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법인에는 영농조합법인과 농업회사법인이 있는데, 정부의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출자 및 농지소유 규제 완화로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해 농업에 진출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사진은 동부팜에서 우일팜으로 넘어간 유리온실.

우리나라의 농지제도는 농사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토록 하는 ‘경자유전’이 원칙이다. 대한민국 헌법 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한다. 다만,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만을 인정할 뿐이다. 농지법 역시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 한다’고 돼있어, 농민이나 농업법인(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만이 소유할 수 있다.


●대기업의 통로가 된 농업회사법인 

‘농업법인 대표 농업인’ 조항 삭제
이명박 정부부터 대기업에 문 활짝
농업회사법인 5년만에 7.8배 폭증
대통령령으로 출자 비율 조율 가능
“경자유전 원칙 무시 꼼수” 지적

 

그러나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의한 지속적인 규제완화로 농업법인을 통한 외부자본의 진입과 농지소유가 확대되고 있다. 원래 농업법인은 90년대 시장개방에 대응, 농업의 협업과 자본증대를 통해 규모화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영농조합법인의 경우 1994년 준조합원 자격요건 가운데 영농종사 여건을 폐지, 농민이 아니어도 출자하고 준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게 했다. 1999년에는 조합원과 준조합원의 출자한도를 폐지했다. 영농조합법인은 농민이나 생산자단체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외부자본이 들어와도 견제와 균형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반면 농업회사법인은 제도적으로 대기업들의 농지소유와 농업진출을 위해 활용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비농민이 농업회사법인에 출자할 수 있는 한도는 1994년 33.3%였지만, 99년 50%, 2004년 75%, 2011년 90%까지 확대돼 왔다. 외부자본이 90%를 출자하고 농민에게는 10%만 출자 받으면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어 농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농업회사법인은 원래 1994년 위탁영농회사에서 명칭이 바뀌었는데, 처음엔 농업회사법인의 형태 가운데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회사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고 주식회사는 제외됐다. 아울러 농업인의 출자액 합계가 50% 이상이고, 대표자가 농업인이며, 업무집행권을 갖는 사원의 1/2 이상이 농업인이어야 농지소유가 가능했다. 이것을 2003년 주식회사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바꿨고, 2006년에는 농업회사법인의 농지소유 요건 가운데 농업인 출자액이 총 출자액의 50%를 초과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외부자본의 농업진출은 이명박 정부에서 비농민 출자제한 폐지, 대기업 축산업 규제 철폐,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확대를 담은 ‘농업경쟁력강화 방안’이라는 이름의 친 기업 정책이 진행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의 농업진출을 위해 법과 제도를 고치고, 새만금과 영산강 간척지에 대규모 농업회사를 선정해 대규모유리온실로 기업을 불러들였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농지법을 개정해 농지를 소유하려면 농업회사법인의 대표가 농업인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해버렸다. 법인의 업무집행권자(임원) 중 농업인의 최소비중도 1/2에서 1/3로 완화했다. 심지어 ‘농업법인 임원의 1/3 이상이 농민인 경우 농지소유가 가능하다’는 조항마저 삭제한 농지법을 2011년 12월 국회에 제출했다가 대기업의 농지소유와 부동산투기를 우려한 의원들의 반대로 실패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농업회사법인은 급증했다. 농업경쟁력강화 방안을 내놓은 2009년까지 전국의 농업법인은 547개였지만, 5년 뒤인 2014년에는 4263개로 폭증했고, 영농조합법인은 2920개에서 8425개로 증가했다. 영농조합법인이 2.9배 늘어나는 사이 농업회사법인은 무려 7.8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제 기업자본들이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어 농지를 사들이고 사업을 진행하다가, 나중 적자나 부도를 이유로, 또는 6차산업이나 창조농업이니 하는 이유로 농지전용 등 규제완화를 추가로 요구하지 말란 법이 없다.

