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FTA 농어업피해, 국가·이익 보는 산업이 보전 마땅
기존 농업 예산·농특세와 겹치지 않도록 별도 재원 마련을

선진복지국가의 정책결정에는 ‘J.R.힉스’의 ‘보상의 원칙’, ‘J.롤스’의 ‘최약자보호 원칙’이 작동한다. ‘보상의 원칙’이란 국가의 선택으로 손해보는 측이 있다면 이익을 본 측에서 그 손해를 보상해주는 개념이다. 롤스는 ‘정의론’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최약자에게 최대이득이 되는 경우에만 허용되고, 모든 사람에게는 공정한 기회의 균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정책의 결과, 혜택 받는 쪽과 피해를 입는 쪽이 생기면 공평한 소득분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하고,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에서 통용되는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출산업은 크게 이익을 보고, 농업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데도, 농업에 대한 보상은 실제 피해에 크게 못 미치거나 무시됐다. 농업계가 요구하는 무역이득공유제는 이런 과정 속에서 대두됐다. FTA로 인해 손해 보는 농어민이 생긴다면 당연히 국가와 이익 보는 산업분야에서 손해 보는 쪽에 피해를 보전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원 마련 방법은 수출산업에 대한 목적세 부과, 법인세 1% 적립 등이 제시되고 있다.  

무역이득공유제를 담아 2012년 발의한 FTA 특별법안은 농식품위를 거쳤으나, 정부와 재계 반대로 3년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여야정협의체가 한·중 FTA 국내 보완대책 마련시 무역이득공유제나 그 대안을 논의키로 합의한데 따라 정부안이 곧 제출될 예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와 각각 관련 연구용역을 맡겨 지난 7월에 보고서를 받았고, 정부안은 산자부가 주관해 결정한다. 

그러나 정부안 제출과 국회 논의를 앞두고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국회 예결특위에서 “FTA에 따른 이익을 산출하기도 어렵고, 무역이득공유제를 시행하기도 어렵다”며 무역이득공유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는 농업계가 요구하는 별도의 세원이나 재정 확보와는 달리 기업의 자율기부 등 다른 대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농업계는 무역이득공유제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고 보고, 생색내기식 자율기부가 아니라 기존 농업예산, 농특세 등과 겹치지 않도록  FTA 피해에 상응하는 별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실행상 문제보다는, 농업을 희생시키고 경제 전체의 이득을 추구하는 모든 주체들이 피해를 보는 농업에 마땅히 보상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이에 따른 예산배분이 정당하다는 점을 천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어떤 정책으로 수혜자와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그 혜택이 균형되게 배분되도록 조정할 의무가 있다”며 “보상의 원칙에 따라 무역이득공유제를 시행하고, 나아가 국가 기간산업에 종사하며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농어민들에게 최소한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상의 원칙과 최약자보호의 원리가 담긴 무역이득공유제. 그동안 농어업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 쌓아온 FTA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국정의 정의, 경제의 정의 차원에서 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하라는 농어민의 절실한 요구를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이상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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