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귀옥 경기도 평택시 장당동 산71저는 대한민국 여성으로 태어난지 45년입니다. 실로 장구한 세월동안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어서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 왔어요. 주소지를 처음 옮기던 날부터 농부인 남편을 따라 저도 촌부가 됐지요.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는 꿈 하나로 밤을 낮 삼아 코피가 터지고 허리가 휘도록 일했어요.그 덕에 땅마지기나 장만했지만, 고달픈 성취의 가시밭길에서 정의 없는 세상을 향해 수없이 분노했어요. 죄 없는 국민을 희생양으로 정권을 잡더니 힘없고 유순한 농민을 상대로 돈벌이에 미치더군요. 체육관에서 뽑은 대통령 빽 믿고 새마을 ○○회장이라는 그럴듯한 자리에 앉아 싼 수입소 사다가 공영방송 통해 “농업의 미래는 축산업에 있다”며 띄우더니 그 수입소, 병들거나 사나운 것들을 마리당 수백만원씩 팔아먹었어요. 농민들한테.그때부터 어렵사리 이루기 시작한 새마을이 ‘빚마을’로 멍들었어요. 소 값 폭락으로 자살한 농민들 영령들에게 이 글로나마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그 이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세계무역기구 출범으로 우리 농업은 외로운 동네북이 됐어요. “공산품 내다 팔고 싼 농산물 수입해다 먹자”는 산업논리의 힘에 밀리니까 쥐도 고양이를 물때가 있다고 우리도 고속도로 막고 박 터지게 시위 한 거예요. 우리 농민들, 아니 우리 농촌여자들 우습게 보지 마세요. 남편들이 못하면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제2의 동학농민 혁명을 말이에요. 혹세무민 죄로 수운님은 갔어도 ‘인내천’은 흘러흘러 유구한데 단돈 몇 푼 주고 원조교제하듯 우리들을 농락하지 마세요. 선거 따라 오는 철새들의 립서비스는 이제 넌덜머리가 난답니다.그대 위대한 대한민국의 위정자님, 지도계층 아니 지배계층님들. 순박하기만 했던 우리들. 그래도 겨울이 가면 봄이 오겠지, 이렇게 순리만 믿고 살아온 날들. 정의도 때가 되면 오는 줄 알았어요. 이 무지한 짝사랑.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은 오지 않았어요.그 님들 요즘 치사하게 떴더군요. 의보료 떼먹었다고. 변호사님, 세무사님, 의사님들 자기사업장에 직장건강보험 가입하지 않아 의보료 한푼 안 냈다고.‘사’자가 ‘농’자 보다 더 불쌍한가봐요. 피눈물나게 땅마지기나 장만한 이 촌여자도 빚이 ‘억’인데 의보료 만원이 넘어요. 생멕이(점심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날품팔이)로 아침 일찍 인삼밭에 나가서 4일 꼬박 일해야 의보료 낼 수 있어요.그래도 정의가 물결치는 세상을 바라는 건 아직도 무지한 제 짝사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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