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간 살아온 집을 내 놓게 됐다. 내게는 특별한 집을 내 놓으면서 누구를 향한 원망인지도 모를 원망으로 내내 속이 시끄러웠다.나지막한 야산의 품에 안긴 흰색의 단층 슬라브집, 너른 마당엔 키 큰 나무들이 담장 대신 서 있는 이 집을 수년 간 오며가며 욕심을 키우다 기어이 우리 소유로 만들었다.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의 열매를 보는 재미도 그만이려니와 이른 봄 여린 새싹이 돋아 꽃을 피우고 단풍이 들기까지 하루가 다르게 표정을 바꾸는 뜨락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마당 너머로 한 눈에 들어오는 이차선 도로와 시내, 들, 나무, 풀… 그런 풍경들을 자애롭게 감싸고 있는 야산들. 하루종일 눈길을 주어도 지치지 않는 정경이었다. 그러던 것이 마을에 하나 둘 공장이 생겨나고 한적했던 이차선 도로에 차들이 밀리기 시작한 수년 전부터 좀처럼 대청의 창문을 열지 않게 되었다. 먹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보랏빛 열매를 보고싶어 심어놓은 포도나무, 꽃을 보기 위해 심은 도라지, 연초록 이파리들 사이로 피어난 분홍빛 작은 꽃잎이 노란 모과열매로 낙과할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나가 눈 맞추던 뜨락에 머무는 일도 자연 줄어들었다.공업단지인지, 시골인지가 분간이 가지 않게 변해가는 마을의 모습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치지 않는 소음에 몸살이 올라치면 차를 달려 대청댐이나 속리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 곳들 역시 하루가 다르게 ‘그리움’을 상실하고 있었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 여지없이 들어서는 모텔과 음식점, 조악한 가건물들로 인해 마음 줄 곳은 자꾸 사라지고 있다.모내기 끝난 풋풋한 연초록의 들판과 여름이 깊어갈수록 푸르름으로 더위를 달래주는 벼포기의 초록빛 물결, 그윽한 눈빛으로 높아지는 가을 하늘 아래 익어가는 나락, 한 그릇 밥이 돼 당신을 채워 줄….한 알의 볍씨에서 밥이 되기까지 이 나라 강산의 시작이며 끝이 될 저 들녘의 소중함이여. 고향의 들녘은 어머니 가슴이며 고향의 산천은 말없는 아버지의 깊은 눈빛이다. 첨단문명의 횡포에 끝내는 가슴 찢겨질 그대가 돌아가 쉬어야 할 안식처인 것이다.구호물자에 눈이 멀어 우리 밀을 빼앗긴 나라, 이제 하나 남은 자존의 쌀마저 빼앗겨 마침내는 아메리카로, 중국으로 쌀동냥을 나설 것도 모자라 죽어도 그리울 고향의 풍경마저 제 발로 짓밟을 것인가.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마을, ‘학교’라는 감옥에서 자정이 가까워야 풀려나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이십 분 정도 더 걸어야 하는 고충과, 공장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평화와 바꾸려는 나의 계획이 바람직한 지는 아직 모르겠다.문명으로 떡칠된 곳으로부터 벗어나 이사하기로 작정한 그 마을엔 부디 공장이 쳐들어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차은량 충북 청원군 강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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