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복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보건진료소장)오늘은 영세민 대상으로 위암, 간 초음파 검진이 있어 마을 할머님 세 분을 모시고 보건소로 갔다.검사 때문에 전날부터 금식을 하셔서 모두 배가 고플텐데 “소장님께서 이른 아침부터 저희들을 위해서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며 오히려 나를 생각해준다. 이 한마디에 이른 새벽부터 문을 두드리며, 혹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피곤함이 밀리는 늦은 밤에 찾아오시는 힘겨움도 안∼녕하며 떨쳐버리듯 너무 너무 흐뭇했다.순간 매일 숨 쉴 수 있고 앞을 볼 수 있는 것, 따뜻한 가정이 있는 것…. 나에게 주어진 소중하고 감사해야할 일들이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마냥 메말라 있었음에 내 자신이 얄미워졌다.검진을 마치고 안과 진료를 봤는데 한 할머님이 좌측은 실명이고 우측도 각막이 많이 나빠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한다. 할머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축 쳐진 어깨로 두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계셨다.할머님들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뭐라고 이야기할까? 어떻게 하면 마음에 상처가 덜 가게 말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할머님? 마음이 너무 아프시죠? 용기를 잃지 마세요. 용기를 잃는다면 시력을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 거예요. 그리고 더 나빠지지 않게 조심하도록 해봐요. 부족하지만 도와드릴께요.”할머니의 눈에는 금새 눈물이 고였다.할머님을 집에 모셔드리고 돌아서는데 손을 흔드시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미소를 띄우며 “고마워요. 소장님! 거들떠보지도 않는 우리들에게…”하시는 것이었다.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나무의 거름이 되라고 아낌없이 떨어지는 낙엽들, 소라빛 하늘에 꿈을 싣고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새들, 아름다운 세상…. 남이 알아주건 그렇지 않건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뿌리를 내리며, 뜨거운 태양아래 땀흘리고, 모진 비바람과 태풍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겨울을 가꿔가는 나무들. 정말 아름다웠다.지금은 어둠이 밀리는 시간, 밖의 어두움만큼이나 우리나라 사회보장이 힘겨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OECD가입국 가운데 재정투자 비율이 최하위이고(보사연:10.6%), 국제 비교상 우리나라 GDP대비 보건복지부분 재정지출은 국제 평균 100으로 볼 때 보건부분은 18.6%, 사회복지부분은 29.2%수준으로 크게 낙후돼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방방곡곡 의료취약지역이며 교통이 불편한 농어촌지역에서 약 몇 알로 치료할 수 없는 주민들의 가려운 부분들을 긁어주며, 삶의 질을 높여주는 보건진료소 소장님들이 계시기에 새벽을 바라본다. 바람이 있다면, 지역주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그 분들과 함께 호흡하며 저마다의 빛깔로 다가오는 주민들에게 건강한 웃음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보건진료소가 더 많이 확대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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