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길숙 경기도 안성시 공도면 용두리 용두리라 불리는 우리 마을은 지명이 가리키는 대로 가장 한국적인 농촌마을이다.마을 동구에는 내(川)를 마주하고 웅대한 나무 두 그루가 이정표처럼 서있고 마을을 돌아드는 우회도로 북쪽으로도 같은 수종의 나무 두 그루가 또한 웅대하게 마주 서있다.나무의 키를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높이가 대략 25m 이상은 되는 것 같고, 둘레는 나의 두 팔로 안아서 세 번을 재고도 남았으니 족히 5m는 넘는 고목 중에 고목들이다.이 나무들에 대한 전설 같은 얘기도 들었다. 나라에 전쟁이 나려고 하면 큰 가지가 부러져 나갔으며, 비가 오거나 음습한 날에는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로 불빛이 휙휙 날아다니는 도깨비가 사는 나무라고도 했다.어떤 기회가 닿아 우리마을의 나무이야기를 안성 문화원장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그 얼마 후 원장님이 수목연구를 하신다는 분과 친히 마을을 탐방하시더니 위에서 말한 ‘왕버들’ 네 그루와 동네 초입 왼편 둔덕에 있는 ‘구상나무’를 포함해 다섯 그루 모두 수령 400년이 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해주셨다. 참으로 귀중한 문화재였다.그 때라도 이들을 보호수로 지정 받아 두었더라면 마을사람 누구라도 오며가며 관찰, 보호했을 텐데 오늘날까지 방치해둔 까닭으로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나무 바로 아래 논 주인 할아버지가 논둑을 태우다 불길이 나무에까지 옮겨 붙은 것이다. 겨울가뭄으로 말라있던 목질부에 불씨는 삽시간에 나무를 에워싸고 집채보다 더한 불길은 하늘까지도 삼킬 듯 널름거리고 있었다.밭에서 일 하던 우리 부부의 눈에 그 장면이 포착됐다. 트랙터의 시동도 끌 새 없이 뛰어갔지만, 불씨는 나무 안에서 여기저기 폭죽처럼 뻥뻥 터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소방차가 출동하고 위, 아래마을 장정들이 나와 한시간 이상을 걸려 불은 껐지만, 후유증은 처참했다. 속 벽이 새카맣게 숯덩이가 된 채 동굴같이 변한 형국도 가엾고, 나무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하늘이 그대로 뻥 뚫렸으며 큰 구멍들은 옆으로도 숭숭 대여섯 개가 뚫려 있었다. 둘이 들어도 벅찰 만큼 큰 가지가 숯이 된 채 냇가에 꺾여내려 있었다. 그 옛날 과거보러 한양으로 가던 선비들이 땀을 들이려 쉬어갔음직한 시원한 그늘을 주었을 가지 같았다.우리민족이 당한 가진 수난의 전쟁도 몇 번이나 넘으며 묵묵히 세월을 지켜낸 동구 나무가 검은 숯으로 변한 사건에 회생할 수 있을까 가슴치며 잠 못들던 남편이 동이 트기도 전에 막걸리병을 들고 나간다.400여년의 역사를 발췌할 엄두를 못내 본 것은 모두들이 우매해서겠지만, 그건 둘째 치고라도 오며가며 내 작물 다루듯 신경을 조금만 썼더라도 이 같은 불상사는 없었을 거 라는 뉘우침에 말없이 나무에 막걸리를 부어주는 남편의 행동을 지켜만 볼 수밖에….나무 끝까진 불길이 안 닿았는지 까치집이 그대로 남았고 다른 세나무에도 약속이나 한듯 까치집 한 채씩이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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