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역이득공유제 도입 요구가 거센 가운데 지난 18일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회장인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이 FTA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홍문표 의원에게 어민과 수산인 4만4000여명이 서명해 무역이득공유제 국회 통과를 요청하는 서명부를 전달했다.  김흥진 기자

무역이득공유제 법제화 요구가 거세다. 농축산단체에 이어 수협을 비롯한 전국의 수산인들까지 FTA 무역이득공유제 법안 국회 통과를 요청하는 서명부를 국회에 전달하고 나섰다. 무차별 FTA로 수출산업은 이익을 보는 반면 농어업분야가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상황에서 무역이득공유제 도입 여부는 이 사회의 ‘정의’를 판단하는 가늠자로 대두됐다. 무역이득공유제의 배경과 필요성, 도입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무역이득공유제 왜 나왔나

정부 FTA 피해액 실제보다 축소
피해보전직불금 피해보상 턱없어
대부분 기존 예산과 겹쳐 ‘빈수레’


그동안 정부는 수출공업화 위주의 경제성장과 도시 중심의 개발정책으로 농촌을 소외시켜왔다. 특히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정부가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이는 FTA로 수출산업은 이익을 보고 농업은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있는데도, 농업에 대한 보상은 피해보다 적거나 없다. 예상되는 농업의 피해규모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체결 후에나 밝히는 수치도 농업계가 체감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한·중 FTA 발효시 예상되는 피해규모를 20년 동안 연평균 77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농업계에서는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의 영향평가는 단순히 품목별 관세 인하에 따른 영향을 계산했을 뿐 소비대체로 인한 풍선효과를 비롯한 중요한 변수들을 계산하지 않았고, 다른 FTA와의 연관성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FTA가 발효되지 않아도 향후 20년간 중국산 수입이 늘면서 무려 10조원의 국내 생산감소액이 발생하는데도, 정부는 10년간 겨우 1595억원을 투융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FTA를 체결할 때마다 국별로 주요 농산물 중 한 가지씩만 무관세로 열어줘도, 우리 입장에서는 수십개의 주요 품목이 수출강대국에 개방되고, 결과적으로 전품목이 FTA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미 과일시장에서는 미국·칠레 등 타 경제권과의 FTA로 포도·체리·자몽·키위·망고 등의 수입과일이 급증해 국산을 밀어내는 중이다. 중요 식량작물인 감자의 경우 미국·호주와의 FTA에서 계절관세란 이름으로 12월~4월까지 기존 304%의 고관세가 아닌 무관세가 적용되면서 수입이 폭증하고 있다.

사후적인 대책인 FTA 피해보전직불금의 경우 애초 피해액의 일부만 보상하는 제도이고, 이마저 정부가 법에도 없는 수입기여도를 반영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실질 피해를 보상하지 못한다. 심지어 지난해 고구마가 피해보전직불 대상품목으로 선정됐지만, 수입기여도를 반영한 단가가 ha당 겨우 8570원으로 책정되자 28만호 이상의 농가 중에서 0.4%인 1165호만이 직불금을 신청해 총 463만원을 수령했다. 신청농가당 겨우 4000원씩 받아간 셈이다. 2013년 조, 2014년 옥수수· 녹두의 경우는 발동요건이 충족되고도 수입기여도가 0으로 나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정부는 그동안 FTA를 체결할 때마다 사후 약방문 격으로 종합대책, 보완대책 등을 내놓고 수십조를 지원하는 것처럼 내세웠지만, 많은 부분이 기존 예산과 겹치고, 실제 농업 예산 자체가 줄고 있다.


#무역이득공유제, 재정으로 마련해야

한농연, 농어촌부흥세 적립 제안
수입관세 50% 목적기금 활용을
FTA 상응한 별도재원 확보 여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제도가 ‘무역이득공유제’다. 이 제도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경제민주화와 농업피해 보완이라는 관점에서 2012년 제기했다. 한농연은 그 방안으로 법인세 1% 또는 FTA 이후 수출산업의 수출증가액 일부를 농어촌부흥세로 적립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농연은 또 농축수산물 수입관세 중 50%를 해당 품목에 대한 소득안정화기금으로 전환, 목적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한민수 한농연 정책실장은 “자율기부를 받는다는 것은 실효성도 명분도 없다”면서 “법인세든 어떤 세금이든 수출이익을 누리는 부문에서 세수를 확보하고, 기존 예산이나 농특세 외의 충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정부는 힉스 보상의 원칙에 따라 수출입 무역업계가 받는 혜택의 일부를 거둬 농업에 지원해야 한다”면서 “이는 기존의 46조 사업, 119조 사업, 23조원 FTA 지원사업처럼 숫자놀음이 아니라 기존 농어업 예산, 농특세 예산에 더해 FTA에 상응한 별도의 재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선진국의 경우 농어민들이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에 대한 대우로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법정 최저 임금의 50%로 농가 호당 월 50만원, 연간 600만원을 지원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7조200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며 농어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재원으로는 친환경직불금을 제외한 각종 직불금 예산, 농관련 공공기관 및 단체 개혁으로 절감된 비용, 현 농림 예산 중 대기업 등에 지원되는 비용, 기존 예산의 불요불급 항목 전용외에 무역이득공유제로 확보된 재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보상의 원칙과 정의, 선진국의 조건

