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고 있는 전통식품 수요와 달리 전통식품 제조업체들의 생산 여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다. 위생과 품질에 대한 높은 사회적 요구와 대기업 진출 등의 영향으로 전통식품 분야의 산업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 중소 업체들의 운신의 폭은 점점 위축되고 있는 양상이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선 국산 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해야 하는 부담과 더불어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갖춰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전통식품 업계의 생산 여건이 과연 안녕한지’를 물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한국농어민신문은 전통식품 업계가 처한 생산 기반의 현 주소를 3회 연재를 통해 들여다볼 계획이다. 첫 번째로 한국전통가공식품협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최근 자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조사 배경은
전통가공식품협회 회원사중
품질인증 획득한 103곳 참여

 

전통가공식품협회는 최근 회원사 830개 업체 중 전통식품 품질인증을 획득한 업체 380곳을 대상으로 전통식품 업계의 생산 여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중 103개 업체들이 설문조사에 응답해 약 27%의 참여율을 나타냈다.

103곳 모두 전통식품 품질인증을 획득한 업체인 가운데 이와 동시에 다른 위생 및 품질 인증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전통식품 품질인증 다음으로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이 57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지자체 인증 43곳, ISO인증 21곳, 유기가공인증 13곳, 6차산업인증 5곳, 유기농산물 인증 4곳, 경남추천상품 4곳, 식품명인인증 업체 3곳, KS인증업체 3곳, 친환경 인증 순의 분포를 보였다. 다시 말해 품질 및 위생 수준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들이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전통가공식품협회의 관계자는 “전통식품 산업 규모가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매출액이 증가하는 업체도 있지만, 기존 업체들이 보기엔 전반적으로 생산 기반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인식이 많다. 한 마디로 ‘안녕’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처럼 독자 생존이 어려운 중소 제조업체들의 생산 기반 실태와 더불어 이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이번 조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업체의 생산 여건은
절반 "매출액 변함 없거나 나빠져"

연 매출액 35억·종업원수 22명
'품질인증' 업체들이라 평균 높아
51곳은 "좋아졌다" 긍정적
자본력 갖춰 6차산업 진출 효과
중소규모 업체 사이서도 '편차'


▲여전히 영세한 사업 규모=이번 조사에서도 전통식품 업체들이 갖고 있는 영세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체의 경영 상황을 알 수 있는 생산 지표인 매출액과 종업원 규모를 살펴보면, 응답 업체들의 연 매출액은 평균 35.7억원, 종업원 숫자는 평균 22명이다. 기존 조사에 비해 평균값이 높게 나왔지만, 소규모 사업체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열악한 생산 기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조사에서 업체의 응답 빈도가 가장 많은 그룹은 ‘매출액 10억~50억원 미만’(36%, 37곳)과 ‘종업원 10명~50명 미만’(41%, 43곳). 하지만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업체들이 더 많았다. 매출액 10억원 미만인 업체가 40곳(‘5억~10억원 미만’ 17곳·‘1억~5억원 미만’ 17곳·‘1억원 미만’ 6곳)으로 전체의 39%에 해당됐으며, 종업원 규모 역시 10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체들이 47개(‘5명~10명 미만’ 28곳·‘5명 미만’ 19곳)로 집계돼 약 46%에 달했다.

이번 조사에서 평균값이 높게 나타난 이유로는 전통식품 품질인증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통식품 품질인증을 획득한 업체의 경우 김치 업체와 장류 업체들이 많은 경향을 띠고 있는데, 전통식품 분야에서 HACCP 시설 의무화 적용 등으로 인해 규모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품목들로 꼽히기 때문이다.

전통가공식품협회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HACCP 시설 의무화 적용 등에 따라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되는 김치 제조업체들의 여건이 업계의 평균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어 전체 평균 수치를 끌어올린 측면이 크다”며 “하지만 김치를 제외한 다른 품목들은 여전히 열악한 생산 여건 속에 놓여 있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사에 참여한 업체 중 가장 매출액 규모가 많은 100억원 이상 업체는 총 7곳인데, 이 중 4곳이 김치 제조업체로 나타났다. 이들 김치 업체들의 매출액 합계는 677억원으로, 업체당 평균 약 170억원에 달해 전체 평균 수치보다 5배나 높았다.

▲매출액 변화 체감도는 ‘글쎄’=이번 조사에서 전통식품 업계가 인식하는 생산 여건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다. 최근 5년간 매출액 변화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 업체 103개 중 52개 업체(50.5%)가 ‘변함없거나 오히려 나빠졌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부정적인 응답 중 ‘나빠졌다’는 업체 수는 23곳이며, ‘매우 나빠졌다’는 업체도 8곳이다.

