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하나로클럽 계란 매대에 상품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자체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됐다는 안내를 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발길이 뜸해 계란 매대가 한산하다.

계란 살충제 파동으로 인해 계란과 닭고기 소비가 급감하고 있다. 산지가격이 급락하면서 소비지 가격도 하락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는 가금농가들은 정부가 조속히 사태를 진정시키고 정상화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연일 계란안전관리 대책을 내놓으면서 사육환경과 친환경인증 등 대대적인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계란 이어 닭고기까지 소비 감소…양계농가 신음
“근본대책 없이 농가 처벌에만 초점” 반발 목소리


◆계란·닭고기 소비 뚝
계란 살충제 파동으로 인한 소비자 불안감이 가금류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하나로클럽 계란 매대 앞은 한산했다. 매대 앞에는 진열된 계란이 정부의 살충제 성분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안내와 성적서가 적힌 홍보물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계란 매대를 지나는 소비자들은 홍보물을 읽어보기만 할뿐 계란을 구매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한 남성이 동물복지 인증 마크가 찍힌 방사유정란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가 집어든 방사유정란은 15개로 구성됐고, 가격은 1만2190원. 이는 일반 계란 4990원의 약 3배에 달했다. 그가 비싼 가격에도 방사유정란을 구매한 건 ‘안정성’ 때문이다. 손주들이 매일 계란 한 알씩을 먹고 있는데 계란 살충제 파동 이후 가격이 높더라도 안전한 계란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친환경인증 농가에서 생산한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기 때문에 동물복지 계란이 아니고서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계란 가격이 비싸더라도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동물복지 방사유정란을 구매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반 계란들이 안전하다는 정부 검사 결과가 나왔어도 한동안은 구매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계란 소비가 감소 추세를 보이자 국내 계란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대한양계협회의 산지 계란가격 발표를 살펴보면 계란 살충제 파동이 발생하기 전인 이달 11일에는 경기지역 특란 기준 한 알에 184원이었다. 하지만 계란 살충제 파동이 발생한 이후 18일 164원, 22일 144원 등으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산지 계란가격의 하락에 따라 소비자 계란 가격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1일 소비자 평균 가격(특란/30개)은 7592원으로 조사됐다. 계란 살충제 파동 이후 18일 7358원, 23일 7212원 등으로 연일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계란 살충제 파동이 닭고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론과 국회 등에서 산란 노계와 육계에 대한 안전성 문제 제기를 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닭고기 소비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닭고기 가격은 복 시즌 이후 소비 감소에 따라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이번 계란 살충제 파동으로 하락폭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 닭고기 업계의 설명이다.

계란 살충제 파동 이전인 12일 양계협회 산지육계가격(대닭/kg당)은 1600원이었지만 17일에는 1500원으로 떨어졌고, 24일에는 1000원까지 급락했다. 실제 유통 현장에서는 1kg당 800원 이하로 거래되는 곳도 있어 농가들이 사육 원가 이하의 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이 국내 계란 및 닭고기 소비 감소로 가격이 하락하자 일부 양계 사육 농가들이 정부에 양계산업 방치를 중단하고, 향후 소비자 신뢰도를 향상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내 양계(종계) 사육 농가들로 구성된 PS 친목회는 지난 23일 세종시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계란에서 시작된 소비자 불신이 닭고기까지 확대돼 불과 며칠사이에 극심한 소비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며 애로를 호소했다.

이들은 계란 안전성과 관련해 계란유통센터 설립을 통한 유통구조 개선, 계란 위생 및 안전성 검사 의무화 등을 정부에 줄곧 요구했지만, 개선된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또 정작 계란 살충제 파동이 발생하자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 마련보다는 농가 잘못으로 돌려 농가들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에 PS 친목회는 정부에 양계산물 전반에 걸친 유해물질 허용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과 계란유통 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연진희 종계 사육 농가는 “정부가 양계산업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며 “양심적으로 닭고기와 계란을 생산한 농가들이 피해보지 않도록 정부가 제도 개선에 힘써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신규진입농가 내년부터 동물복지 축사 의무화
공무원 퇴직 후 일정기간 인증기관 취업 제한

◆고강도 안전대책 추진 박차

농림축산식품부는 2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동물복지형 축산 확대, 이력추적제 도입, 친환경 인증제도 전면 개편 등을 핵심으로 한 세부적인 계란 안전관리 대책을 설명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축산환경의 근복적인 개선이 요구됨에 따라 신규 진입 농가는 내년부터 동물복지형 축사를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기존 축산농가 또한 EU 기준 사육밀도 의무화 계획을 2027년에서 2025년으로 앞당긴다. 2019년부터는 사육환경표시제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동물복지형 산란계 농장의 비중을 2017년 8%에서 2025년 30%까지 확대키로 했다. 

