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지금 청와대 앞길에는 국민의 먹거리, 농업농촌 적폐청산과 대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농성단이 10일부터 노숙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시민농성단은 대통령의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올 때 까지 단식을 계속하겠다면서 “송장 칠 각오를 하라”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대통령의 약속대로 농업 적폐 청산과 농정 대개혁을 직접 챙기란 것이다.

이번 농성은 지난 봄 부터 벼른 끝에 4명의 농민, 시민운동가들의 결사로 시작됐다. 시민농성단의 대표인 진헌극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연대 및 GMO반대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학교급식운동의 터줏대감이다. 유영훈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대위’ 위원장으로 유기농지를 훼손하는 4대강 사업에 맞서 40개월간 투쟁을 이끌었던 이다. 채성석 전 동군산농협 조합장은 농업경영인이면서 농민운동가로 일선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에 비유한 ‘채바라’로 불리며 39세에 도내 최연소로 조합장이 됐던 인물이다. 시민농성단의 총무인 김영규 GMO반대전국행동 조직위원장은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창림멤버로, 농업 회생의 골든타임이 흘러가는 현실을 지켜볼 수 없어서 친농연 정책기획실장을 그만두고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유영훈 이사장은 66세로 이 중에서 연장자다. 그는 단식에 임하면서 “헛된 단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농업 회생을 위한 골든타임이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단식이라도 해서 계기를 마련하고자 결심했다”라고 동기를 설명했다. 정치지형이 바뀌면 농업문제가 조금이라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문재인 정부의 농정부재에 허탈하고, 폭염에 타들어갔던 농심에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러워서다. 그래서 후배들이 “지금이 아니면 농업 회생의 골든타임이 다 지나간다”며 마지막 싸움을 모색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달려와 힘을 보탰던 것이다.

단식농성의 경험이 여러 번인 그다. 4대강 반대투쟁 때도 무기한 단식농성으로 맞섰다. 두물머리에서 그와 함께 했던 서규섭 당시 팔당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단식이 길어지자 단식농성이라는 극단적 저항 현장을 직접 보기는 처음인 마을 주민과 농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어요. 저녁 시간이면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찐빵을 들고 와서 몰래 몰래 먹으면서 기운내서 싸우라는 사람도 있고, 장어와 소주를 사가지고 와서 열흘 굶은 단식자 앞에 내놓고 먹고 싸우자는 말을 건네는 농민들도 있었어요. 이렇듯 순박한 농민들의 마음이 단식하는 유영훈 선생님에게는 큰 힘이 되었죠. 연대와 위로의 힘이 크다는 것은 알지만, 그러나 그 때는 50대였고...”

6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 탓일까? 집을 떠나 시내 길거리 비닐움막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단식농성을 버텨가는 게 힘겹다. 본인은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무리를 계속한 나머지 지병인 ‘이석증’이 도진 상태다. 이석증은 평형감각을 잃고 어지럼증과 구토 등의 증세가 반복된다. 농성단의 후배들이나 지지방문을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60대 후반의 그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 그리고 농정개혁 실종에 대한 분노와 이를 바로 잡으려는 결의가 현장을 감돈다. 방문자들은 어느 시점엔 한 명씩 쓰러질 것이 뻔한 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으로 연대를 다진다. 이 4명에게만 기약 없는 싸움의 십자가를 지울 것이 아니라 범 농업계와 시민사회 진영이 단식농성에 전면적으로 동참하자는 목소리도 높아간다. “농성 시작 전엔 열심히 만류하더니, 정작 시작하니까 가슴 아파하며 돕지 못해 안절부절인 분이 많습니다. 세상은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바꿉니다.” 김영규 총무의 말이다.

시민농성에 대한 지지는 확산되고 있다. 한살림, 행복중심, 두레생협 등 생협이 이름을 걸고 결합하고, 18일에는 시민농성단 첫 번째 촛불집회를 열었다. 21일 저녁 향린교회가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 지지 기도회’를 여는 등 종교계도 힘을 보태고 있다.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 국민행동, 국민행복농정연대, 농민의 길 등 연대체들은 20일 지지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에 정부의 대응이 관심사다. 19일 저녁에는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농성장을 찾아 “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 발표와 먹거리 및 농업계와의 면담을 성사시킬 테니 농성을 풀고 건강을 챙길 것”을 당부했다. 농성단은 가시적인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농성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민족의 축제인 평양 정상회담과 추석명절 연휴가 흘러가는 동안 청와 대 앞 시민성장에선 농민들이 밥을 굶고 있다. 이번 평양 회담에 정계, 재계, 노동계, 학계, 시민사회, 문화예술계, 청년 다 갔는데, 유독 농민만 쏙 빠졌다. 그동안 통일사업에 가장 앞장서 온 농민이기에 어이없는 일이다. 농민도 국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농민에 대한 홀대와 무시를 중단하고 농정대개혁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내 놓아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