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1년 농업정책 평가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한국농어민신문 등이 9일 문재인 정부의 출범 1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 1년 농업정책 평가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농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출범 1년을 맞은 문재인 정부의 농정에 대해 농업계는 “문재인 정부 개혁에 농정개혁은 없었다”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적폐청산, 남북관계 등 정권의 정체성이 도드라졌던 굵직한 성과에 비해 농정 성적표는 핵심 공약 이행은 제자리에, 그나마 추진 중인 정책도 이전 정부를 답습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게 농민단체와 농업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한국농어민신문, 한국농정신문은 9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문재인 정부 1년 농업정책 평가 토론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출범 1년을 맞아 농업계가 바라보는 농정 평가를 발표하고, 향후 과제 등을 모색했다.


#지난 1년, 농업계 평가는

농특위설치·농지법 개정 
농업회의소 운영 등
차별화 된 정책은 지지부진
“기존 사업만 연장” 실망감

100대 국정과제 수립 과정서 
핵심 농정공약 대폭 후퇴
처음부터 농업계 배제 의견도


▲핵심 공약은 ‘제자리’, 기존 정책만 ‘되풀이’=경실련과 농업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농정공약에 대해 핵심 공약 이행이 부진하고, 현재 추진 중인 정책도 기존 사업의 연장선에 있는 공약들이 많았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입장을 줄곧 피력했기에 농업계의 안타까움은 더 컸다.

경실련이 실시한 ‘문재인 정부 1년 농업정책 평가’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농산어촌 공약 총 64개 세부공약 중 완전이행은 2개, 부분이행 49개, 후퇴이행 1개, 미이행 11개, 판단 유보 1개로 평가됐다. 수치로만 놓고 본다면 공약 이행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중 상당 부분이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사업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이다.

임영환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은 “농업정책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와 차별화되는 것은 농어업특별위원회 설치, 농지법 개정 통한 경자유전원칙 확립, 공익형 직불제 도입, 지방분권형 농정개편 및 농업회의소 설치 운영 등이다”며 “이 같은 정책은 여전히 답보 상태이거나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농특위, 농업회의소 설치 등은 국회 입법 차원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야당의 반대 입장으로 장기간 계류 중이다.

임 위원은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농업 정책의 상당 부분은 기존 정부에서 추진하던 내용을 그대로 이어받아 추진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농정공약을 바꿔놓는다고 해도 일반 국민들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농정공약, ‘공염불’에 그쳤다=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논설위원은 농정 1년 평가에 대해 “문재인 정부 개혁에 농정개혁은 없었다”고 압축했다. 그러면서 “공약과 괴리된 농정방향”을 언급하며 날을 세웠다.

이 위원은 “대선공약은 농정의 목표와 방향을 경쟁과 효율에서 ‘농업·환경·먹거리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지속발전 가능한 농업’으로 바꾼다는 것이었지만, 지난해 7월 발표된 100대 국정과제는 6차산업, 스마트팜 같은 지난 정부들의 기업농 정책을 답습하거나 단기적 현안관리 차원의 사업 나열로 개혁의지가 실종됐다”고 평가했다.

농정공약이 정부 출범 이후 국정과제 수립 과정에서 대폭 후퇴됐다는 지적도 있다. 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농민의길 집행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농정을 3무정책(무관심, 무책임, 무대책)이라 비판하고, 농정의 철학과 기조를 바꾸겠다고 약속했으나 100대 국정이행과제에서는 이에 대한 공약이 대폭 후퇴했다”면서 “국정과제에는 핵심 공약이었던 직불제 중심의 농정 전환, 식량자급률 제고, 친환경학교급식 및 공공급식 확대, GMO 표시 강화 및 학교급식에서의 GMO 퇴출, 농협개혁에 대한 어떤 의지도 반영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좌장을 맡은 김호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도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 없이 곧바로 출범한 이후 국정과제를 수립하는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꾸려질 때 농민 단체가 포함되지 않았다”며 “당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이었던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만 들어가는 등 농업계가 처음부터 배제당한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여성농민에 대한 정책은 단 한 가지로, 그것도 여성농민들이 핵심적으로 요구했던 ‘여성농민 전담부서 설치’ 등의 내용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며 “성 평등한 정책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성 평등의 사각지대인 농어촌 지역의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이 없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농정 개혁, 왜 안 되나

