산업계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영농방식을 현대화하는 데도 국산 농기자재가 기여했다는 판단도 더했다. 2018년 11월 28일, 6년만에 북한에 다녀왔다는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농기계가 북한에 들어가면서 북한 농법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말로만 북한의 농업현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국산 농기계를 현지에 투입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벼 밀식재배 위주였던 북한이 소식재배로 영농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라는 강 사무총장은 “여전히 식량난을 호소하고 있는 북한에 필요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현해남 제주대 교수는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비료’를 강조했다. 현 교수는 “북한에서 실제 필요로 하는 비료는 100만톤 가량 예상된다”며 “농업 생산성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북한 연구원들을 만났을 때 복합비료와 칼슘, 유황비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생산성 향상에 진짜 필요한 비료가 지원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농기자재 대북지원 움직임은=농기자재 대북지원과 관련해서는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이 ‘농기자재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2018년 9월 ‘남북 농업기계 교류협력위원회’를 발족하면서 농산업의 남북교류 협력을 준비하고 있는 농기계조합의 김신길 이사장은 “평양, 신의주 등 최적의 지역을 선택해 농기자재 공단을 조성하고, 교육센터 건립, 농기계 조작교육과 종합영농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며 “우리나라의 농기자재 시장 규모와 똑같은 또 하나의 새로운 농기자재 시장을 북한에 열 것”이라고 피력했다.

‘남북 농업기계 교류협력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강대식 (주)그린맥스 대표는 북한에 ‘한국 농기계 생산공단’을 설립할 것을 요구하면서 중소기업의 북한 진출을 위한 지원정책을 제안했다. 단독으로 진출하는 방법, 트랙터 대기업과 작업기 중소기업이 함께 진출하는 방법, 중소기업과 중소기업이 컨소시엄을 통해 진출하는 방법 등 상황별로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강영식 사무총장은 “40~50년이 넘은 북한의 노후화된 농기계를 개선해주는 프로그램을 북에서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고, 백정민 사무총장은 “북한도 스마트팜을 비롯해 농업분야에 첨단기술 도입을 원하고 있어 첨단 농기자재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외에 비료지원방식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지하자원과 교환하는 방법이 제안된다. 현해남 교수는 “북한 땅은 ‘북중지괴’이고, 남한 땅은 ‘남중지괴’로 임진강에서 만난 땅이어서 두 땅의 지하자원이 다르다”며 “북한은 반도체 원료인 희토류 매장량(미국 지질조사국)이 2011년에 세계 2위로 발표됐고, 인산비료 원료인 인회석도 함경남도와 평안도에 약 1억5000만톤이 있다는 조사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중국에 이들 지하자원을 수출해서 먹고 사는데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나라와 물물교환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것이 개인적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통일농업 거버넌스 구축부터
“남북농업협력 이끌어 갈 컨트롤타워 만들어야”

꾸준한 교류로 북한 신뢰 확보
남북공동 농업개발모형 마련을


농기자재를 필두로 한 남북농업협력이 남북경제협력을 밀고 나가는 힘이 되려면,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컸다. 백정민 사무총장은 “농업계 전체가 북한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뭉쳐서 농민단체는 물론 농산업계, 학계, 언론계가 모두 참여하는 ‘통일농업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남북관계에서 농업의 역할을 반드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 사무총장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실제 진전이 있었던 남북협력은 농업분야였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에서 농업계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용범 원광대 석좌교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북한팀이 있고 월드비전에도 북한 전문그룹이 있고, 학계에도 북한연구자들이 있으니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남북농업협력을 끌어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참을성’도 함께 요구했다. ‘참을성’은 곧 북한과의 ‘신뢰’를 쌓기 위함이다. 월드비전과 함께 북한 씨감자 생산지원에 나섰던 이 교수는 “2000년 북한에 씨감자 생산을 위한 활동에 나선 뒤 10여년이 지났을 때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며 “10여년 간 북한과 교류한 결과 신뢰를 쌓을 수 있게 됐고, 이것이 ‘월드비전이 한다면 할 것’이란 인식을 북한에 심어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농기자재를 북한에 지원한다고 해도 그들이 구매력이 없다면 사용하기 쉽지 않다”며 “신뢰를 토대로 한 구매력이 생길 때까지 기반을 닦아준다는 개념에서 협력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영식 사무총장은 보다 큰 그림을 꺼냈다. “한반도농업개발기구나 한반도농업발전위원회 같은 공동 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곳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은 물론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농업개발모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과 함께 강 사무총장은 “앞으로는 한반도농어촌공사와 한반도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이처럼 농업 전후방산업의 남북 공동기구를 만들어서 지금부터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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