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 융자율 차등화 하루빨리 시행해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7월 농업기계 평가 및 지원에 관한 요령(안)을 마련하고 관련 업계의 여론수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개정되는 요령에 포함된 국산 농기계와 수입 농기계 구입시 융자율을 차등으로 둔다는 내용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최근 국내 농기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기계산업이 후방산업으로 농업생산성 향상에 큰 일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성책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크다. 이에 본보는 2회에 걸쳐 농기계구입 융자율 조정을 비롯한 국내 농기계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2회에 걸쳐 진단한다.
 

내수시장 포화·수입산과 경쟁…수출로 ‘힘겨운 성장세’ 
수입산 구입비중 증가…2010년 19.9%→2014년 27.8% 
의견수렴 명목 4개월 넘도록 융자율 조정 늑장 도마위

 

 

국내 농기계산업 시장규모는 내수와 수출을 포함해 1990년 460억원에서 2000년 1조2260억원, 2010년 1조5270억원, 2013년 1조844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내수시장은 2000년 1조원을 넘어선 이후 2005년 6360억원, 2010년 1조원, 2013년 925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수시장은 등락을 거듭하면서 이미 포화단계에 접어든 반면 수출물량이 증가하면서 성장세가 그나마 유지되는 모양새다. 이처럼 국내 농기계산업의 시장규모가 성장하면서 수입농기계와의 경쟁 또한 불가피해졌다. 그 결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대형 트랙터는 외국 농기계 업체들이 주도를 하고 콤바인과 이앙기는 일본산 제품에 자리를 점차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농기계 구입 융자율 조정 이견=이처럼 일본산 제품이 국내 시장을 점차 점유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국회예산정책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4회계연도 결산 분석에서 외국산 농기계 구입비중이 2010년 19.9%에서 2012년 23.3%, 2014년 27.8%로 지속 증가하고 있으며 농업기계 구입자금의 사업취지가 국내 농기계산업을 활성화 시킨다는 점을 감안해 국산 농기계 사용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이 나오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7월 트랙터, 콤바인, 동력이앙기 등 주요 농업기계의 평가 및 지원에 관한 요령(안)을 만들어 여론수렴에 돌입했다. 이 내용에는 주요 농업기계를 성능, 편의성, 안전성, 고용창출 및 수출공헌도, 연구개발, 제품서비스 체계 등에 배점을 둬 융자율을 조정하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자 일본 농기계 제조사는 물론 일본 정부까지 WTO협정에 위반된다는 항의와 함께 국내 농민들의 탄원서까지 제출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요령은 수입 농기계 업체들이 도저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정부가 농민들의 농기계 선택권을 융자라는 명목으로 제한하려고 한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현장의 농업인들은 일본산 제품을 한번 구입하면 수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안심하게 사용할 수 있어 국내 제품과는 품질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품질의 차이가 여전함에도 국산 제품의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말한다.

이에 국내 농기계제조사들과 판매 대리점들은 “정부 융자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데 일본산 제품과 같은 융자율을 적용하는 것이 이치에 맞느냐”, “현행 제도는 국민의 세금으로 외국 기업들만 배를 불리는 구조”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세금으로까지 이를 지원하는 것이 맞냐는 반문이다.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농림축산식품부는 융자율 조정과 관련해 현장의 여론수렴을 좀 더 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김종훈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지난 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농업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국내 산업 발전이 되도록 하겠다. 시간에 쫓겨 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정부가 여론수렴이라는 명목으로 시간을 지체하면서 자칫 정책추진의 동력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융자율 조정을 위한 계획을 만든 7월 이후 4개월이 지났고 이 과정에서 평가기준을 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표가 늦춰지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국내 업계의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정부가 융자율 조정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가 자꾸 뜸을 들이니까 (수입업체로)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고 말했다. 이에 농식품부 관계자는 “(융자율 조정 발표) 안한다는 얘기는 어디가 출처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을 말하는 것 같다”며 “평가 항목이나 추후 연구개발 예산 등 여러 요소들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결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내 농기계업계는 물론 학계, 전문가들도 정부가 계획한 정책의 조속한 시행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여기에 농민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업기계 평가를 통한 지원 요령을 마련해 조속히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제언을 내 놓았다. 이는 국내 농기계 제조산업 육성과 발전은 국내 농업 보호와 경쟁력 강화에 직결되는 만큼 농기계산업을 국가 기반산업으로 인식해 산업 육성에 힘써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다만 단순히 융자율 조정 정책만으로는 자타가 인정하는 위기의 농기계산업을 타개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만큼 국내 농기계제조사들의 취약 부분인 R&D 투자를 위한 정책이 이른바 패키지 형태로 지원돼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농기계학계의 한 교수는 “단순히 농기계구입 융자율을 차등화하는 것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차등화에 못지 않는 대안이 동반돼야 국내 농기계산업의 지속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도 “일시적으로 국내 제조사들이 준비를 한다는 의미에서 융자율 차등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술력을 담보할 수 있는 연구개발이나 가격인하와 같은 정책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영민 기자 kimym@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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