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이어온 농업계 인사 무기한 단식농성 중단

▲ 시민사회 및 먹거리 진영이 가세한 ‘국민 먹거리 위기, 농업적폐 청산과 농정대개혁 촉구 국민농성단’이 8일 저녁 촛불문화제를 열고 장기 단식농성자의 단식 중단 발표와 함께 향후 활동계획 등을 밝혔다. 사진제공=국민농성단

농민단체 대표 릴레이 단식으로 전환

농업계 물론 시민사회단체 결집
지지 방문·국민 응원 등 쇄도
정부 '농업 홀대' 현실 알려

정치권 농특위 법안 통과 약속 
대통령 면담 성사도 기대 고조


농업적폐 청산과 농정대개혁 등 문재인 대통령의 농정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청와대 인근에서 진행된 무기한 단식농성이 29일째 접어든 지난 8일, 장기 농성자들이 단식농성을 풀었다. 건강을 우려한 주위의 권유가 계속돼서다. 농정 개혁의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된 농업계 인사 4명의 무기한 단식농성은 농업계 안팎의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정부의 ‘농정 홀대’ 현실을 대외에 알리는 한편 시민사회 및 먹거리 관련 단체들을 결집시켰다. 장기 농성은 이제 단체 대표자들의 릴레이 농성으로 이어진다. 짧지만은 않았던 29일간의 단식농성, 의미와 과제를 짚었다.

▲의미는=가을 초입이던 9월 10일 단식농성 돌입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농성자들이 내건 요구는 새롭고 놀라운 것들이 아니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설치,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 농업적폐 청산,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와 식량 문제를 직접 챙길 것 등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농정공약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독 농업 분야에서는 농정개혁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는 현실에다 5개월여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공백, 답보 수준의 농업 예산 편성 등 농업계의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리며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이들이 스스로 곡기를 끊는 결단을 내리게 됐다.

반응은 뜨거웠다. 농성장 방문을 비롯해 지지, 응원의 메시지가 SNS 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농업계 원로, 지식인, 시민사회와 먹거리 단체들까지 결집하는 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농성장은 그동안 농업계 전반에 퍼져있는 ‘농업 홀대’ 목소리를 결집하고 이를 분출하는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9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김영규 전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은 “이름 없는 시민들의 지지와 후원, 많은 관심과 격려가 있었기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하며, “현장에서의 ‘농정 홀대’에 대한 불만이 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이 지지와 참여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성과는=국정에서 외면 받고 있는 농정 현실과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농업 및 먹거리 환경을 대외에 알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초반 시민농성단 단장을 맡아 29일간 단식농성을 해낸 진헌극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공동대표는 “농민들이나 먹거리 진영은 현 정부의 ‘농정 홀대’에 당연히 분노를 나타냈고, 시민사회조차도 전반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서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줬다”며 “농과 먹거리와 관련한 의제들은 그간 국정에서 소홀하지 않았나에 대해 많은 이들과 인식을 함께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농성이 장기화되면서 정치권과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농성단과 함께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농특위 설치 법안 통과와 농정대개혁에 여야의 동참을 호소했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등이 농성장을 찾았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최재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도 농성단의 요구에 책임을 통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당 지도부들도 단식농성 해제를 권유하며, 연내 대통령 면담과 대국민 메시지, 농특위 설치 법안 통과 등을 약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단식농성 도중 건강이 악화된 유영훈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과 채성석 전 동군산농협 조합장이 불가피하게 단식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웅두 정의당 농민위원장, 한도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정택 인천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 등이 단식농성에 합류해 이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등 단단한 응집력을 보여준 점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과제는=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이개호 장관 등 여권 고위 인사들이 대통령과 면담 추진, 농특위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구두 약속을 한 상황이지만, 가시적인 결과물로 드러날지 여부는 시기와 함께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장기 농성자들이 단식농성 해제를 주저했던 이유 중 하나다. 최근 정부와 여권이 청와대 관계자와 함께 농업계의 대통령 면담 추진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며 성사 가능성이 짙다.

무기한 단식농성이 농정대개혁 촉구 등 분위기와 여건 조성을 위한 ‘마중물’ 역할이 컸다면, 앞으로는 농업계 민간 진영에서 농정대개혁을 위한 요구사항을 준비하는 등 세부적인 작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영규 전 실장은 “농성단이 한 것은 물꼬만 튼 것이고, 마중물을 부어서 길과 문을 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 면담이 성사된다면 이에 앞서 우리의 요구사항들을 잘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또한 농특위 구성을 준비해 개혁 의제를 잘 추려내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라고 말했다.

진헌극 대표도 “대통령 면담과 농특위 법안이 연내 제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 일정에 맞춰 사전에 필요한 부분들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이번 시간을 놓치면 문재인 정부 하에선 농정 개혁을 추진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어려워지기 때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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