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농업진출 무엇이 문제인가

▲ 대기업의 농업진출 시도로 인해 농민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동부그룹이 화옹간척지에 15ha 규모의 온실을 운영하려다 농민들의 강한 반대로 포기한데 이어 이번에는 LG 그룹이 스마트 바이오파크를 들고 나왔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13년 동부그룹이 동부팜한농을 통해 유리온실을 추진하다가 농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접은 이후 이번에는 동부팜한농을 인수한 LG 그룹이 새만금에 ‘LG 스마트바이오파크’를 조성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국토 개발’ ‘식량생산’ ‘농업선진화’ ‘미래농업’ ‘창조농업’ ‘ICT 융복합’ 등 늘 그럴듯한 수사로 포장되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지속적으로 시도돼왔다. 그러나 대기업 농업 진출의 본질은 이윤추구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소농·가족농의 설 자리만 위협한다는 우려가 높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 역사와 방식, 문제점, 그리고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2회에 걸쳐 점검한다.


●간척지 만들어 기업들 손에
농지 만든다더니 관광·레저시설만

민자 유치·쌀 생산 명분 추진
서산간척지·김포매립지 대표적
농지 준공 인가 후 용도 변경


대기업의 농업 진출 사례로 유명한 곳은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와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 이 두 곳은 70년대 중동 건설 수주가 줄어들자 위기에 노출된 대형건설사들의 건설장비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자본 유치’와 ‘농지조성을 통한 쌀 생산’을 명분으로 추진된 것이다.

현대건설은 1979년 서산 A·B 지구 간척지의 매립면허를 받아 1982년에 B지구 물막이를, 1984년에 A지구 물막이를 완료했다. 이 때 동원된 폐유조선 공법이 언론에 신화로 회자된다. 현대는 정주영 회장의 신화와 더불어 이곳이 단일경영규모로는 세계 최대이고, 선진 과학영농으로 50만명이 1년간 먹을 쌀을 생산한다고 홍보했다. 매립 후 이 지역은 염분제거와 경지정리 후 1985년 시험영농에 들어가 10년만인 1995년 농림수산부로부터 농지 준공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대는 애초 논으로 조성키로 한 서산 B지구를 밭으로 변경해달라고 끈질기게 정부에 요구해왔다. 2000년 부도사태를 맞은 현대건설은 경영안정을 위해 간척지를 담보로 토지공사로부터 수천억원을 차입하고 일부를 일반인과 농어민들에게 팔았다. 이후 지속적인 타용도 전용 시도가 성공하면서 2005년 정부로부터 간척지 상당부분이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2008년에는 바이오웰빙특구로 지정됐다. 기업도시는 골프장, 관광숙박시설, 문화테마파크, 청소년문화체육시설, 수로유원지, 첨단산업단지, 자동차연구단지 등으로 개발하는 내용이다. 특구는 농업 바이오단지, 의료 시설, 관광 시설을 조성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2011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했고, 사업은 더욱 빠르게 진행 중이다.

결국 농업용으로 허가 받은 현대간척지는 현대 재벌가 내에서 주인이 바뀌며 대부분 산업용 등 타용도로 활용되거나 매각됐고, 일부만 ㈜현대서산농장이 직영하고 있다.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도 농지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아 91년에 매립지를 준공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쓰레기 매립장, 복합화력발전소, 하수처리장 등으로 용도 변경됐다. 동아건설은 나머지 땅에 대해 농업용수 부족을 이유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면서 지속적으로 용도변경을 시도했다.

98년 IMF 위기때 부도에 몰린 동아건설은 외자 유치를 내세우며 마이클잭슨, 갑부인 사우디 왕자 등을 내세워 대대적인 용도변경 공세를 폈지만, 정부에 의해 거부됐다. 결국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의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1999년 5월 농어촌공사에 매각됐다가 다시 LH와 인천시 등에 넘어가, 도시용지, 산업용지로 전용됐다.


●동부와 LG의 농업 진출
동부 첨단유리온실 논란 끝에 포기

LG, 버섯재배·조경수 취급
올해 동부팜한농 인수 한 뒤
‘새만큼 바이오파크’까지 욕심


동부그룹의 동부팜한농은 원래 1953년 한국농약(주)로 출발했으며, 농약·비료·종자·동물약품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농자재회사였다.

2009년에는 자회사인 ㈜동부그린바이오(새만금팜)가 새만금간척지 대규모농어업회사 사업자로 선정됐고, 2010년에는 동화청과를, 2011년에는 천적곤충기업인 세실을 비롯해 동호제약, 대농종묘, ㈜가야를 인수했다. 동부팜한농은 2012년 몬산토코리아로부터 영업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몬산토코리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내 종자업계 1위 흥농종묘와 3위 중앙종묘를 인수한 세미니스코리아를 인수했었다.

특히 2012년에는 동부팜화옹이 경기도 화옹간척지 내에 일부 정부 지원을 받아 15ha규모의 첨단유리온실 단지를 건립했다가 농민들의 반발로 2013년 포기를 선언했고, 지난해 유리온실을 우일팜에 팔았다.

동부팜한농은 우여곡절 끝에 동부그룹이 부도위기를 맞자 올해 LG화학에 매각돼 ‘팜한농’으로 출발했다.

동부팜을 인수한 LG가 농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학교법인 연암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연암대학의 전신인 연암축산고등기술학교(축산과)를 개교하면서부터다.