반면 나머지 51개 업체들(49.5%)은 ‘많이 좋아졌거나 좋아졌다’고 답했다. 긍정적인 응답을 한 업체들의 특성을 보면 ‘농원’을 바탕으로 관광 및 체험을 겸하는 ‘6차 산업’ 형태가 많았고, 시설 증축 및 개선에 따른 새로운 가공제품 개발에 나선 업체들이 속했다.

이 대목은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고전적인 전통식품으로 대표되는 장류, 한과 등 업체들의 경영 여건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반면 자본력을 바탕으로 6차 산업화에 적극 뛰어들거나 신제품을 출시한 업체들의 수익성이 더욱 늘어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중소 규모의 전통식품 업체들 사이에서도 두 부류 간의 매출액 편차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산업 지형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한 업체는 “전통식품 소비가 명절 등 특수기에 일어나다보니 비수기에 체험 활동과 숙박 시설 이용 등을 활용하는 업체들의 경우 매출이 오르는 양상이지만, 반대로 일반적인 제조업체들의 거래처는 위생 요건 등의 조건을 갖춘 대기업 등에 밀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조사에 참여한 김치 업체는 “중국산 수입 김치로 인해 저가로 김치 시장을 운영하다보니 매출액은 늘고 있지만, 적자 누적에 따른 채산성은 악화되고 있다”며 “매출액보다는 얼마나 실수익을 내고 있고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지 여부가 중요한데, 중소 업체들의 생산 여건은 수치로 나타난 것보다 훨씬 열악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역경제 기여도는=이번 조사에서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업체의 영향력을 금액으로 평가하는 시도도 이뤄졌다. 매출액과 급여 등 인건비 지출액, 원료수매액 등 3가지를 합산한 금액을 알아보기 위해 ‘귀사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돈으로 평가한다면’이라고 질문한 결과 평균 58억원 가량으로 집계됐다. 주관적 기준에 따른 판단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평균 매출액 35.7억원에 비해 60%나 더 많은 기여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식품 업체들의 생산 여건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수치로 여겨진다.
 

 

#애로점과 요구 사항은
'판로 확보·자금' 풀리지 않는 숙제

신제품 개발·홍보 필요한데
결국 '돈 문제'로 엮이는 구조
"정부 지원 절실" 한목소리
생산여건 악순환 고리 끊어야


▲되풀이되는 고질적인 난제들=그렇다면 전통식품 업체들이 사업 운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사업상 어려운 부분(복수 응답 가능)’을 묻는 질문에 대해 판로 확보 문제라고 답한 업체들이 37%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자금 운용 문제 24%, 원료 확보 및 가격 21%, 시설노후화 문제 16% 순이다. 전통식품과 관련된 숱한 설문조사에서 으레 언급됐던 고질적인 난제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애로점들을 개별적으로 풀어내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통식품 업계의 목소리다. 예를 들어 판로 다각화를 달성하려면 신제품 개발 또는 홍보 강화 등의 방안이 나와 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제품 개발을 위한 시설 투자 분야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자금 운영 문제 등으로 엮이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얘기다. 홍보 역량을 키우는 부분 등 다른 문제들의 접근 역시 이런 맥락에서 마찬가지인 셈이다.

업체들은 향후 경쟁력 향상 등의 목표를 위해 거래처 확대(64곳), 신제품 개발(52곳), 전문 인력 보완(35곳), 수출 확대(32곳), 고품질·저가·안정적 원료 확보(24곳), 브랜드 육성(24곳), 부채 상환(23곳), HACCP 인증(14곳), 실험연구실 구축(10곳), 디자인 보완(9곳) 등(복수 응답 가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시설 개선 지원 한목소리=특히 전통식품 업체들은 생산 기반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생산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응답 업체 103개 중 1곳을 제외한 102개 업체들이 생산 시설 개선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구했다.

더욱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설립된 전통식품 업체들의 경우 시설 노후화에 따른 개보수 지원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응답 업체 중 86%에 달하는 업체들이 교체가 필요한 시설이 ‘있다’고 답했으며, 가장 교체가 필요한 시설로 ‘생산 라인’이 응답의 40%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포장시설, 저온창고, 체험시설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통가공식품협회 관계자는 “원료 확보, 생산 시설, 판로 다각화 부분 등은 별도의 개별적인 단일 사안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며 “현재 생산 여건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선 많은 전통식품 업체들이 시설 개보수 등의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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