현행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보면, 농업회사법인은 농민이나 생산자가 아니더라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의 범위에서 출자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에서 비율을 정하기 때문에 정부가 맘먹는 대로 얼마든지 비율 조정이 가능하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국회 심의와 의결 없이 정부가 좌지우지 하는 것은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을 무시하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기업 수직계열화, 자작농은 소작농·농업노동자로 

‘기업과 농민의 상생’ 명목하에
유통 장악하거나 수직계열화
재벌에 의한 지주-소작농 체제 우려
규제 더 풀면 대기업 독점 불가피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농업 성장을 위한 자본유치’를 내세우는 정부의 적극적인 기업 지원 정책과 이미 세계시장에서 경쟁의 한계를 맞고 있는 대기업들이 농업에서 시장을 창출하려는 ‘블루오션’ 전략이 맞물려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처음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국토개발·식량 생산 등을 명분으로 간척지를 만들거나 조림사업을 하는 식으로 시작돼 농자재 생산, 유통 등 관련산업, 그리고 가전제품·생활용품 등 소비재 판매를 통해 농업에서 부가가치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농업·미래 농업이란 명분으로 생산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식물공장, 스마트 팜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소농·가족농의 몰락과 농업의 가치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자본이 풍부한 대기업은 처음 수익을 내지 못해도 다른 부분에서 손실을 보전해 가면서 장기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생산에 참여할 경우 시장을 장악하고 독점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가장 취약한 품목이 시설채소, 축산으로 지목된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허용할 경우, 그들이 농업을 장악하는 방법은 주로 ‘기업과 농민의 상생’이란 이름으로 유통을 장악하는 형태이거나 수직계열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이 직접 생산을 할 경우 그 아래서 일하면 농업노동자가 되는 것이고, 별도 법인을 만드는 식으로 농민들에게 생산을 맡긴다고 하면 그것은 수직계열화가 된다. 종자·자재·시설 등을 기업에게서 제공받고 농가는 생산만 하며, 출하된 농산물은 대기업을 통해 국내 유통되거나 수출된다. 기업이 생산수단인 농지와 시설과 유통을 장악한다면, 결국 기업이 사실상의 지주가 되고, 농민은 소작농이나 농업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농지개혁을 통해 식민지 봉건시대의 지주-소작제를 불완전하게나마 해체하고, 농민들이 자기 땅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갈 수 있는 자작농체제가 정착됐는데, 이제 다시 사실상 재벌에 의한 지주-소작농 체체가 일반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이전의 소작농은 나름대로 자기 결정권이 있었지만, 대기업이 주도하는 시설에 속하게 되면 이 안에서 각종 제약이 있기 때문에 농업노동자적 성격이 강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기업자본 정책 중단, 농민 주도의 발전 모색해야 

농민이 농업 주체로 주도권 확보
비농민의 농지 소유 제도적 차단
대기업 진출 규제 관련 입법 급선무
농민 주축의 영농법인 육성해야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대기업이 들어와서 토마토 수출 해봐야, 그 정도 비중으로 국민경제가 나아질 것도 없고, 농민만 피해 볼 뿐”이라며 “기업은 이윤이 목적이므로 기업의 농지 소유와 농업생산은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을 기업이나 농민이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문제”라며 “지역을 지키며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이 농업의 주체가 돼야 하며, 농업 발전은 농민들의 협동으로 가능한 만큼 농협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시설이 늘어나면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을 부르고, 소농의 몰락과 농업법인의 부실화를 가져 온다”며 “앞으로 농업의 발전방향은 대기업의 농업생산을 규제하고 영농법인 등을 통한 농민의 협업화, 그리고농협의 유통기능 강화로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동부 유리온실 사태 이후 국회에 제출됐다 정부 반대로 무산된 대기업 농업진출 규제 관련 입법을 시급히 재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것은 농업법인에 대한 비농민의 출자한도를 94년 수준인 33%로 제한하고, 비농민이 참여한 농업법인의 농지소유 금지 등을 담은 농지법 개정안, 대기업 진입 제한을 담은 축산법 27조를 부활시키는 내용이다.

농업법인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석두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일본의 농지규제 완화를 내세우지만, 일본의 경우는 기업의 농지소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위탁경영을 허용하고 있다”며 “농업생산법인에만 예외적으로 농지소유를 허용하는데, 이 역시 사업·출자·임원 등의 구성과 내용을 엄격히 따져 농민이 주도할 경우에만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박석두 박사는 “반면 우리는 일본과 달리 생산법인이든 유통법인이든 전부 농지소유를 허용하고 농민이 아니라 비농민이 주축이 되도록 했다”며 “우선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해야 하며, 향후 농민 주축의 법인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이제 ‘미래농업’ ‘스마트팜’을 내세워 밀고 들어오는 대기업, 외부자본 유입을 조장하는 정부에 의해 또 다른 위기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농업에 대한 인식이다. ‘농민 가지고는 국제 경쟁이 안 되니 기업이 와서 경쟁력 있는 농업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동안 경쟁력 제고를 지상명제로 삼다가 한계에 봉착했는데도, 또 다시 기업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농업을 산업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주체인 농민과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보아야 한다. 

이상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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