LG 구자경 명예회장은 1995년 은퇴 후 천안 연암대 인근 농장에서 머물며 버섯재배와 된장 등을 취급하는 수향식품(주)을 운영하고 있다. LG그룹은 2006년 리조트와 수목원에 조경수를 공급하는 농업회사법인 곤지암원예원을 설립하고, 같은 해부터 곤지암 화담숲을 조성, 2013년 개장했다.

LG는 올해 동부팜에 대한 인수계약을 체결한 뒤 곧바로 LG CNS를 통해 새만금에 대규모로 스마트 바이오파크를 조성한다고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삼성서 시작된 대기업 축산 진출
용인자연농원에 ‘최대 양돈장’ 조성

밤·호두단지, 묘포장 등 시작
돼지 6만두까지 사육하기도
사조·동원·CJ 등도 야금야금


대기업 농업진출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기업이 삼성이다. 삼성은 중앙개발 시절 ‘체계적인 국토개발’을 내세워 1972년 용인종합개발계획을 수립, 농림축산사업과 관광문화사업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용인자연농원이고, 지금의 에버랜드다.

처음에는 경제조림단지를 비롯해 밤·호두단지, 묘포장, 축산단지, 가족단지 등으로 구성됐다. 용인자원농원에서 수확된 살구 밤 등은 생과와 가공품으로 시판했고, 일부 수출실적도 있다. 특히 삼성은 이곳에서 1973년부터 양돈사업을 벌여 30만평 부지의 5개 양돈장에서 6만두까지 돼지를 사육하는 당시 최대 양돈장으로 키웠다. 삼성의 양돈 사업은 계열사이던 제일제당으로 이어지다가 양돈업계의 대기업 진출 반대와 환경오염, 질병 문제 등으로 1989년 정리됐다.

당시 만들어진 대기업 축산진출 규제제도는 2009년까지 존속됐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월 대기업의 축산 참여를 금지하는 축산법 27조를 삭제, 대기업이 사료와 유통뿐 아니라 생산까지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축산분야에서는 대기업 진출이 더 깊숙이 진행되고 있다. 하림은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육계를 비롯해 선진·팜스코 등 양돈계열화, 배합사료, 동물약품 등을 포괄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지바이오는 사료사업에서 시작해 마니커·성화식품·우리손에프앤지 등 육계계열화, 육가공 등으로 사업을 늘려왔고, 최근 자회사의 코스닥상장으로 투기자본 유입 논란을 빚고 있다. 사조그룹은 배합사료, 육가공, 가금계열화에 이어 최근 양돈장을 인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기업 축산 진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동원도 사료, 유가공, 육가공에 진출해있다. CJ의 경우 배합사료, 계란, 육가공, 양돈계열화에 손대고 있다.


●너도 나도 뛰어드는 대기업들
스마트팜 육성정책 등에 업고 ‘가열’

정보통신업계 움직임 주목
SK텔레콤·KT·LG 유플러스 등
직간접적 농업진출 시도 가세


최근 대기업 농업진출 시도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두드러진다.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KAIST(카이스트) 출신들이 만든 식물공장 업체인 ‘만나씨이에이’의 지분 약 33%를 인수하고 유통과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다. 만나씨이에이가 생산하는 품목은 바질 같은 외래종 채소류다. 이 업체는 다시 ‘팜잇’이라는 법인을 만들어 크라우드펀딩으로 공유농장이라는 사업모델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만나씨이에이는 팜잇을 통해 기술 없이도 누구나 적은 자본으로 공유농장의 주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기존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수익을, 일반인들에게는 농업 진출에 대한 장벽을 낮춰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홍보한다. 카카오는 또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제주감귤 모바일 유통 플랫폼인 ‘카카오파머 제주’를 시범 운영한데 이어 올해 8월부터 정식 서비스에 들어간다. 이는 계약을 체결해 감귤을 매입하고 카카오의 브랜드와 플랫폼을 활용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모바일에 익숙한 2030 세대의 특성을 고려해 10㎏ 포장이 아닌 5㎏ 포장으로 구성하고 카카오톡 ‘선물하기’, ‘카카오페이’ 등을 통해 유통시키는 것. 이런 카카오의 행보는 농민들과 중소상인들의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빚고 있는 상태다.

노루표 페인트로 잘 알려진 노루그룹도 2014년 자본금 100억원을 들여 ㈜노루기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농업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노루그룹 산하에는 농산물 유통·가공·판매와 영농 자재를 생산·공급하는 ㈜더기반이 있고, ㈜노루지에스는 무인기 기술,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이용한 정밀 농업 분야 시장을 노리고 있다.

창조경제를 내건 정부의 대대적인 스마트팜 육성 정책과 함께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 KT·LG 유플러스 등 3사도 모바일 원격제어시스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대통령까지 나서 스마트팜을 미래성장산업으로 거론하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한 대기업의 직간접적인 농업 진출 시도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외 KT&G는 2011년 인삼과 한약재 재배를 주력으로 하는 농업회사법인 예본농원(주)를 설립했으나 실적이 없이 2014년 청산했다. 대성그룹의 경우 2012년 고구마와 감자를 재배하는 농업회사법인 굿가든(주)과 ㈜굿랜드를 세웠다가 2013년 굿가든으로 흡수합병했다.

녹차브랜드 ‘설록차’ ‘오설록’의 아모레퍼시픽은 1979년 제주도에 진출해 190ha규모로 녹차를 재배하면서 공장과 박물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SK임업은 1972년 서해개발 주식회사로 시작해 천안, 충주, 영동 등에 조림지를 보유하고 조림, 조경, 임산물 사업을 한다.

이상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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