닭고기와 계란의 이력추적제는 2019년에 도입키로 했다. 잔류농약 검출 등 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역추적하는 동시에 소비자에 대한 정보 제공 강화를 위한 조치다. 특히 전국 일제 불시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나왔다. 금지약품을 사용해 위반한 농장은 형사고발 등 엄정 조치하고, 앞으로 산란 노계, 삼계탕용 닭고기 등 다른 축종도 일제검사를 실시키로 했다.

친환경 인증 제도는 전면 개편한다는 게 농식품부의 방침이다.
기존 케이지형 농장의 무항생제 정부 인증제도를 2020년부터는 민간 자율 인증제로 전환키로 했다. 그 대신 2018년 신규 친환경인증은 유기축산 등 동물복지형 농장으로 조건이 대폭 강화된다. 또한 친환경 인증 농가에 대한 농약 잔류검사가 연간 2회 이상 실시된다.

여기에 논란이 된 인증기관에 대해서는 전면 재평가를 통해 부실기관 퇴출과 유착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 농가가 동일 인증기관에서 3회 연속 인증을 신청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공무원이 퇴직 후 일정 기간 인증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지양키로 했다.

이외에도 산란계 농가의 인식 제고를 위해 위생·안전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고, 모든 축산농가가 정기적으로 안전교육을 이수하는 것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담당 공무원에 대해서도 인사 및 업무혁신을 단행해 대응 매뉴얼 부재, 문제의식 부족, 유착 등의 문제점에 대응키로 했다.


|산란계 진드기 방제법은    
계사 청소부터 꼼꼼히 해야

살충제만 뿌려서는 안돼
청결한 환경관리 필수
고압세척기로 구석구석 청소
실리카 이용해 코팅하면
최소 40주까지 발생 억제

▲독일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다단식 분무장치로 방제를 하고 있다.

양계 전문가들은 닭 진드기의 효과적인 방제를 위해선 무엇보다 예방을 강조했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 회장은 진드기 예방을 위해서는 올바른 방제법을 따르는 동시에 계사를 꼼꼼하게 청소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산란계 농가들이 닭 진드기가 발생하면 살충제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만, 계사 청소 등의 환경관리가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방제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윤종웅 회장은 산란계 출하 후 고압 세척기를 이용해 계사 내 덕트부터 사료통의 접힌 부분, 프레임까지 꼼꼼하게 청소할 것을 당부했다. 이후 실리카를 이용해 청소한 부위를 코팅해주면 최소 40주까지는 닭 진드기가 발생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홍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도 환경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홍길 소장은 농가들이 계사 내 구석구석 먼지만 제거하더라도 닭 진드기의 개채수를 줄여 산란율 저하를 조금이라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 관리와 동시에 올바른 살충제 사용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윤종웅 회장은 이번 계란 살충제 파동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약사시스템’을 꼽았다. 농가들이 살충제나 농약을 쉽게 사서 쓸 수 있는 시스템이 계란 살충제 파동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종웅 회장은 농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약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 약사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윤종웅 회장은 “이번 살충제 파동은 그동안 농가들이 살충제를 쉽게 사서 쉽게 쓰도록 한 점이 요인으로 작용했다”면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방제약품 사용이 이뤄지도록 약사시스템 개선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윤종웅 회장은 이 외에도 네덜란드에서 실행하고 있는 열풍기를 이용한 방제 방법도 소개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산란계 출하 후 48시간 동안 열풍기를 이용해 계사 내에 고온의 열기를 불어 넣어 닭 진드기를 방제하고 있다. 이 때 열기의 온도는 닭 진드기의 생존 온도인 56°C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산란계 농가들은 이 같은 방법을 알고는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다. 산란계 사육 특성 상 육계처럼 ‘올 인, 올 아웃’ 없이 연중 사육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에 농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진드기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방제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일선 산란계 사육 농가는 “대부분 산란계를 모두 출하하고 빈 계사를 대상으로 한 방제 방법만 있는데 산란계 사육 특성을 고려한 방제 방법도 마련돼야 한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방제 방법을 연구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병성·안형준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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