“농업·농촌 없이 선진국 진입 불가”
이익 본 측이 손해 본 측 완전보상
피해자 보호·올바른 분배가 ‘정의’


197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 교수의 ‘농업과 농촌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는 이론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단골멘트다. 그는 1950~60년대 미국·영국·독일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 발전에 대한 ‘쿠즈네츠 곡선’을 개발했다. 이는 산업부문이 크게 발달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농업부문과 도시부문의 소득격차가 증가하는데, 선진국으로 지속 발전하려면 농촌부문의 발달, 농가소득의 증대로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켜야만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2012년 농민들 앞에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농사는 백성의 근본”이라며 “우리도 명실상부한 선진국에 안착하려면 당연히 농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 농업·농촌의 발전과 농가소득 증대를 실천하고 있는가? 물론 정책 목표는 그렇다 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농업·농촌을 붕괴시킬 FTA(자유무역협정)을 무차별적으로 체결하면서 농업예산까지 줄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FTA를 밀어붙이면서 ‘국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했던 파시즘적 발상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서구자유주의 경제학은 ‘누구도 손해보지 않고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진 상태’를 추구하는 ‘파레토 원칙’을 중시한다. 아무리 다수가 이익을 보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손해를 보는 정책은 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정책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차선으로 ‘J.R.힉스’의 ‘보상의 원칙’을 준용한다. ‘보상의 원칙’이란 어떤 정책으로 손해 보는 측이 있더라도 이익의 총량이 손해의 총량보다 많다면 그 정책을 집행하되, 이익을 본 측에서 손해 본 측에 완전히 보상해주는 개념이다.

피해자인 농민에 대한 보상은 ‘정의’의 실현과도 관계된다. ‘정의론’의 거장 ‘J.롤스’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최소수혜자(최약자)’에게 최대이득이 되는 경우에만 허용되고, 모든 사람에게는 공정한 기회의 균등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파했다. ‘M. 샌델’ 역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로운 사회는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적과 영광 등을 올바르게 분배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러한 약자에 대한 보호,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선진복지국가를 만들고 지탱하는 것이다. 약자의 피해와 고통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FTA 정책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
“무역이득공유제 도입 경제민주화·정의 실현”

수혜산업 이익 추정 얼마든지 가능
FTA에 따른 균형발전법 제정 필요

 

“무역이득공유제의 보다 높은 명분은 ‘정의의 실현’에 있습니다. 전체 경제와 국민을 위한 FTA를 한다면, 이로 인한 농업의 피해를 충분히 보상할 때 우리 사회는 정의롭다 할 수 있습니다.” 한국농업을 소신껏 대변하는 몇 안 되는 현역 교수로, ‘무역이득공유제는 정의’라고 규정하는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그는 무역이득공유제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헌법 119조에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어요.” FTA가 특정분야의 이익을 추구하는 만큼,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농업에 보상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에 부합하고, 무역이득공유제 반대론자들의 ‘자유경쟁 및 사유재산권 침해로 위헌’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무역이익의 규모와 수혜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반대론에 대해서는 “현재 FTA 피해보전직불제에서 다양한 품목과 상황에 따라 수입기여도를 계산해 피해를 계산하는 것을 볼 때, FTA 수혜산업의 이익을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도 도입에 합의한다면, 이런 기술적 문제는 얼마든지 전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산업의 이익을 산정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이익을 얻는 분야가 수출산업, 농산물 수입업자, 식품산업, 소비자 등으로 볼 수 있는 만큼 회계상 이익보다는 경제학적 이득의 개념이 적절하다”는 견해다. 향후 추진방향과 관련, 그는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균형발전법’을 제안했다. 법의 목적은 ‘농수산업 등 FTA 피해산업과 경제주체 지원’으로 하고, 용도는 ‘FTA 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지속가능한 농업기반 유지’에 사용하자는 제안이다. 재원조달은 FTA로 편익을 얻는 모든 수혜자들이 공동으로 부담하되, 재원은 정부 재원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역이득공유제가 등장한 것은 그동안 농업 희생에 대한 공정하지 않는 정부 정책과 FTA 대책이 충분하지 않아서였다”면서 “본질은 실행 상 문제가 아니라, 농업 희생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농업에 대한 대책과 예산배분이 정당한 것임을 천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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