주요 정치 이슈서 밀려나
입법·예산 등 세부조치 안돼
‘농업 홀대’ 되풀이

문 대통령이 농업에 관심 없어
‘직접 챙기겠다’ 약속도 외면

생산·경쟁력 제일주의 여전
농정관료 변화 없인 어려워


▲농업은 늘 ‘뒷전’이다=문재인 정부의 농정에 기대를 걸었던 농업계의 평가가 혹독한 이유 중의 하나는 ‘농업 홀대’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농업 분야가 중요 정치 이슈에 밀려나고, 입법과 예산 등의 관련 세부 조치로도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 농업정책 1년의 성과는 농촌 현장에서 농업인들의 피부에 와 닿는 개선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며 “거대한 담론 수준의 구상과 계획은 나와 있을 뿐 국회에서의 입법 및 예산 수립 등의 조치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데다 남북·북미정상회담 및 6·13지방선거와 같은 굵직한 정치 일정에 농업·농촌 관련 정책 이슈와 현안들이 계속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대통령의 관심도 없다=농업에 대한 관심 부족도 언급됐다. 심증식 한국농정신문 편집국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1년이 되도록 농업계 인사를 만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의 주요 연설에 농업은 없었다. 명절 때 흔히 하는 농산물 시장방문조차 나서지 않았다”면서 “대통령이 농업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 국장은 “대선 공약으로 농업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했으나 적어도 지난 1년간 그 말은 허언이었다. 대통령이 농업을 직접 챙긴다는 것은 딱 두 가지가 상징적 지표인데 바로 ‘관심’과 ‘예산’”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농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렸다”고 밝혔다.

▲농정 적폐인 구태 관료가 문제=농업계에선 농정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구태 관료세력의 폐단을 꼽아왔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언급들이 이어졌다.

이상길 논설위원은 “적폐의 원인으로 낡은 생산주의와 경쟁력 제일주의의 농정과 관료, 자본이 결합된 세력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며 “기존 생산주의 농정 생태계에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일부 새로운 세력이 진입했으나 개혁을 추동하지 못하고 기존 농정에 순치, 타협하다가 농정공백 사태로 이마저도 와해되고 관료가 주도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종서 사무총장도 “친환경농업 진영에서 대표적으로 요구하는 사안 중에는 정권이 바뀌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농정 관료가 변하지 않으면 농정 개혁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보탰다.


#앞으로 과제는

“대통령이 결단해야
농정개혁 동력 살아나”
농업 관계자 한 목소리

민간 주도 농특위 설치
통일농업 등 기대감 고조
농정수장 공백 해소
여성농민에도 관심을


토론회에 참석한 농업계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농정 개혁을 서둘러 착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농정 개혁 추진을 위한 동력이 살아 있는 만큼 대통령 차원의 결단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상길 위원은 “정부와 사회의 엘리트 집단의 관심이 없는 만큼 대통령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농정 대전환을 위해 관료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꾸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심증식 국장도 “농정 개혁을 위해선 대통령이 농업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대통령이 밝히지 않는 한 농정개혁은 요원하다”고 밝혔다.

한민수 실장은 “앞으로의 4년이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훨씬 중요한 의의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한-미, 한-EU, 한-중 FTA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로 인한 관세 인하·철폐 효과가 본격화되는 시기가 바로 2020년대 초중반에 몰려 있고, 문재인 정부의 정권 말에 해당한다”며 “이를 비롯한 농정 개혁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발 빠른 대책 마련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임영환 농업개혁위원은 “문재인 정부는 답보 상태에 있는 정책들을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며 “과거 정책의 재탕·삼탕 또는 백화점식 나열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맞춰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올해는 쌀 목표가격이 설정되는 중요한 시점이고, 남북관계 개선으로 통일농업 여건도 긍정적으로 조성되고 있다”면서 “WTO나 FTA 등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말고 농정 개혁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영이 사무총장은 “전국의 여성농민들이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이제 정부가 어떻게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정의 주요한 책임자들의 공백 사태가 발생했다”며 “정부는 하루빨리 농정 공백 상황을 해결하고, 여성농민을 위한, 여성농민이 만들어가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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