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한·칠레FTA는 우리쪽의 농업부문 양보 없이는 협상자체가 성립되기 어렵거나 극히 형식적으로 매듭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번 고위급협의회에서 정부가 무리수를 두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FTA에 관한 다음의 5가지 기본요건과 한·칠레의 실상을 다시 한번 강조코자 한다.○ 칠레와 무역협정 실효 거의없어첫째, 시장가치로 평가한 순무역창출효과가 큰 경우여야 FTA는 효과를 낸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이다. 필자가 세계시장과 한·칠레경제 및 농업부문의 일반균형효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가져다 줄 순무역창출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우며, 국민경제적 실익도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둘째, 자유무역협정은 상호실익이 있을 만큼 양국 경제가 보완적이고 경제규모가 커야 한다. 그러나 칠레의 총 구매력은 우리의 18%에 불과하고, 또한 우리의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이미 칠레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어 추가 수출여력이 크지 않다. 더욱이 칠레는 2010년이면 대다수 품목의 관세를 철폐할 것이며,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많은 분야를 개방, 우리가 특혜를 볼 수 있는 분야는 거의 없다.셋째, 두 나라간 교통거리가 가까울수록 유리하다. 무역에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운반비와 보험료가 적게 들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효과가 큰데, 이 부분에 관한 한 두 나라는 지구 반대편에 있으므로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다.○ 우리나라 농업보호 대책 수립부터넷째, 다국적기업이 협상 당사국에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다국적 기업과 같은 거대자본과 그에 수반된 기술이 개입될 경우, 자유무역 협정은 양국간의 협정이라기보다 다국적 기업과의 협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칠레에는 농업부문에 돌(Dole)과 유니프루티(Unifruitti)같은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칠레 플랜테이션 농업을 석권하고 있는 실정이다.다섯째, 시장가치로 평가될 수 있는 것보다 비시장경제가치가 큰 농업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하여 양국의 입장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조건에서 양국은 최악의 관계에 있다. 칠레측이 요구하는 농산물과 가공식품은 대다수가 우리 농업을 붕괴시킬 민감한 품목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 협상 이후에 논의하자는 주장을 해야한다.○ 고위급협의회 활용, 실익 따져야이와 같이 한·칠레 경제의 여건 및 실상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경우 갖춰야 할 5가지 요건중에서 단 한가지도 원만하게 충족되는 것이 없다. 이는 한국과 칠레가 자유무역협정 상대국으로 매우 부적합한 관계에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한·칠레간 협상을 농업에 대한 특단의 대책없이 추진한다면 국민경제적 효율·공정·안정 모두를 해치는 또 하나의 무모한 국제협정을 탄생시키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당·정의 사회·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도 크게 훼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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